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조로 변호사의 작품 속 법률산책 – ‘싱크홀’의 유기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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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꺼짐 현상’이라고 불리는 싱크홀(sinkhole)은 지반이 내려앉아 지면에 커다란 웅덩이나 구멍이 생기는 현상을 말합니다. 싱크홀의 크기는 작은 것부터 거대한 것까지 천차만별입니다. 바다에서 발생하는 싱크홀은 블루홀이라고 합니다.

영화 ‘싱크홀’(감독 김지훈)은 도심에서 발생한 땅꺼짐으로 빌라 한 동 전체가 싱크홀에 빠져버린 상황에서 발생하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입니다. 재난 영화에 코미디와 감동을 가미하여 가볍게 볼 수 있지만 약간의 어색함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작품 속에서, 싱크홀에 빠진 박동원 과장(김성균 분)은 자신의 아들을 구하면서 할머니는 구조하지 않습니다. 위기에 처한 할머니를 구하지 않고 싱크홀을 탈출한 박동원에게 유기죄(유기치사죄)가 성립할까요?

유기죄는 노유, 질병 기타 사정으로 인해 부조를 요하는 자를 보호할 법률상, 계약상 의무있는 사람이 유기하는 때에 성립하는 범죄입니다. 유기죄는 유기되는 사람의 생명, 신체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서 규정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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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유, 질병 기타 사정으로 인해 부조를 요하는 자’(요부조자)의 의미는 다른 사람의 도움없이는 자기의 생명, 신체에 대한 위험을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노약자, 부상자, 분만 중의 부녀 등처럼 타인의 도움없이 생명, 신체에 대한 위험을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사람이 요부조자입니다.

요부조자를 보호할 법률상, 계약상 의무있는 자(보호의무자)에게 보호의무는 요부조자의 생명, 신체에 대한 위험을 보호해야 할 의무입니다. 경제적 곤궁을 원인으로 하는 민법상 부양의무와 생명, 신체에 대한 위험을 원인으로 하는 유기죄의 보호의무는 일치하지 않습니다.

보호의무의 발생 근거는 법률과 계약에 한정될 뿐 사무관리, 관습, 조리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강간치상의 범행으로 피해자가 실신 상태에 있더라도 가해자가 피해자를 구조하지 않고 방치하였더라도 가해자에게 피해자를 보호할 법률상, 계약상 의무가 없기 때문에 강간치상죄는 성립하지만 유기죄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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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의 날씨에 우연히 같이 길을 가다가 다른 사람이 개울에 빠졌음에도 가까운 민가에 알리거나 구조요청도 하지 않았더라도 우연히 동행한 사람에게는 법률상, 계약상 보호의무가 없으므로 유기죄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유기라는 것은 요부조자를 보호 없는 상태에 두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수혈이 필요한 미성년자 딸을 둔 부모가 종교상의 이유로 수혈을 막아 사망하게 한 경우, 식사도 거르면서 며칠간 술만 마셔 만취한 손님을 주점에 방치하여 저체온증으로 사망하게 한 경우에는 유기치사죄가 성립합니다.

영화 속에서, 지하 500m 싱크홀에 떨어진 할머니는 타인의 도움없이 자신의 생명, 신체에 대한 위험을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요부조자입니다. 그렇지만 같은 빌라에 거주하는 이웃 박동원 과장은 이웃인 할머니를 보호할 법률상, 계약상 의무가 없습니다.

박동원이 할머니를 구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유기죄는 성립하지 않습니다. 보호의무가 없기 때문에 할머니가 사망하였다고 하더라도 유기치사죄도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박동원이 구할 수 있었는데 어린 아들을 구하지 않고 싱크홀을 빠져나왔다면 유기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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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태일 변호사 이조로 zorrokhan@naver.com 사진 = (주)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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