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덕후의 인썸니아] 성 패트릭스 데이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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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와 열정이 넘치는 57의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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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춤을 끌어내는 신바람 밴드 레이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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짚신청년 전범선과 양복 입은 양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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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화수분 ‘제8극장’


아일랜드계 이주민들이 많이 사는 영국, 미국, 캐나다에서는 매년 3월 17일이면 아일랜드에 처음으로 기독교를 전파한 성 패트릭을 기념하기 위한 축제가 열린다고 합니다. 아일랜드계 이주민일 리 없고 다른 나라 축제에도 별 관심 없는 제가 성 패트릭에 대해 알게 된 이유는, 바로 성 패트릭스 데이를 기념하는 인디밴드들의 공연이 열렸기 때문이죠. 클럽FF에서 열린 이 공연은 사실 성 패트릭스 데이를 특별하게 여겼다기보다는, 매주 하는 주말 공연이지만 기왕이면 어떤 주제나 목적을 가지고 좀 더 재밌는 기획을 하려는 의도가 더 큽니다. 이날의 공연에서는 출연하는 밴드들이 모두 아이리시 뮤지션의 노래를 하나씩 커버하는 특별 코너가 있었습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57, 레이브릭스, 제8극장 등이 총 출동하는 데다 평소에 들어보지 못했던 커버곡을 해준다는 말에 후다닥 클럽FF로 달려갔지요.

쟁쟁한 여덟 밴드가 라인업에 있었는데, 전부 다 보려면 다섯시간쯤은 걸릴 것 같아서 그중 네 밴드의 공연만 보기로 마음먹고 두번째 출연팀인 57의 시간에 맞춰 갔습니다. 이미 공연장에는 관객이 제법 들어차 있었고 무대 앞에는 커다란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쫙 서서 마치 기자들이 취재를 하듯 뮤지션들을 찍고 있었어요. 그 틈에 끼어서 카메라를 꺼내들자니 뭔가 좀 어색해서, 이번에는 사진찍기보다는 음악을 잘 듣고 즐기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모델같이 늘씬한 미모의 두 멤버를 보자 어느새 카메라 셔터를 누르고 있는 덕후 아줌마…(어쩔 수 없는 덕심입니다)

성 패트릭스 데이의 상징색인 초록빛 셔츠를 입고 온 기타 윤준홍님과 가녀린 팔뚝의 드럼 김설님은 30분의 공연시간 동안 온몸의 에너지를 몽땅 다 쏟아내려는 듯 어마어마한 파워의 연주를 했습니다. 도저히 카메라가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몸을 움직여댔던 준홍님, 그리고 저러다가 팔이 부러지는 게 아닐까 싶도록 세게 드럼을 내리쳤던 설님. 이들은 커버곡으로 호지어(Hozier)의 ‘Take me to church’를 골라왔습니다. 농담 삼아 집중하지 말아달라고 했지만, 집중할 수밖에 없는 멋진 커버였어요. 쿠쿵! 하며 웅장하게 들리는 탐 소리도 좋았고, 좀 슬픈 듯한 멜로디는 준홍님의 목소리와 정말 잘 어울렸어요. 이 곡에 바로 이어서 ‘Then’을 연주하는 준홍님의 표정은 조금 어둡고 슬퍼 보였습니다. 하지만 다음 곡부터는 또다시 펄펄 날아다니며 힘찬 연주를 이어갔어요.

57의 파워풀한 공연이 끝나자 레이브릭스가 무대로 올라왔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레이브릭스였는데 어느새 새로운 곡들을 많이 만들었더라구요. 초록색 옷이 없어서 반짝반짝 광택이 나는 축구 유니폼 셔츠를 입고 온 기타 서광민님이 가죽점퍼를 벗었을 때 저를 비롯한 관객들은 잠시 혼란에 빠졌지만, 워낙 키도 크고 몸매가 좋은 광민님이어서 잘 어울리긴 했습니다.

언제 봐도 매력적인 드럼 유혜진님의 도전적인 눈빛에 넋을 잃어가며 레이브릭스의 연주를 보았습니다. 이들의 음악은 도저히 춤을 추지 않고는 들을 수 없는 것이어서, 저는 카메라를 든 손을 아래위로 흔들어가며 막춤을 추고 점프를 했지요. 레이브릭스가 선택한 커버곡은 투도어 시네마클럽(two door cinema club)의 ‘Undercover Martyn’이었는데, 영어가사의 노래가 많은 레이브릭스의 신곡 사이에서 저는 어느 곡이 커버곡인지 알지 못했던 무식함을 드러냈습니다.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춤을 추느라 땀 범벅이 되었던 레이브릭스의 무대였어요. 마지막 곡 ‘Let’s dance'(그러지 않아도 춤추고 있는 판에)가 끝나고 혜진님이 휙 내던진 드럼스틱을 저와 함께 막춤을 추던 옆 남자분이 재빠르게 챙겨가는 모습에, ‘혜진님의 팬인가봐, 귀엽네’와 ‘앗 내가 챙겨갈걸’ 두 생각이 머리를 스치며 여운이 남았습니다.

이어서 전범선과 양반들이 공연을 시작했습니다. 영국에서 대학을 나온 유학파 전범선님은 상투를 틀고 한복 차림에 짚신을 신고 공연하는 경우가 잦은데 이날은 성 패트릭스 데이인 만큼 한복은 입지 않고 그냥 짚신만 신고 왔더군요. 밴드 이름과 어울리는 민속적 분위기가 깔린 음악을 지향하는 전범선과 양반들은, 북을 두드려가며 ‘강강술래’ ‘혁명가’ 등 어깨춤이 절로 나오는 곡들을 연주하다가 씬 리지(Thin Lizzy)의 노래 ‘Whisky in the jar’를 불렀습니다.

전범선님이 왜 수염을 기르는지는 그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걸걸하고 구성진 그의 목소리는 턱수염 그 자체라고 할까요. 그런 목소리로 부르는 영어가사의 노래는 어쩜 그리 멋지던지요. 물론 민요풍인 그들의 음악과도 잘 어울리는 목소리지만, 저 턱수염이 금색이었어도 괜찮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노래였습니다. 영국에서 온 짚신신은 청년다운 무대였어요. 저는 이날 전범선과 양반들의 공연을 두번째로 보았는데, 한복차림으로 북을 두들겨대는 전범선님의 모습이 얼떨떨했던 처음에 비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공연이었습니다. 역시 최소한 두 번의 라이브는 보아야 밴드의 진가가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지요.

쉴 새 없이 뛰면서 세 팀의 공연을 보고 나니 허리와 다리, 발바닥이 아파오기 시작했고 배도 고팠습니다. 하지만 뒤를 이어 무대로 올라온 제8극장을 보자 어디선가 호랑이 기운이 샘솟으며 입에서는 환호성이 터져나왔어요. 항상 밝은 표정으로 관객을 위해서 공연을 하는 진심이 느껴지는 사람들이어서 그렇겠죠. 이들은 더 붐타운 래츠(the Boomtown Rats)의 ‘I don’t like Mondays’를 커버곡으로 선택했습니다.

다른 악기 없이 피아노 반주만으로 이루어진 곡이었는데, 함민휘님의 엄청난 피아노 실력에 깜짝 놀랐습니다. 공연 때마다 키보드, 기타와 베이스에 클라리넷까지 멀티 플레이어로서 제일 바쁜 민휘님인 줄은 알고 있지만, 모든 악기를 그렇게 뛰어난 수준으로 연주할 수 있다니 참 신기한 사람이에요. 서상욱님과 임슬기찬님, 그리고 함민휘님이 돌아가며 한 소절씩 노래를 하고 그동안 다른 사람들은 코러스를 넣었는데, 노래를 너무 잘 해서 또 한번 깜짝 놀랐어요. 물론 모든 밴드들이 가장 잘 어울리는 커버곡을 골라왔지만 제8극장 역시 밴드의 이미지와 목소리에 딱 어울리는 멋진 곡을 연주했습니다. 마지막 곡 ‘대항해시대’는 남은 힘을 소진하려는 듯 정말 열심히 연주했고, 관객들 역시 함께 흥분하며 뛰고 또 뛰었어요.

사실 지난주에 홍대의 인디 신에서는 감당하기 힘든 슬픈 일이 있었습니다. 인디뮤지션들의 조력자, 후원자이자 큰 형님 같았던 한 분이 세상을 떠나셨던 것입니다. 그분과 직접적인 친분이 없는 저에게도 상당한 충격이었으니, 그분을 사랑하고 의지했던 뮤지션들의 상심과 슬픔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크기겠지요. 이 밴드들이 혼신의 힘을 다한 연주를 했던 까닭은 거기 있었습니다. 아일랜드의 수호신인 성 패트릭처럼, 인디 신의 수호신과 같은 존재였던 그분을 추모하며 더욱 열정적인 공연을 벌였던 것입니다.

밴드들 중 그분의 도움을 받지 않은 팀이 없을 정도로 진심을 다해 모든 뮤지션들의 성공을 기원했던 분.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시며 언제까지나 뮤지션들의 수호신이 되어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뮤지션님들! 힘내시고 더욱더 멋진 공연 해주세요! 저는 관객으로서, 팬으로서 열심히 응원하고 또 열심히 즐기겠습니다. 로큰롤!

필자 강지연은

나이가 좀 되는 서울아줌마.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에는 일본으로 가서 패션스쿨을 다녔으나 배운 것을 써먹은 적은 없음. 결혼 후 남편을 따라 미국 시골의 대명사 오클라호마에서도 살았던 경험 있음.

2007년 우연히 본 인디가수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그에게 한눈에 훅 빠져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탠딩 공연이라는 걸 가보게 되고 그 공연에서 눈앞에서 펼쳐지는 기타, 베이스와 드럼연주 모습에 넋을 잃고 그 후 홍대 인근 클럽을 쏘다니며 인디밴드의 공연을 보는 취미를 얻게 되었다.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졸업

-일본 Bunka 패션스쿨 졸업

-서강대학교 영상대학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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