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진짜 허깨비 가득한 세상에 ‘허깨비’가 만들어낸 군주, ‘대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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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군’ 백성이 키워낸 왕, 500년이 지나도 맞닿은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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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지만 왕으로 취급받지 못해 군호 대신 붙은 호칭, ‘군’. 광해군과 연산군은 우리나라 역사 속 군으로 불리는 유일한 두 명의 왕이다. 사사로운 모든 일에 폭정을 일삼으며 공포의 대상이 되어서, 혹은 정치적인 이유로 임금에서 내몰린 그들은 수많은 작품 속 드라마를 가진 주인공이 되었다. 2017년, 다시 한 번 스크린 속으로 부름을 받은 광해군은 임진왜란이라는 또 다른 역사적 사실과 함께 부활했다.

하지만 정윤철 감독이 진두지휘한 ‘대립군’에는 광해군 이면에 있는 업적 조명이 아닌, 한 소년이 군주의 초석을 다져나가는 짧지만 깊숙한 일대기가 담겨있다. 그래서 광해가 아닌, 그를 둘러싼 이름 없는 민초들이 영화의 주인공이자 조선의 주인이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외세의 침략에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던 조선은 국가적 공황 사태에 빠진다. 이에 임금인 선조는 어린 광해(여진구 분)에게 조정을 나눈 분조를 맡긴 채 명나라로의 피란을 결정한다. 분조라는 명목 하에 전쟁 한가운데 홀로 남겨진 광해는 분조 일행과 함께 임금 대신 의병을 모아 전쟁에 맞서기 위해 강제로 멀고도 먼 강계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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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라의 망(亡)을 우려하고 쉴 새 없이 도망가는 호위 무사와 신하들 탓에, 남의 군역을 대신하며 먹고 사는 대립군들을 호위병으로 삼게 된다. 누군가를 대신해 군역을 치르는 스스로를 향해 ‘허깨비’라 칭하는 대립군의 수장 토우(이정재 분)와 그의 동료들은 광해를 무사히 데려다준 대가로 무관을 꿈꾸며 비루한 팔자를 고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지만 정체불명의 자객 습격과 왕세자를 잡으려는 일본군의 추격에 진땀의 연속을 맞이하게 된다.

본인의 목숨보다 동료들의 목숨이 더 소중했던 토우와 언제나 식솔들의 안위가 우선이었던 곡수(김무열 분)는 광해의 성장과 내적 갈등 속에서 심화되는 대립(對立)을 이어간다.

‘대립군’이라는 타이틀 덕에 요란하고 웅장한 전쟁 시퀀스를 기대할 수 있겠으나 실제 재현되는 전쟁은 다소 거리가 멀다. 초반부터 피 튀기는 액션 시퀀스로 강렬한 시작을 알리지만 서사가 깊어질수록 화려함 대신 디테일에 힘이 실린다. 전투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칼날의 부딪힘 대신 처절한 몸싸움, 성벽에서 던지는 돌의 힘은 생존을 위한 ‘백성들의 싸움’에 걸맞은 진정성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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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토우 캐릭터가 워낙 묵직할뿐더러, 감정의 분출이 잦지 않아 쉽사리 감정선의 변화를 읽어내기는 힘들다. 켜켜이 쌓여가는 감정의 단계를 보는 이가 대개 짐작할 뿐이다. 하지만 이정재의 호연 덕에 카리스마를 입은 토우가 제대로 발현됐다. 체중 감량을 포함한 파격적인 외형적 변신을 꾀하며 관객들의 내면으로까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여진구는 세자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유약한 어린 소년의 모습부터 결국 백성의 눈으로, 백성과 같은 자리에 서서 강인한 성장을 이뤄낸 간극까지 탁월하게 재해석하며 인물 성장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또한 주연 이상의 임팩트를 남긴 김무열은 배우로써의 재발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친 면모에 모든 걸 쏟아 부은 듯한 연기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휘한다. 특히 소리 한 곡을 뽑아낼 때는 일말의 카타르시스까지 선사한다.

무엇보다 흙빛 가득한 이 영화가 공감을 자아내는 건, 지금의 나라와 크게 다를 것 없이 인물들을 둘러싼 모든 것이 유사하게 관통하기 때문이다. 백성들의 안위와 삶은 관심 대상이 아니며, 제 한 몸과 권력을 중시 여기는 선조를 비롯한 관료들 그리고 그 척박함 속에서도 희생을 통한 희망을 꿈꾸는 백성들의 운명은 뭉클함을 만들어낸다.

그 시절로부터 500년이 지났음에도 현주소와 완전히 맞닿아있는 스크린 속 환경은 씁쓸함마저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립군’이 던지는 질문과 옳은 답은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리더를 표방하며 진하게 가슴을 울린다. 31일 개봉.
/9009055@naver.com fn스타 이예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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