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아의 짬뽕TV] ‘갯마을 차차차’ 신민아처럼 사랑하고, 홍반장처럼 사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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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좋아해. 나 홍반장 좋아해. 나는 아흔아홉 살까지 인생 시간표를 짜놓은 계획형 인간이야. 선 넘는 것 싫어하는 개인주의자에 비싼 신발을 좋아해. 홍반장이랑 정반대지.…근데 그런 거 다 모르겠고, 내가 홍반장을 좋아해. (치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마. 그냥 뭐 어떻게 해달라는 게 아니야…나도 어쩔 수가 없어.”(‘갯마을 차차차’ 10회)

“나 불확실한 것 제일 싫어해. 애매모호한 거 체질적으로 안 맞아. 그래서 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반장이 나한테 언젠가 마음을 열어준다는 확신만 준다면 나 기다릴 수 있을 것 같아. 그냥 내가 바라는 건 여지였어. 홍반장의 내일에 내가 조금은 포함되어 있는지 그리고 우리가 앞으로 함께할 가능성이 있는지 그게 궁금했었던 것 같아.”(14회)

흔히 걸크러시라고 한다. 한눈에 딱 봐도 자기주장이 센 언니들이 ‘걸크러시’의 대상이 되곤 하는데, ‘갯마을 차차차’의 여주인공 윤혜진(신민아 분)이야말로 내면이 단단한 진정한 ‘걸크러시’라 할만하다.

약간의 허영과 속물근성이 있어 더 인간적인 혜진은 알면 알수록 48시간동안 푹 고은 곰탕처럼 진국인 인물이다. 전문직 여성으로서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자긍심도 갖춘 그는 일상생활에서도 부당하다고 느끼는 순간엔 할 말 다하고, ‘예의 없는 것’들 앞에선 거침없이 용감해진다.

혜진의 진가는 연애에서 유감없이 드러난다. 간혹 직업적으로 성공한 여성들이 연애에 서툰 경우가 있다. 홍반장(김선호 분)처럼 열린 사고를 가진 멋진 남자가 드물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본인의 낮은 자존감 문제인 경우가 많다.

혜진은 자존감이 높다. 그녀의 내공은 대학시절 남자친구를 손절한 에피소드에서 잘 드러난다. 남자의 허접한 실체를 안 순간, 그는 “너한테 내가 너무 아깝다. 더 이상 네게 줄 시간 따윈 없고, 지난 3개월 낭비한 것으로 충분하다”고 응수한다.

사랑 고백은 그야말로 저돌적이다. 홍반장과 ‘쌈’인지 ‘썸’인지 모를 줄다리기를 하다가 자신의 마음을 자각한 순간, 그녀의 행동은 신속하고 명확하다. 서울에 함께 놀러간 친구마저 내버린 채 바로 장거리 운전을 해 그 남자의 집을 찾아갔고 ‘직진 고백’으로 사랑을 꽃피웠다.

‘상대가 나의 고백을 받아줄까?’ ‘혹시 거절당하면 어떡하지’ ‘상대가 먼저 고백하게 유도할까’ 등의 심리전 따윈 펼치지 않고,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감정에 충실했고 그 마음을 전달하는데 집중했다.

‘갯마을 차차차’는 홍반장의 숨겨진 과거사가 드러나면서 둘의 사랑이 어떻게 될지 관심을 모았지만, 사랑의 위기를 맞은 이 커플의 이별을 예감하는 시청자는 드물었다. 16회 예고편에서 혜진이 홍반장에게 프러포즈하는 장면이 나오면서 둘의 해피엔딩은 확정적인 상태다.

■혜진과 홍반장의 대화법 주목

1단계를 깨야 2단계로 넘어가는 게임처럼, 삶엔 늘 난이도 1~10의 고비가 닥친다. 반려자를 찾는 문제에 있어서도, 솔로에겐 연인을 찾는 게 급선무지만, 연인에겐 결혼에 이를지가 관심사다. 막상 기혼자들은 행여나 부모로 거듭나도 남녀로서 어떻게든 연애세포가 사멸되지 않길 바란다. 뛰어넘어야 할 허들이 계속 나타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관계의 위기는 어떻게 극복해야할까? 혜진과 홍반장의 연애를 지켜보면서 주목한 두 가지 덕목은 사랑이 전제된 연민과 현명한 대화법이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도 진정한 사랑은 연민이 밑바탕 되어야 한다고 설파하지 않았던가.

‘사랑에 목이 마른’ 홍반장을 품어주는 혜진의 담대한 마음엔 자신보다 더 외롭게 자란 홍반장에 대한 연민이 깃들어 있다. “(홍반장에게) 그동안 동동거리며 산다고 고생했다”면서 “이젠 행복해지라”고 조언하는 감리 할머니의 속깊은 마음이 혜진에게도 있기에 혜진과 홍반장의 미래는 밝아 보인다.

자신의 욕구를 정확히 알고 이를 상대에게 잘 표현할 줄 아는 혜진의 화술은 박재연 작가의 ‘사실은 사랑받고 싶었어’ 속 문장을 떠올리게 한다.

“필요한 것을 누군가에게 부탁할 때 가장 중요한 건 말하기 전에 먼저 ‘진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면 자꾸 상대에게 모호하게 말하고 강요하게 되거든요. 아니면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고 속으로 기대하고 실망하지요.”

혜진은 자신의 아픈 과거를 선뜻 말하지 못하는 홍반장에게 ‘내가 너한테 그 정도밖에 안 돼’ ‘네가 나를 사랑하는지 모르겠어’ 등과 같은 애매모호한 표현을 쓰지 않았다. “내가 말하는 건 여지. 홍반장이 나한테 언젠가 마음을 열어준다는 확신” 등과 같이 내 마음과 욕구를 정확히 전달함으로써 소통의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앞서 혜진의 대학선배 지피디(이상이)를 ‘질투한’ 홍반장이 혜진에게 자신의 행동과 관련, 아주 구체적으로 사과하는 장면이 있었다. 질투하는 홍반장의 모습을 통해 설렘 지수를 끌어올린 장면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배워서 실생활에 응용하면 좋을 화술로 주목됐다.

“사과를 한다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자신의 결정이나 실수를 인정하고 그걸 표현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많은 경우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못해요. 속으로 이런 생각도 하고요. ‘그냥 다음부터 잘하면 되지’ ‘꼭 말해야 하나, 내 마음 알겠지’ 네, 꼭 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상대는 그 말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늘 상대로부터 사과의 말을 듣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상대에게 진심으로 건네는 ‘미안합니다’라는 말에는 생각보다 훨씬 더 크게 마음을 녹이는 힘이 있습니다. 진정한 사과는 상처받았던 과거의 ‘그때 그 시간’에서 빠져나올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입니다."(이상 박재연 작가의 ‘사실은 사랑받고 싶었어’ 중)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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