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리뷰] 폐오페라 극장 문을 열면, ‘유랑단’ 잔나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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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잔나비의 여덟 번째 공연은 멤버 최정훈의 말처럼 ‘폐오페라’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폐오페라란 폐쇄된 오페라 극장을 뜻하는 말로, 잔나비의 음악이 오페라 혹은 뮤지컬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왔던 최정훈이 아이디어를 제시한 단어다.

잔나비는 지난 15, 16일 서울 이화여자대학교 삼성홀에서 여덟 번째 단독 콘서트 ‘스톱, 룩 앤 리슨(Stop, look and listen)’을 개최했다. 이들이 준비한 공간에 들어간 순간 한 편의 고전 영화 속에 들어온 느낌을 받았다. 이 영화 속 배경은 버려진 오폐라 극장. 이곳에 들어선 순간, 한 유랑단의 공연이 몰아치듯 펼쳐진다.

무대 천장에 달려있는 천막들과 웅장한 느낌을 자아내는 기둥,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차오른 뿌연 연기는 순식간에 공연 콘셉트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마치 어두운 밤, 길을 헤매다가 들어간 건물 곳곳에 거미줄이 쳐있고 어딘가 음산해 보이는 폐오페라의 이미지를 줬다.

삐거덕거리는 문을 열고 조심스레 발을 내딛으면 화려한 조명과 함께 무대를 펼치고 있는 잔나비가 등장한다. 여기에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녹아 있다. 우스꽝스럽게 보이든 말든 자신의 흥대로 몸을 움직이는 익살스러운 모습, 온몸이 터져버릴 듯 감정을 응축한 목소리와 연주는 오로지 잔나비만의 서커스였다.

공연의 첫 곡이자 잔나비의 데뷔곡인 ‘로켓트’는 로맨틱과 미스터리한 느낌을 왔다갔다하는 변주가 특징인 곡으로, 이번 콘셉트를 한껏 살리기에 가장 적합한 곡이었다. 잔나비는 ‘서프라이즈!(Surprise!)’ ‘사랑하긴 했었나요 스쳐가는 인연이었나요 짧지 않은 우리 함께했던 시간들이 자꾸 나를 가둬두네’로 분위기를 이어갔다.

이후 이어진 ‘뷰티풀(Beatiful)’ ‘얼마나 좋아’ ‘꿈나라 별나라’는 잔나비 특유의 흥을 엿볼 수 있는 순서였다. 어딘가 철없어 보이고 어딘가 순수해 보이는 이들의 무대는 한순간에 짧은 동화 한 편을 써내려갔다. 아름다운 무드는 ‘노벰버 레인(Novemer Rain)’ ‘위시(wish)’를 비롯해 신곡들로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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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밴드의 공연에는 VCR이 없는 것과 달리, 잔나비는 한 편의 영상을 공개했다. 촬영에 심의까지 마쳤지만 세상에 알려지지 못한 ‘로켓트’ 뮤직비디오 일부가 담긴 이 영상은 단순히 시간을 벌기 위해 틀어놓은 것이 아니었다. 잔나비의 제2막을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2막의 첫 번째 순서는 이번 공연의 가장 하이라이트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멤버 유영현의 피아노 연주로 시작된 무대는 ‘너같아’ ‘달’ ‘굿나잇’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까지 묵직하게 몰아쳤다.

특히 유영현이 한껏 힘을 실어 밀어내는 건반 소리 하나하나는 숨을 죽이게 만들었고, 불규칙하고 위태롭지만 감미로운 연주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했다. 이 연주에서 보컬 최정훈의 노래로 이어지는 찰나는 소름이 돋았고,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의 후반부에서는 김도형이 최정훈에게 “이번에는 울지 않았다”고 할 만큼 몰입의 절정을 보여줬다.

엔딩은 역시나 잔나비 특유의 흥으로 채워졌다. ‘파라다이스’ ‘쿡쿠(Cuckoo)’ ‘알록달록’ ‘정글’ ‘씨 유어 아이즈(See your eyes)’는 관객 모두 일어나 다함께 즐겼다. 모두가 주변은 신경 쓰지 않은 채 제멋대로 몸을 흔드는 모습은 페스티벌의 열기를 그대로 옮겨 놓은 듯 했다.

웅장하고 서정적이며 신나기까지, 노련한 강약 조절과 함께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한 콘셉트와 세트리스트는 조화를 이뤄 깔끔한 공연을 만들어냈다. 이 디테일은 멤버들이 직접 공연 준비에 참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최정훈은 편곡과 더불어 의상, 무대장치, 스토리텔링 등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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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두운 공연장에서 온전히 노래와 연주에만 몰입한 멤버들도 한몫했다. 멤버들은 무대 위를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도 하고, 자신의 소리를 한껏 뿜어내는 이들의 모습은 열정을 뛰어 넘어 ‘불’ 같았다. 최정훈은 곡의 마지막 소절을 부른 뒤 고개를 떨어뜨릴 때도 여운을 놓치지 않는 집중력까지 보였다.

공연 말미, 최정훈은 이번 공연에 대해 “어릴 적 엄마가 사준 큰 옷 같다. 안 맞지만 계속 입고 다니면서 자랑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다”라면서 얼떨떨한 기분과 만족감이 섞인 미묘한 기분을 드러냈다. 이틀 동안 이렇게 큰 규모의 공연장에서 콘서트를 한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잔나비는 이번 공연을 통해 그 큰 옷에 몸을 집어넣을 수 있을 만큼 성장했고, 오히려 그 옷을 맞춤복으로 만들어냈다. 넓어진 공연장에 잔나비 특유의 매력이 묻힐까 걱정했지만, 이들의 공연을 보고 나온 뒤 한바탕 꿈을 꾼 것 같은 기분이 든 것을 보니 기우였다.

/lshsh324_star@fnnews.com 이소희 기자 사진=페포니뮤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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