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경엽 감독과 토미 라소다 [성일만 야구선임기자의 핀치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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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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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부1(1972년·프란시스 코폴라 감독)’은 ‘시민 케인(1941년·오손 웰스 감독)’과 함께 영화역사상 최고의 명작으로 손꼽힌다. 대부시리즈는 수많은 명대사를 낳았다. ‘거절할 수 없는 제안’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인기가수 조니는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감독은 요지부동이다. 결국 그는 자신의 대부이자 마피아 두목(말론 브란도 분)에게 도움을 청한다. 마피아 두목은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여긴 이 일을 해결한다.

조니는 영화의 주역을 맡게 된다. 그 과정에서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라는 무시무시한 말이 오간다. 자신의 요청을 차마 거절할 수 없도록 영화감독을 잔인한 상황에 빠트려 꼼짝 못하게 엮는다.

영화 속 가수 조니의 실제 모델이 프랭크 시나트라라는 소문이 있다. 프랭크 시나트라는 지난 9일(한국시간) 타계한 토미 라소다 전 LA 다저스 감독과 친했다. 라소다 감독 역시 1976년 다저스 사령탑에 오르자 “마피아가 뒤를 봐 준다”는 흉흉한 소문을 들어야 했다.

토미 라소다는 투수 출신이다. 현역 시절 메이저리그에선 거의 활동하지 못했다. 몇 번 경기에 나왔으나 승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그런 라소다가 다저스 감독에 임명되자 “마피아 작품이다”는 냉소적 반응이 쏟아 졌다. 시나트라와 라소다는 모두 이탈리아계다.

라소다는 두 차례 팀을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다저스가 지난 해 우승하기 전 마지막 우승인 1988년에 이룬 기적도 라소다 작품이다. 오클랜드와의 1차전서 커크 깁슨의 월드시리즈 사상 가장 극적인 대타 끝내기 홈런 역시 라소다의 머릿속 영감에서 나왔다. (기자의 칼럼 제목 핀치히터는 깁슨의 이 홈런에서 빌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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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소다는 그의 자서전에서 “벤치에 오래 앉아 있었던 선수였기 때문에 감독 수업에 도움이 됐다. 다른 선수들은 자신의 플레이에만 신경 썼지만 나는 다른 선수들 플레이를 관찰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명선수는 명감독이 되기 힘들다. 뒤집어 말하면 명감독이 되기엔 무명 출신이 더 유리하다. 라소다의 자서전은 그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다. 뉴욕 타임스의 파일러 케프너 기자는 라소다의 타계 소식을 전하면서 “그는 야구의 시스템을 잘 이해했다. 스카우트와 선수 개발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은 몇 안 되는 지도자 중 한 명이었다”고 소개했다.

염경엽 전 SK감독이 올 초 메이저리그 연수를 떠난다. 샌디에이고로 건너가 얼마 전 계약한 김하성과 합류할 예정이다. 염경엽 감독은 사실상 국내 무명 출신 사령탑 1호다. 2013년 넥센이 염 감독을 선임했을 때 반응은 ‘정말?’이었다.

당시만 해도 프로에서 이름 난 선수 출신이 감독 자리를 독점했다. 명선수가 반드시 명감독은 아니어도 명선수가 감독이 되는 것은 확실했다. 염 감독이 넥센을 가을 야구로 이끌며 돌풍을 일으키자 트렌드가 확 바뀌었다. 이제는 무명 출신 감독이 대세다.

토미 라소다는 “압박감을 느낀다는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고 그의 자서전에 썼다. 많은 야구감독들이 실패한 후 한발 물러선다. 백척간두에서 한 발 더 전진하는 염경엽 감독에게 박수를 보낸다.

texan509@fnnews.com 성일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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