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근영부터 하지원·나카야마 미호…해운대 덮은 女風 [BIFF중간보고서②]

0
201710161051147488.jpg

뉴스1 DB © News1

(부산=뉴스1) 정유진 기자 = "여배우가 설 자리가 줄어든다"는 말은 근래 영화계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는 진단이다. 장르물, 그것도 범죄 장르의 영화가 대세를 이루고 있는 한국 영화 시장에서 이는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받아들여지면서도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있다. 하지만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초반은 열악한 상황에도 여성 영화인들의 존재감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과 폐막작은 모두 여성 감독의 영화다. 개막작은 ‘유리정원'(신수원 감독), 폐막작은 ‘상애상친'(실비아 창 감독)이다. ‘유리정원’은 급성구획증후군으로 한동안 휴식기를 가졌던 배우 문근영의 복귀작이다. ‘명왕성’과 ‘마돈나’ 등으로 해외 영화제에서 여러 번 주목받은 신수원 감독은 이번에는 다리를 저는 가련한 외모의 여성 과학자를 내세운 판타지를 들고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개막작으로 선정된 이 영화는 한 편의 문학 작품 같은 감수성 짙은 내용과 신비로운 연출, 배우 문근영을 비롯한 김태훈, 서태화 등의 열연으로 호평 받았다. 엽록체를 이용한 인공혈액을 연구하던 과학도와 그를 훔쳐보는 무명 소설가의 이야기를 그린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주요 섹션 중 하나인 갈라 프레젠테이션 5편의 작품 중에는 유일하게 한국 여성 감독의 작품이 포함돼 있다. 일본 스태프, 배우들과 함께 한 영화 ‘나비잠'(정재은 감독)이다. ‘나비잠’은 한국에서도 유명한 일본 영화 ‘러브레터’의 나카야마 미호가 주인공으로 분한 영화다. 나카야마 미호는 이 영화에서 중년의 통속 소설가로 이자카야에서 일하는 한국인 청년 역을 맡은 김재욱과 로맨스를 그린다.

연출자 정재은 감독은 2001년 이십대 여성들의 고민과 삶을 담은 데뷔작 ‘고양이를 부탁해’로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2005년 ‘태풍태양’ 이후 다큐멘터리 제작에 몰입해 온 정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무려 12년 만에 극 영화로 돌아왔다.

‘나비잠’의 주인공인 나카야마 미호는 지난 13일 오후 우리나라 대표적인 여배우 문소리와 BIFF 빌리지 야외무대에서 ‘여배우, 여배우를 만나다’ 오픈 토크에 참석해 여배우로서 살아가는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공감대를 형성,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는 "영화제에 오기 전에 ‘여배우는 오늘도’를 봤다. 직접 연기와 연출을 한 작품인데 정말 대단하다"며 "나이가 쌓일수록 역할이 적어지는 느낌을 일본에서도 받는다"면서 "그게 시대 때문인지, 사회 시스템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나이를 먹을수록 깊이를 더해가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여배우는 오늘도’와 문소리의 이야기에 공감을 표했다.

이번 영화제에서 돋보였던 여배우로 하지원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원은 또 다른 갈라 프레젠테이션 작품인 오우삼 감독의 ‘맨헌트’의 주인공 중 한 명으로 부산을 찾았다. 오우삼 감독은 자신의 작품에서 처음으로 여성 킬러 역을 맡은 하지원과 엔젤리스 우에 대해 "물론 내 영화에서 첫 여성 킬러 캐릭터지만 주윤발, 양조위를 찍을 때와 다른 느낌은 없었다. 그들 모두 감정과 낭만을 잘 표현할 줄 아는 이들이었다"며 "이 두 여자 킬러들 때문에 좋은 영화가 됐고, 더 풍부한 스토리를 보여주게 됐다"고 칭찬한 바 있다.

이처럼 영화제에서 활약하는 여배우들의 존재감이 돋보인 것은 역설적이게도 여전히 여성들이 중심이 된 영화가 적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력을 갖춘 여성 영화인들의 활약은 조금 더 밝은 미래를 기대하게 했다. 돌아온 문근영부터 하지원과 여성 감독들까지. 이들이 다음 영화제에서 보여줄 모습들에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Facebook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