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만 다루면 무조건 박수치는 시대는 끝났다 [김성호의 영화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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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예술의 소재로 전쟁만큼 매력적인 주제는 찾기 힘들다. 생과 사를 넘나들며 인간의 극단적인 모습을 들추어내는 것이 바로 전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인류역사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홀로코스트는 영화나 소설에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제공해왔다. 이 영화 <피아니스트>도 그런 영화 중 하나다.

영화는 홀로코스트 와중에 살아남은 유태인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에드리언 브로디 분)의 자전적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흥미로운 주제에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노련한 연출과 에드리언 브로디의 열연이 더해져 유태인 감독이 만들어낸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 중에선 독보적인 명성을 얻었다. 에드리언 브로디에겐 세계적인 배우로 도약하는 발판이 됐고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유태인 감독 로만 폴란스키에겐 자신의 경험에 대한 분출의 통로가 되었다. 평단의 찬사와 여러 트로피까지 주어져 대단한 성공을 실감케 했다.

하지만 정말 대단한 작품인가.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한 피아니스트의 자전적 이야기에 불과하진 않은가. <피아니스트>가 한 피아니스트의 비극적인 시간 이외에 어떤 주목할 만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지 돌아본다. 건조함을 가장한 시선은 나치의 잔악한 행위를 통해 관객에게 쇼크를 강요하고, 보여주기에 치중한 연출은 그 너머의 주제를 살려내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지.

혹자는 비극의 보여짐,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느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분명히 영화는 유태계 원작자와 감독 사이를 오가며 제작됐다. 영화는 그들 스스로 목적했을 나치의 만행과 유태인의 고난을 스필만의 자전적 이야기를 통해 효과적으로 영상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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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찬사일색의 평가와 엄청난 성취에 약간의 의문을 가질 필요도 있어 보인다. 148분에 이르는 긴 러닝타임 동안 <피아니스트>는 나치의 잔혹함만을 반복하여 보여준다. 주인공의 고난과 그에 대한 동정을 자아낼 뿐인 영상 속에서 스필만의 자서전 이상의 가치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영화의 불완전함은 독일인 장교 호젠펠트(토마스 크레취만 분)에게서도 찾을 수 있다. 그는 독일인 장교임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연주한다는 이유만으로 스필만을 살려주는 인물이다. 영화는 호젠펠트를 미화하는 걸 꺼리지 않는데, 그의 등장 신마다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삽입해 그가 음악애호가임을 암시하고 스필만에게 베푸는 호의를 통해 친절함을 부각시킨다.

그가 유태인에게 만행을 행한 독일군의 장교이고 하급 장교들의 만행을 묵인하며 포로로 붙잡혀서는 스필만에게 연락을 취해 살길을 찾으려는 전범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충분히 강조되지 않는다.

고찰 없이 재생산되는 수많은 홀로코스트 영화들은 최근 들어 적잖은 비판에 직면했다. 홀로코스트를 스릴러나 멜로의 방식으로 조명하고, 유태인이 아닌 집시 피해자의 시선에서 풀어나가는 영화가 거듭 등장하고 있는 최근의 경향은 그 반작용이다. 홀로코스트는 더는 작품성에 대한 ‘묻지마티켓’이 되어선 안 된다.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영화가난다’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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