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초점] “강남역 사건 모티브 NO”…‘토일렛’, 자극성 앞에 내려놓은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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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강남역 인근 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남성에게 무차별적으로 살인을 당하며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렸던 ‘강남역 살인 사건’. 살인 동기는 어처구니없으리만큼 간단했다. 자신보다 약자인 상대가 여성이었기 때문. 이후 해당 사건은 젠더 이슈, 여성 인권 등 수많은 쟁점들을 만들어내며 소극적이었던 국내 여성들이 행동하게끔 만드는 신호탄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사한 사건이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고 강남역 사건은 이제야 겨우 1년이 지났다. 이 가운데, ‘강남역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홍보한 이상훈 감독의 영화 ‘토일렛’이 베일을 벗으며 많은 대중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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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시발점은 포스터 속 홍보문구였다. 포스터에는 칼을 든 채 위협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 주인공의 모습이 그려졌다. 상단에는 ‘모든 것은 우발적이고 즉흥적인 분노 때문이었다’는 홍보 문구가 함께 담겼다. 명백히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왜곡시키는 문장이다. 실제로 강남역 사건의 가해자는 범행 당시, 화장실 안에서 여성이 나오길 한 시간 가량을 기다렸다. 결코 충동적인 행위로 볼 수 없음은 당연하다.

이에 이상훈 감독은 직접 입을 열었다. 이 감독은 “영화 ‘토일렛’은 강남역 사건과는 전혀 무관한 영화이고 가해자를 두둔하거나 감싸는 영화는 더더욱 아니다. 저도 그 누구보다 강남역 사건에 울분한 사람이고 범죄자에 대해 지탄하는 사람”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토일렛’이라는 영화를 만든 계기도 그런 범죄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자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작품이다”며 “기회가 돼서 작품을 보시면 알겠지만 완벽한 범죄는 없고 범죄자는 결국 그 벌을 받는다는 것이 영화의 메시지이자 주 내용이다”고 오해를 바로 잡기 위해 나섰다.

홍보사 역시 입장을 밝혔다. 홍보사 측은 “본 작품은 특정 사건을 분석해 재조명 한 것이 아닌, 묻지마 살인, 층간 소음 살인 사건 등 일련의 충동적, 우발적 범죄들에 대해서 사회적 경각심을 주는 메시지를 담으려고 노력한 작품이다”며 “영화 제작 당시 ‘강남역 사건’도 소재들 중에 포함은 되었으나, 그 외에도 사회문제로 거론되는 다양한 흉악범죄들에 대한 검토가 있었고, 보도자료 본문 내용에 기획의도를 담고, 보도자료의 메인 카피를 정하던 중, 여러 소재 중 하나인 해당 사건을 언급하게 되었다”고 강조했다.

또한 “보도자료는 배급사와 홍보사에서 작성하여 배포하였고, 이상훈 감독 본인은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감독과 그의 가족에 대한 비난이나 인신공격 등은 삼가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이상훈 감독은 ‘강남역 살인 사건’을 모티브로 삼지 않았고, 홍보사 측에서 일방적으로 해당 문구를 사용한 것이라는 해명이었다. 하지만 찜찜한 구석을 지울 수 없다. 함께 공개된 시놉시스 역시 논란의 불씨가 되었기 때문. 시놉시스 내용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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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훈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술집에 모인 친구 상협과 현태. 때마침 옆 테이블의 혜정과 미진의 미모가 눈에 들어온다. 상협은 늦게 온 벌칙으로 그녀들에게 다가가 작업을 걸지만 거부당하고 자리에 돌아온다. 잠시 후, 담배를 피우러 나갔던 상협과 현태는 먼저 나와 골목 한쪽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미진과 혜정의 험담을 듣게 되고 순간, 분노한다. 뒤이어 술집을 나오는 미진과 혜정을 미행해 건물 안 여자 화장실로 들어간 상협과 현태는 여자들을 칼로 위협하며 겁탈을 시도하는데…>

철저하게 가해자 시선으로 그려진 해당 시놉시스는 “거부를 당했기 때문에”라는 살해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그른 행위에 정당성이 있음을 부추긴다. 혹여나 이후 ‘토일렛’을 접할 일부 대중이, ‘거절한’ 피해자 여성에게도 책임을 전가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배제할 수 없다.

‘토일렛’의 장르는 스릴러다. 이미 현실의 수많은 여성들은 위협을 당하고 있고, 현실에서 만연하게 느끼는 공포를 단순히 자극적인 영화 소재로 승화시켜 마치 작품인 양 둔갑시키는 건 무모한 일에 가깝다. 창작자인 이상훈 감독이 펼쳐낸 영화 속 이야기는 소비할만한 거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피해자의 유가족들은 여전히 얼룩진 상처를 안고 있고, 많은 여성들과 약자들은 범죄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정 사건을 연상시킬 만한 이야기가 영화화되어, 심지어 가해자의 눈으로 연출되어 수면 위로 떠오른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강남역 사건’뿐 아니라 소재로 언급 된 일련의 사건과도 전혀 상관이 없다”는 영화 측의 해명이 깔끔하지 못한 이유다.
/9009055_star@fnnews.com fn스타 이예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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