[fn★리뷰] ‘설행’, 차갑지만 따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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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여러 가지다. 차갑기도 하고 따뜻하기도 하다. 영화 ‘설행’ 역시 어둡지만 착한 영화다.

‘설행_눈길을 걷다’(감독 김희정, 이하 ‘설행’)는 특별한 영혼의 교감으로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치유 받는 정우와 마리아가 펼치는 이야기다.

몇 명의 손님을 태운 버스가 시골 터미널에 어머니와 다 큰 아들을 내려놓는다. 이번만큼은 잘 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당부와 달리 정우(김태훈 분)는 어머니와 헤어지자마자 소주를 산다. 그는 며칠 동안 물 한 모금 못 마신 사람처럼 소주를 벌컥벌컥 마신다. 그는 알콜중독자다.

정우는 알콜중독을 고치기 위해 과거 어머니와 인연이 있었던 성당에서 겨울을 보내기로 한다. 정우는 이곳에서 금방 나갈 것이라고 재차 강조하지만, 왠지 ‘금방’이라는 단어가 신경 쓰인다.

한 겨울 시골 성당은 생명이라고는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어둡다. 하지만 눈 내리는 성당과 정갈한 느낌을 주는 수녀 마리아(박소담 분)는 마치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을 법한 신비로움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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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행’은 느리지만 복잡하고 친절하지 않은 영화다. 그래서 관객들은 영화의 느린 흐름을 따라 느리게 생각해 봐야 한다. 그들의 사연은 복잡하고 그들의 감정은 더 복잡하다.

정우는 알콜중독자이기 때문에 꿈과 현실을 왔다 갔다 하며 환상을 보고, 마리아는 빙의가 되어 딴 사람이 되기도 한다. 둘 다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다른 사람이 되는 순간을 두려워한다. 서로의 감춰진 모습을 본 후, 마리아는 “난 아저씨가 너무 슬퍼요”라고 말하고, 정우는 “슬픈건 너지, 내가 아냐”라고 말한다. 이들은 스스로의 상처가 아닌 상대방의 상처를 먼저 알아본다.

환상, 그리고 현실과 과거를 오가는 이들은 현실에서도 환상에서도 발버둥 쳐야 한다. 산 중 요양원의 또 다른 손님이자 포수인 베드로(최무성 분)는 정우와 마리아를 예기치 못한 상황에 놓이게 하지만, 그 역시 이들과 같은 종류의 사람이다.

극중 소개되는 폴란드 쳉스토호바의 ‘검은 성모’는 아무리 덧칠을 해도 과거에 새겨졌던 상처가 계속 다시 나타나는 성화다. 눈 역시 눈이 내릴 때는 하얗게 모든 것을 가려놓지만 언젠가 녹아 다시 본 모습을 드러낸다. 그 모습은 더 흉측할 수도 있다. 깊게 파인 상처를 가릴 수는 있어도 완벽하게 지워내는 것은 쉽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김희정 감독은 “외로운 사람이 한 사람만은 아니라는 것, 서로 동질감을 느끼면서 조금은 치유하고, 조금은 나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것처럼 이 영화는 관객들과 사유할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이다.

한편 ‘설행_눈길을 걷다’는 오는 3월 3일 개봉할 예정이다.

/fnstar@fnnews.com fn스타 이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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