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들은 물감만으로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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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211023408136.jpg원본이미지 보기

‘뉴욕 1987-2016’ 전시작. © News1


(서울=뉴스1) 박정환 기자 = ‘중견작가’ 오치균(60)은 유난히 물감을 많이 쓰는 화가다. 그는 물감을 붓 대신 손으로 혼합해 점을 찍듯이 바른다. 캔버스에 물감을 최대 3㎝ 높이로 쌓아 입체감을 표현한다. 정면이 아니라 옆에서 보면 색색의 파도가 격렬하게 출렁거리는 바다를 연상하게 만든다.

최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작업실에서 만난 오치균 작가는 창작과정의 비밀을 일부 공개했다. 그는 "물감이 들어가지만, 정확히 말하면 보조재가 대부분"이라며 "물감으로 보조재에 살짝 색을 입히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보조재란 물감에 섞어 여러 가지 효과를 내는 재료들을 통칭해서 부르는 말이다. 오치균 작가는 ‘모델링 페이스트’만을 보조제로 쓴다고 밝혔다. 흰색을 띠는 이 보조재는 대리석 분말 등을 아크릴 유화액으로 반죽한 것으로 진흙처럼 점도가 강하다. 따라서 원하는 형체를 두껍게 만들어내며 조소와 같은 입체감이 있는 표현을 할 수 있다.

수채화와 유화는 보조재가 서로 다르다. 아크릴 물감을 쓰는 수채화는 대표적인 보조재가 바로 물이다. 아크릴 물감에 물을 얼마나 섞느냐에 따라 표현방법이 달라진다. 아크릴 물감에 물을 많이 섞으면 물감끼리의 접착력이 약해져 투명해 보이는 수채화를 그릴 수 있다. 반면에 물을 적게 쓰거나 물감 그대로 사용하면 수채화도 유화의 질감이 난다.

아크릴 물감의 보조재는 물 이외에도 ‘미디엄’과 ‘바니시’ 등이 있다. 미디엄은 물감과 섞어 쓰는 보조재이고, 바니시는 채색이 끝난 다음에 사용하는 보조재다. 미디엄 계열에는 오 작가가 쓰는 모델링 페이스트 외에도 Δ광택효과와 투명효과를 동시에 내는 ‘글로스’ Δ광택을 없애는 ‘매트’ Δ 아크릴물감의 건조속도를 느리게 만드는 ‘리타딩’ 등이 있다. 또 물감이 마른 뒤에 쓰는 보조재인 ‘바니시’는 무광과 유광이 있다.

유화물감의 보조재는 ‘기름’으로 편하게 붓질할 수 있도록 물감을 희석하거나 광택을 조절한다. 크게 화학적으로 만든 휘발유와 식물에서 짜낸 건성유로 나눈다. 휘발유 계열 보조재로 테레핀, 페트롤, 미네랄 스피리트 등이 있다. 건성유로는 아마씨에 추출한 린시드 오일, 홍화씨 오일, 해바라기씨 오일 등이 대표적이다. 또 휘발유와 건성유를 적절한 비율로 배합한 ‘페인팅 오일’도 있다.

오치균 작가는 "어떤 보조재를 쓰느냐는 작가의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며 "내 경우엔 붓 대신에 손으로 물감을 찍어서 쓰는데 처음에는 유화물감으로 작업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화물감의 독성이 강해서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도 전에 피부가 다 벗겨져 수성 물감으로 바꾸게 됐다"고 덧붙였다.

오 작가는 핸드크림 등을 손에 바른 다음에 작업에 들어간다. 로션으로 얇은 기름막을 손에 덧씌우면 물감이 덜 스며들고 씻어내기도 편하기 때문이다. 그는 "보조재와 물감을 섞는 비율은 매번 다르다"며 "여러 번 덧바르는 과정을 거쳐서 그림이 점차 두꺼워진다"고 말했다. "보조재를 덧바르다 보니 완성된 그림은 성인 남자 혼자서 들지 못할 정도로 무겁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개막한 오치균 초대전 ‘뉴욕 1987-2016’에는 거친 파도처럼 튀어나온 물감으로 표현한 미국 뉴욕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세 번에 걸쳐 뉴욕에 거주했던 작가가 그곳에 머물렀던 시기에 따라 나뉘어 층별로 전시된다. 3층에는 유학 시절인 1기(1987~1990년), 2층은 뉴욕에서 잠시 정착했던 2기(1992~1995년), 1층에는 3기(2014년~)인 최근 작품이 전시된다.

올해 환갑을 맞은 그는 원래 1980년대 초반 탄광촌 연작인 ‘사북’ 등을 통해 민중미술의 대표작가로 알려진 작가다. 시대가 흘러 그의 관심은 사회현실에서 벗어나 ‘감’연작 등 자연의 생명력으로 옮겨갔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정치적인 성향으로 주목받았던 작가의 이력과는 관계없이, 뉴욕의 문명과 생명력을 시대변화에 따라 담아내려는 그림 자체의 아름다움에 더 집중하게 한다.

4월10일까지. 가격 2000~3000원. 문의 (02)720-5114. 다음은 ‘뉴욕 1987-2016’ 주요 전시작품들의 이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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