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초점] ‘불한당’이 쏘아올린 작은 공, 설경구에게 화려한 비상을 안기다

0

201709051731171335.jpg

‘지천명 아이돌’, 지천명과 아이돌은 결코 닿을 수 없는 평행선 같은 절대적 관계이지만 배우 설경구에게는 가능한 일이다. 1968년생 배우에게 찾아온 팬덤형 애정은 그에게 단비였고, 연기 인생 2막을 활짝 열 기폭제가 됐다.

설경구는 그 누구도 이견을 낼 수 없는 묵직한 배우였다. ‘공공의 적’ 시리즈 ‘오아시스’ ‘실미도’ ‘해운대’ ‘감시자들’ ‘타워’ 등 국내 내로라하는 작품들에 출연하면서 강단 있게 일직선으로 곱게 뻗어나가고 있던 그였다.

하지만 독보적인 파워와 강력한 존재감으로 굳건할 것만 같았던 설경구의 연기 곡선은 어느새 서서히 하락세를 타기 시작했다. ‘나의 독재자’(38만 명) ‘서부전선’(60만 명) ‘루시드 드림’(10만 명)까지 그가 주인공으로 나선 작품들이 연이어 흥행에 실패함에 따라 대한민국 최고 흥행배우라는 타이틀이 점차 빛바래질 위기에 처했다. 각각의 캐릭터마다 미묘한 차이만이 있을 뿐, 유사한 결을 지닌 캐릭터성에 관객들은 물론이거니와 설경구 본인마저 매너리즘에 빠질 무렵이었다.

그 때, 설경구 말을 빌리면 “정신을 번쩍 차리게 한” 영화가 등장했다. 그에게 돌파구이자 구원자로 모습을 비춘 작품은 변성현 감독의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이하 ‘불한당’)이었다.

올해 5월 개봉한 ‘불한당’은 범죄조직의 1인자를 노리는 재호(설경구 분)와 세상 무서운 것 없는 패기 넘치는 신참 현수(임시완 분)의 의리와 배신을 담은 범죄액션드라마로, 제 70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까지 초청된 쾌거를 안은 작품이다.

201709051731188381.jpg

설경구는 ‘불한당’에서 혁신적인 변화를 꾀한다. 까무잡잡한 얼굴에 인생 역경이 가득 묻었던 얼굴을 지우고 말끔하고 세련된, 섹시한 외피를 두르기 시작했다. 화려한 미장센에 재기발랄한 비주얼을 더하면서도 느와르의 본질을 잃지 않은, 변성현 감독의 손길에 ‘감긴’ 설경구는 멋스러움을 제대로 장착했다.

단정하게 넘긴 헤어스타일, 쓰리피스 정장을 입은 채 정박자로 뽐낸 설경구의 액션은 여지껏 보지 못했던 깔끔함을 선사했고, 임시완과의 진한 애증 관계는 설경구의 새로운 감성을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외형적 변화뿐만 아니라, 연기적인 변주 역시 유려하게 해낸 셈이다. “구겨져있던 설경구를 빳빳하게 펴주고 싶었다”는 변성현 감독의 목표가 제대로 고지에 올랐다.

똑똑한 연출 덕에 새로운 느와르의 탄생이라는 극찬이 함께 쏟아졌지만 변성현 감독의 SNS을 둘러싼 논란이 심화되면서 관객수는 93만 명으로 그쳤다. 스코어로만 본다면 결과적으로 흥행에 실패한 것. 하지만 배우들에게만큼은 관객들의 진한 애정의 방점을 선물했다. 영화 ‘아가씨’(2016) ‘아수라’(2016)를 통해 다시 점화된 영화 팬덤문화는 ‘불한당’으로 넘어갔고 ‘불한당원’이라는 신드롬급의 팬덤이 생겨났다. 한재호 역의 설경구는 그 중심에 서있었다.

남성 위주의 대중적 인기를 누리던 설경구에게 수많은 젊은 여성 팬층이 생겨났고 그들이 보이는 애정의 밀도는 더할 나위 없이 높았다. 대형 인기를 누리는 아이돌 및 배우들만 한다는 지하철 광고부터 굿즈 판매, 서포트, 설경구 필모그래피 상영회 등 각종 이벤트가 이어지면서 열렬한 사랑을 보냈다.

설경구 역시 기쁘게 화답했다. 팬페이지에 직접 찾아가 선물 인증글을 남기는가 하면, 연신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포효, 남자다움이 어울릴 것만 같던 그는 팬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애교를 펼치는가 하면 다정한 모습을 아끼지 않았다.

이러한 쌍방향적인 소통은 보기 좋은 선례도 함께 남겼다. 최근,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언론시사회에서 설현을 향해 ‘백치미’라고 언급하며 대중의 뭇매를 맞은 설경구는 팬들의 지적도 피해갈 수 없었다. 설경구는 하루 뒤, “적절하지 못한 표현 사과드린다”며 “앞으로 말하는 데에 있어서 항상 신중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팬들의 진심이 그를 변화하게 만든 것이다.

201709051731181199.jpg


탄탄한 연기력에 깊은 팬들의 애정까지, 남부럽지 않을 환경을 갖춘 설경구는 이제 ‘살인자의 기억법’으로 연기 인생 2막에 박차를 가한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은퇴한 연쇄살인범이 새로운 살인범의 등장으로 잊혀졌던 살인습관이 되살아나며 벌어지는 범죄 스릴러. 설경구는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는 은퇴한 연쇄살인범 병수 역을 맡아 또 다시 파격적인 변신을 감행했다는 평이다.

설경구는 ‘불한당’ 당시 인터뷰를 통해 “근래 찍었던 몇 작품에서 큰 고민 없이 연기를 했다. 이러다가 내가 사라질 것 같았다. 창피하기 시작했고, 고민과 노력을 기울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 시점에 ‘불한당’과 ‘살인자의 기억’을 만났다”고 밝혔다. 설경구에게 찾아온 새로운 전성기는, 진솔하게 고뇌하고 자신의 치부를 인정한 그에게 내린 선물과도 같다.


/9009055_star@fnnews.com fn스타 이예은 기자 사진 쇼박스, CJ엔터테인먼트

Facebook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