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영화가 그의 삶보다 감각적이지 못할 때 [김성호의 영화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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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흔히 받아들여지는 것과 달리, 혁신이란 존재하지 않았던 사물이나 개념이 등장해 기존의 양식을 완전히 바꾸어놓는 것이 아니다. 기존에도 존재했던 것이 새롭게 해석되고 적용되며 나타나는 긍정적인 변화가 혁신이다.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은 휴대폰과 인터넷, MP3를 통합한 것이었다. SNS 역시 인터넷과 사회적 관계망을 접합시킨 것이다. 그리고 여기, 또 하나의 전설적 혁신사례가 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패션 디자이너 중 한 명, 이브 생 로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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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의 혁명가’ 이브 생 로랑

최초로 여성의류에 바지정장을 도입하고 엄숙했던 패션쇼 무대에 음악을 사용한 디자이너. 현대미술작품을 패션에 적용하는 등 ‘처음’이라는 타이틀을 유독 많이 소유한 패션 혁명가. <라이프>는 이브 생 로랑의 첫 번째 컬렉션 이후 "샤넬 이후 최고의 디자이너"라고 격찬했다.

갓 약관을 넘긴 나이에 프랑스 최고의 패션 브랜드 ‘크리스찬 디올’의 컬렉션을 총괄했고, 이후 독자적인 브랜드 YSL을 창업해 전 세계 패션을 선도한 이브 생 로랑은 프랑스의 국가적 자랑이었다. 그러므로 2008년 6월 1일 이브 생 로랑이 타계한 뒤 프랑스 영화계가 그의 전기영화를 만드는 작업에 착수한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한 사람의 삶, 그 자체에 천착해 인생을 복원해나가는 전기영화는 여타 장르영화와는 또다른 맛과 멋이 있는 갈래다. 그동안 수많은 예술가, 스포츠선수, 정치인들의 삶이 재구성됐고, 그 중 몇은 영화사에 오래도록 기억될 만한 작품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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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는 IT, 프랑스는 패션

2010년에 페이스북 창립자 마크 주커버그의 전기영화 <소셜 네트워크>가, 2013년에는 스티브 잡스의 성공담을 담은 애쉬튼 커쳐 주연의 <잡스>가 제작됐다. 소니 픽쳐스에서도 2015년 대니 보일 감독과 함께 또 다른 잡스의 전기영화 <스티브 잡스>를 내놨다.

할리우드에서 IT분야 사업가들이 전기영화 주인공으로 각광받고 있다면, 프랑스 영화계에선 패션 디자이너들이 중심에 섰다. 2009년 가브리엘 코코 샤넬의 전기영화 <코코 샤넬>이 앤 폰테인의 연출로 만들어졌고, 2014년엔 <이브 생 로랑>이 개봉했다.

영화는 이브 생 로랑(피에르 니네이 분)의 스무 살 무렵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브는 프랑스 최고의 패션 브랜드 크리스찬 디올사의 젊은 디자이너다.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그는 크리스찬 디올의 갑작스런 사망 이후 후계자로 낙점된다. 이브는 디올 하우스에서 첫 컬렉션을 성공적으로 마치며 패션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지만 알제리 전쟁과 관련해 입대통지를 받게 된다.

사회적 논란까지 빚어가며 입영한 뒤 군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정신병을 얻어 입원하기까지는 영웅서사의 시작일 뿐이다. 크리스찬 디올이 그를 해고한 뒤 재기에 성공해 세운 회사가 무려 YSL이기 때문이다. 좌절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친 이브를 일으켜 세운 건 그의 친구이자 동반자인 피에르 베르제(기욤 갈리엔 분)다. 탁월한 사업수완을 발휘해 이브와 함께 YSL을 설립한 바로 그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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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적인 묘사 속 소모되는 캐릭터

이 영화가 승부를 건 지점은 여기부터다. 이브 생 로랑의 단순한 성공담을 그려내는 것을 넘어 그의 삶 가운데 충분히 드러나지 못한 사랑과 결핍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를 위해 감독은 극도로 내성적이고 예민했던 이브의 삶을 매우 가까이에서 그리려 한다. 성공 후 방탕한 삶에 젖어 스스로를 망가뜨려가는 그의 모습을 비추고, 그런 행동을 하게 된 원인을 진단하려 한다.

동성애자인 이브와 베르제의 만남에서부터 그들의 끝없는 갈등, 나아가 이브의 통제되지 않는 열정과 천재성, 내면적 결핍으로 인한 방황과 고뇌까지를 줄줄이 묘사한다. 정말이지 수많은 에피소드를 통해 방황의 수많은 이유를 구구절절 늘어놓는 것이다.

불행히도 이런 노력은 헛되다. 이브 생 로랑의 방황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확실한 문제의식 없이 자잘한 문제거리를 병렬로 늘어놓는 선택이 결국 한 인간을 더욱 단편적인 수준에서 이해하게끔 하는 데 그치는 것이다.

알제리 전쟁과 동성애, 창작의 고통 등 이브를 고통스럽게 한 수많은 부분들을 그저 언급만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가 고통을 겪는 상황 그 자체에 천착하는 편이 더욱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나의 이야기를 진득하고 깊이있게 풀어나가는 창작자의 집념도 못내 아쉽다. 

그가 무엇으로부터 어떻게 영감을 얻었고, 그래서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지, 그에 대한 이야기는 스쳐 지나갈 뿐이다. 몬드리안 컬렉션과 몇 번의 패션쇼 만으로는 이브 생 로랑이 패션계에 미친 위대한 업적이 충분히 표현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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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영화가 그의 삶보다 감각적이지 못할 때

또 하나의 아쉬움은 영화가 전혀 세련되지도 감각적이지도 않다는 것이다. 전설적인 패션 디자이너의 전기영화가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 정작 그의 삶에 미치지 못한다. 만약 피에르 니네이와 기욤 갈리엔을 비롯한 배우들의 섬세하고 밀도있는 연기가 없었다면 이 영화는 지금의 수준에도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피에르 베르제-이브 생 로랑 재단’의 협조를 받아 77벌의 오리지널 의상을 그대로 사용했고, YSL의 핵심 컬렉션을 그대로 재현했다는 홍보문구는 그저 홍보문구일 뿐이다. 20세기 최고의 감각적인 인물을 다뤘음에도 영화가 전혀 감각적이지 않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영화는 낙제점을 면할 수 없다.

이브 생 로랑의 성취는 그가 쓴 원단이 좋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감각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집중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다만 여기저기 숨어 있는 당대 명사들을 찾는 재미는 쏠쏠하다. 크리스찬 디올, 칼 라거펠트, 장 콕토, 앤디 워홀, 헬레나 루빈스타인, 엘리자베스 아넨 등이 스크린 위에서 움직인다. 수많은 흠결에도 불구하고, <이브 생 로랑>만의 기쁨이 있는 것이다.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영화가난다’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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