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날 수 없는 토르나토레와 모리꼬네의 합작품 [김성호의 영화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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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영화가난다’가 21번째로 소개할 영화는 <시네마 천국>, <스타 메이커>, <피아니스트의 전설>, <말레나>, <언노운 우먼> 등 영화사에 기록될 전설적인 작품들을 차례로 내어놓은 쥬세페 토르나토레의 12번째 연출작 <베스트 오퍼>다. 제작된 지 1년만인 2014년 한국에 선보여 5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샤인>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제프리 러쉬가 주인공 버질 올드먼을 연기했고 배두나와의 열애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짐 스터게스, 잔뼈굵은 노배우 도날드 서덜랜드도 비중있는 배역을 맡았다. 광장공포증으로 방에서 나오지 않고 살아가는 미지의 여인 클레어 역엔 독특한 분위기의 여배우 실비아 획스가 출연해 얼굴을 알렸다.

특히 지난 7월 세상을 떠난 엔니오 모리꼬네가 음악을 맡아 토르나토레와의 오랜 파트너 관계를 굳건히 했다.

영화는 세계적인 예술품 경매사이자 뛰어난 감정인 버질 올드먼의 삶을 비추며 시작한다. 예술품의 가치를 한 눈에 판단하는 직관과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당대 최고 경매사로 활약하는 올드먼. 사회적으로는 성공했지만 누구와도 인간적인 접촉을 갖지 않고 살아가는 그에게 어느날 의문의 전화가 한 통 걸려온다.

수화기 너머의 여인은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자기 앞으로 남겨진 오래된 가구들을 정리하기 위해 연락했다며 감정을 의뢰한다. 우여곡절 끝에 일을 맡은 올드먼은 광장공포증으로 외출하지 못하고 숨어지내는 저택의 여주인에게 연민을 느낀다. 연민은 점차 사랑으로 발전한다.

이 과정에서 엿보이는 올드먼과 여인의 캐릭터가 매우 인상적이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잭 니콜슨과 <악마는 프라마를 입는다>의 메릴 스트립을 떠오르게 하는 올드먼은 항시 장갑을 끼고 다른 사람들과 사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 괴팍한 인물이다.

그의 삶을 뒤흔드는 여인 역시 광장공포증으로 철저하게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서로와 너무나 닮아 있는 남녀의 모습을 대칭시켜 영화는 미묘한 긴장감을 자아내기 시작한다.

여인의 제안을 수락한 올드먼은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전설적인 발명가 보캉송의 ‘말하는 로봇’의 일부로 추정되는 부품을 발견한다. 영화는 이후 올드먼이 기술자의 도움을 받아 로봇을 복원하는 과정과 그와 클레어의 관계가 진전되는 모습을 동시에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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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모든 걸 걸고서라도 클레어를 사랑하려 한 올드먼의 선택과 그의 사랑에 응답한 클레어의 감격적인 변화, 그리고 이어진 반전과 절망까지. 유머러스하면서도 긴장감 넘치고 잔인하면서도 깊은 감동이 있는 이 영화를 통해 감독은 오랜 필모그래피를 통해 일관되게 이어온 어떤 정서를 전면에 드러낸다. 예술과 사랑에 대한.

인간에 대한 이해와 예술에 대한 이해가 서로 통하는 것임에도 올드먼이 마지막 선택에 실패한 건 그가 인간은 물론 예술을 바라보는 눈이 미숙했다는 것을 뜻한다. 지식과 기술적 분석을 통해 진위를 판단하는 역량은 갖추었으나 그 스스로가 입버릇처럼 말했던 표현을 가려내는 눈을 갖추지는 못했던 것이다.

예술작품의 진위를 판독하는 감정인이지만 스스로의 삶 전체가 기만적이었던 사내, 올드먼의 사랑과 절망을 통해 감독은 오직 겉 껍질을 핥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예술을 이해한다고 믿는 이들의 오만을 비웃는다.

<베스트 오퍼>는 토르나토레와 모리꼬네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를 충분히 지탱하는 좋은 작품이다. 위대한 엔니오 모리꼬네를 추억하며.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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