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인터뷰①] 최희서, ‘뮤즈’ ‘상대역’을 넘어선 스로의 발광(發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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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서의 실력은 ‘동주’에서부터 100% 검증됐다. 가네코 후미코 후보에 이보다 더 적합한 인물은 없었다”

영화계에서 굵직한 위치에 있는 감독이 상업영화 속 생소한 신예 배우에게 이러한 깊은 신뢰를 드러내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내 인터뷰를 통해 만난 최희서와의 짧은 대화 끝에 그녀가 지닌 깊은 지성과 척박한 환경 속 피워낸 불굴의 의지를 발견했고 마냥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준익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박열’은 1923년 도쿄를 배경으로 해 6천 명의 조선인 학살을 은폐하려는 일제에 정면으로 맞선 조선 최고 불량 청년 박열(이제훈 분)과 그의 동지이자 연인 후미코(최희서 분)의 실화를 담은 영화로, 권력 혹은 정부 통치의 부재를 뜻하는 아나키즘의 시작을 알리며 독립을 위한 조선인들의 저항과 뜨거운 열망을 담아냈다.

극중 최희서는 박열과의 첫 만남에 자신을 아나키스트라고 소개하며 단번에 동거를 제안하는 가네코 후미코 역을 맡았다. 일본인이지만 일본 제국주의와 천황제를 반대하며 항일운동을 하는 여성으로 그 누구보다도 강인하다. 박열의 신념과 동지이자 연인인 쿠미코는 그와 함께 투쟁하기 위해 스스로 수감되고, 갖은 회유와 압박에도 주눅 들지 않은 채 본 제국을 뒤집어놓은 재판의 주인공을 자처한다.

쿠미코를 연기하는 최희서를 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실제 일본 여성을 보는 듯한 익살스러움과 순수한 모습은 물론, 바르지 못한 것을 향해 당당히 외칠 줄 아는 통쾌함을 자신이 지닌 다채로운 표정 연기로 올곧이 표현한다. 최희서가 그려낸 쿠미코는 극중 이제훈의 연인이 아닌, 그저 그 시대의 틀림을 바로잡기 위해 투쟁했던 빛나는 여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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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 장편영화다. 시나리오 제안 받았을 당시 기분이 남달랐겠다.
“믿겨지지가 않았어요. 감독님께서 ‘너의 의견도 알고 싶다’고 하셔서 영화 시나리오를 회의하는 단계부터 함께 참석했어요. 그 때 저를 염두에 두고 계신 건 알고 있었지만 캐스팅은 홀로 결정할 수 없는 거라는 걸 알고 있었고 언제든 다른 배우 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상업영화에서 조연이나 단역밖에 안 해봐서 저를 갑자기 여주인공으로 캐스팅하는 건 무리였을 것 같거든요. 그래서 기대를 하지는 않았고 시나리오 회의할 때도 이 인물들을 알고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재미있게 참여했어요. 꼭 강의 듣는 기분으로요.(웃음) 그런데 캐스팅까지 최종으로 되고 나서 한동안 와닿지 않을 정도로 좋았어요.”

▲ ‘동주’에 이어서 ‘박열’까지. 이준익의 뮤즈라는 수식어도 등장했다.
“굉장히 행복해요. 아마 감독님께서도 ‘뮤즈?’ ‘그게 뭐라고?’ 하실 것 같은데요.(웃음) 두 번 연달아 한 것 자체가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영화 같은 경우에는 최근 감독님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여성 캐릭터가 남자 주인공과 함께 투쟁하니까 신선하게 다가가고 여성분들도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앞으로 이런 좋은 캐릭터 맡기 힘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찍었어요.”

▲ 주인공으로 나선다는 부담감으로 출연을 망설이거나 고민하지는 않았나.
“고민은 전혀 하지 않았어요. 제가 그럴 자리는 아니었어요. ‘스케줄 있어요?’라고 물으셔서 제가 단번에 ‘올인할 수 있어요’라고 어필했죠.(웃음)”

▲ 사실 가네코 쿠미코가 박열에게 반하는 지점이 갑작스럽게 다가오기도 한다.
“사실 급작스러운 게 맞아요. 저도 캐릭터에 정당성이 느껴져야 대사가 나와요. 그래서 여러 가지 자서전을 많이 찾아봤어요. 자서전을 보니, 쿠미코가 ‘개새끼’라는 시를 읽었을 때 가슴 속에 뜨거운 것이 느껴졌다고 하더라고요. ‘이 사람이 하는 일을 나도 하고 싶었다’고 느꼈대요. 쿠미코가 뭘 해야 하는지 모르고 있었을 때, 이런 시를 쓰는 사람과 함께 투쟁하고 싶다고 느낀 거죠. 생각의 변화가 찾아온 거예요. 시의 강렬함도 강렬함이지만 시에 담겨있는 권력 저항적인 모습이 ‘왜 나는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로 다가온 거죠. 실제로는 영화처럼 바로 그날 고백을 한 건 아니고, 두 달을 기다렸대요. 사회주의 가게로 찾아왔을 때 첫 만남이 이뤄졌고 두 번을 만났을 때 쿠미코가 동거를 제안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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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려운 상황에 닥칠 때마다 안심하라는 듯이 짓던 ‘코 찡긋’ 표정이 기억에 남는다. 두 사람만의 시그니처 같았다.
“박열과 쿠미코의 시그널 같은 거죠. 다른 작품의 연인들은 포옹이나 다른 애정 표현을 할 수 있는데 이준익 감독님 영화에는 키스신 같은 건 없잖아요. 그래서 저희는 두 사람만의 연인 관계를 보여줄 수 있는 걸 찾으려고 이제훈 씨와 이야기했어요. 그래서 생각해낸 게 익살스러운 표정이었어요. 시나리오에는 없었지만 의도적으로 심어놓은 게 맞아요.(웃음)”

▲ 감정적으로 힘든 장면이 있었나.
“있었어요. 영화의 클라이맥스인 재판 장면이요. ‘나는 박열과 함께 죽을 것이다’고 말하는데 머리로는 이해가 갔지만 마음으로 와닿지 않았어요. 분명 이유는 알겠는데 연습을 들어갔을 때, 완벽히 제 안에서 소화가 되지 않은 느낌이었어요. 다행히 재판 장면을 마지막에 찍었는데, 쿠미코로 분해 연기를 하면서 많은 감정들이 쌓여갔고 이제훈 씨와의 호흡도 고조된 상태였어요. 그저 이 순간을 믿어보고 싶었어요. 이제훈 씨가 대사를 치는 순간, 느끼지 못한 감정들이 나왔어요. 감사했죠. 제 안에서 많이 축적된 상태에서 그 장면을 촬영해서 소화할 수 있던 것 같아요.”

▲ 이제훈 씨가 최희서 씨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더라.
“아니에요. 제가 먼저 팬이었어요. 워낙 팬이라고 말해서 민망할 정도에요. ‘파수꾼’ 때 영화관에서 보자마자 ‘저 배우 도대체 누구야?’ 라는 생각이 들면서 바로 사로잡혔어요. 그 때부터 이제훈 씨가 출연한 영화를 전부 영화관에서 찾아봤어요. 인터뷰도요.(웃음) 팬이라기보다는 롤모델로 느꼈어요. 이제훈 씨도 오래된 제 단편영화를 보시고 기억해주셔서 너무 놀라웠어요. 그게 초반 벽을 허무는 데에 큰 도움이 됐죠.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으로 느껴졌는데 먼저 단편영화 잘 봤다고 이야기를 해주셔서 되게 반가웠어요.”

▲ 연기 호흡도 수월했겠다.
“의지를 많이 했어요. 제가 아무것도 해도 이 사람만 바라보고, 말만 제대로 들어도 저절로 리액션을 할 수 있구나를 느낄 정도로 좋은 배우인 걸 알았어요. 상대방의 연기를 끌어주는 사람이에요.”

▲ 극중 가네코 후미코는 23살의 나이지만 강한 신념과 사상으로 절대 권력에 강하게 저항한다. 실제 최희서라면 어떨까.
“제가 불의를 보고 못 참는 성격이라 행동에 옮겼을 것 같긴 해요. 하지만 제 목숨을 담보로 재판을 이끌어가고 그런 사명감이 있었을지는 저도 확신을 할 수는 없어요. 영화를 보면 볼수록 ‘어떻게 저렇게 하지?’ 싶었어요. 어떻게 저런 분들이 실제로 계셨을까 싶어요. 그래도 저는 ‘불령사’ 동지 정도 되지는 않았을까 싶어요.(웃음)”
/9009055_star@fnnews.com fn스타 이예은 기자 사진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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