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의 기록이 대단한 이유 [성일만의 핀치히터]

0

202109301041522159.jpg일본 언론은 ‘세계의 왕’이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왕정치(王貞治·오 사다하루)의 홈런 기록(868개)에 대한 그들만의 자부심이다. 메이저리그 기록 보유자인 배리 본즈(762개)보다 106개나 더 많으니 그럴 만하다.

그러나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 기록에는 허점이 많다. 그와 같은 시대에 활약한 백인천의 증언에 따르면 왕정치는 압축배트라는 반칙 장비를 사용했다. 통나무가 아닌 조각낸 나무에 화학재료를 섞은 뒤 압축시켜 반발력을 높인 배트다. 국내 프로야구서도 여러번 시비를 불러 온 부정 도구다.

압축배트는 일반배트보다 5~10m 가량 더 멀리 타구를 보낸다. 일본프로야구계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쉬쉬했다. 야구산업을 위해 신화가 필요해서다. 1980년 왕정치가 은퇴한 후 이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배리 본즈는 신기록을 세우고도 ‘명예의 전당’ 입구조차 서보지 못했다. 2013년 자격을 갖춘 첫해 고작 36.2%에 그쳤다. 정상적이라면 만장일치에서 한 표만 모자라도 놀랄 일이었다. 그의 기록이 금지약물에 의해 오염됐기 때문이다. 미국의 한 야구기자는 ‘국가적 환멸’이라는 표현까지 썼다.

본즈는 2007년 8월 8일 행크 애런(755개)의 홈런 기록을 깨트렸다. 애런이 순수하게 자신의 힘으로 차곡차곡 쌓아올린 금자탑을 허물었다. 약물이라는 고약한 화학물질의 도움을 받은 본즈는 헐크로 변신했다. 홈런의 개수는 공인받았지만 팬들은 그를 진정한 챔피언으로 여기지 않는다.

애런은 1974년 4월 8일 ‘전설’ 베이브 루스의 기록(714개)을 넘어섰다. 1970년대만 해도 그가 소속된 남부 애틀랜타엔 인종 차별의 악습이 여전했다. 흑인 애런이 루스의 기록을 깨트리는 것을 백인들은 참기 어려워했다.

애런은 100만여통의 협박편지를 받았다. 가족에 대한 위협도 있었다. 그런 험난한 파도를 뚫고 애런은 대기록을 남겼다. 홈런이 아닌 다른 기록이었더라면 그렇게까지 파장을 일으키진 않았을 것이다.

‘청년 장사’ 최정(34·SSG)이 12일 LG전서 통산 399호 홈런을 터트렸다. 4회 김윤식의 공을 받아쳐 좌중간 담장을 넘겼다. 통산 1위 이승엽(467개)의 뒤를 68개 차로 추격했다.

최정은 2016년 이후 6년간 214개의 홈런(12일 현재)을 때려냈다. 연 평균 35.67개다. 이 추세면 2023년 이승엽의 통산 홈런 수를 넘어서게 된다. 만 34세로 아직 2~3년 혹은 그 이상 전성기가 남아있음을 감안하면 500홈런도 노려볼만하다.

최정은 2007년 이후 16년 동안 빠짐없이 두 자리 수 홈런을 기록해 오고 있다. 누구도 따라 오지 못할 순도다. 이승엽이 일본 기록(159개)과 합하면 626개로 늘어나지만 최정의 홈런은 단일 리그, 단일팀이라는 의미를 지녔다. 

최정은 그동안 293개의 공을 몸에 맞았다. 이 부문 세계신기록이다. 그에게 홈런을 맞지 않으려는 투수들이 몸쪽으로 바짝 붙이려다 실패한 숫자다. 최정의 홈런은 순정품이다.

texan509@fnnews.com 성일만 기자

Facebook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