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골프 회동에서 ‘협치 지렛대’로 활용한 멀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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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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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오른쪽)과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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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당 김관영 원내수석부대표 [연합뉴스 자료사진]

여야 골프 회동에서 ‘협치 지렛대’로 활용한 멀리건

공식 경기는 금지…친목 게임에선 상대에게 ‘큰 호의’

클린턴과 트럼프는 ‘셀프 멀리건’으로 악명

(서울=연합뉴스) 권훈 기자= 지난 11일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여야 3당 원내 지도부를 경기도 광주의 골프장으로 초청해 함께 골프를 쳤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 더민주 우상호 원내대표, 국민의당 김관영 원내수석부대표가 김 대표와 함께 18홀을 돌았다.

정치권 관계자는 "3당 원내 지도부의 화합과 친선 목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매홀 멀리건을 주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관심을 끄는 대목은 멀리건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이다.

멀리건은 골프에서 실수한 샷을 없던 것으로 하고 다시 한 번 치도록 허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원래는 티샷을 잘못 쳤을 때 벌타 없이 한 번 더 치는 것을 뜻했지만, 의미가 조금 변해서 두 번째 샷이나 세 번째 샷에도 다 적용한다.

여러 가지 이설(異說)만 있고 정설은 없지만, 멀리건은 사람 이름에서 유래됐다는 게 미국골프협회(USGA)의 추측이다.

1920년대 캐나다의 호텔 재벌 데이비드 멀리건, 1930년대 미국 뉴저지주 에식스 펠스 컨트리클럽 직원 존 버디 멀리건 등 두 사람이 주인공이다. 둘 다 첫 샷을 잘못 치자 다시 쳤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도 정확한 유래는 모른다.

멀리건은 컨시드와 함께 골프에서 상대에 주는 가장 큰 호의(好意)의 표현이다.

멀리건과 컨시드는 그래서 접대 골프에서 빠지지 않는다. 효과는 컨시드보다 멀리건이 훨씬 강렬하다.

컨시드는 아직 시도 하지 않은 퍼트를 성공한 것으로 간주한다. 실패할지 성공할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컨시드를 받으면 "어차피 성공할 퍼팅"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멀리건은 이미 실패한 샷을 없었던 일로 한다. 명백한 실패를 무효로 삼는다.

상대방에 대한 호의의 강도 역시 멀리건이 컨시드보다 더 크다고 보면 맞다. 받는 쪽은 컨시드보다 멀리건이 더 반가운 까닭이다.

멀리건을 받는 쪽은 대개 ‘갑'(甲)이다. 주는 쪽은 주로 ‘을'(乙)이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별명은 ‘빌리건'(Billigan)이다. 빌(Bill)이라는 이름과 멀리건(Mulligan)을 합친 말이다. 골프를 치면서 하도 멀리건을 많이 받는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현직 대통령 시절엔 멀리건 받는 횟수가 더욱 많아졌다. 미국 대통령이라면 세계 최강의 ‘갑’이니 샷 실수가 나올 때마다 동반자가 ‘멀리건!’을 외치는 건 당연하다.

‘셀프 멀리건’도 있다. 동반자가 멀리건을 주지도 않았는데 ‘한 번 더 치겠다’면서 ‘이건 멀리건’이라고 외친다. ‘셀프 멀리건’은 골프장에서 볼 수 있는 ‘갑질’의 대표 사례다.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는 ‘셀프 멀리건’의 끝판왕으로 명성이 높다.

김종인 대표와 여야 3당 원내 지도부 동반 라운드에서 매홀 멀리건을 주고받았다는 것은 이날 동반자 4명이 모두 서로에게 최대 호의를 베풀었다는 뜻이다.

상대방 실수를 눈감아주고 스스럼없이 다시 한 번 더 기회를 줬다는 얘기다. 저마다 ‘을’을 자처한 셈이다.

골프규칙에서는 멀리건을 허용하지 않는다.

프로 대회를 포함해 공식 경기에서 멀리건을 주고받는 것은 명백한 규칙 위반이다. 골프 규칙 1조3항이 금지한 ‘합의의 반칙’에 해당한다.

골프에서 ‘합의의 반칙’은 규정 위반 행위를 서로 눈 감아 주는 것을 말한다.

골프에서 ‘합의의 반칙’에 대한 벌은 엄하다. 어지간한 규칙 위반은 벌타로 끝나지만 ‘합의의 반칙’을 저지르면 실격이다. 공소시효도 없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합의의 반칙을 저지른 사실이 드러나면 해당 경기 성적은 말소된다. 심지어 규칙을 위반하자고 합의만 하고 실제 실행에 옮기지 않아도 처벌을 받는다.

멀리건을 주고받자고 입을 맞췄다면, 실제 멀리건을 주고받지 않아도 실격이다.

김종인 대표와 여야 3당 원내 지도부는 이런 ‘합의의 반칙’을 저지르면서 골프를 쳤다.

하지만 어떠랴. 이들은 골프 대회에 출전한 게 아니니 벌을 받을 필요가 없다.

이들은 타수에 따라 순위를 가리려고 골프를 친 게 아니다. 친목과 화합이 목적이었다.

정치의 본질이 ‘합의’라는 걸 생각하면 이들의 멀리건 주고받기는 정치의 일부라고 보는 게 맞는 것 같다.

더구나 13일 개원한 20대 국회는 ‘협치'(協治)를 맨 앞에 내세운다. 협치를 하려면 합의는 필수다.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를 통해 협치를 해낸다면 골프 치면서 멀리건 주고받는 것쯤은 얼마든지 받아들이겠다는 국민이 대다수일 것이다.

여야 원내 지도부의 멀리건 골프 소식에 말로만 ‘원칙’과 ‘법규’를 내세우며 한 치 양보 없이 끝 간 데 없이 대치를 이어가는 정치보다는 합의하는 정치를 바라는 건 지나친 기대일까.

khoo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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