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는 북한 훈련장, 홀로 해맑던 유럽파 정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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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동아시안컵(EAFF E-1 풋볼 챔피언십) 출전을 앞둔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7일 오후 일본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맨 왼쪽이 유일한 유럽파인 정일관이다. 2017.12.7/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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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동아시안컵(EAFF E-1 풋볼 챔피언십) 출전을 앞둔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정일관(뒤)이 7일 오후 일본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훈련을 하고 있다. 2017.12.7/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도쿄(일본)=뉴스1) 임성일 기자 =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 있는 북한 여자축구와 달리 북한의 남자축구는 경쟁력이 떨어진다. 11월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이 114위다. ‘노는 물’이 다르다 보니 아무래도 노출도 적다. 여자월드컵 등 메이저대회에서 상위권을 누비는 북한 여자축구와는 차이가 있다. 월드컵은 언감생심이고 아시안컵에서도 모습을 보기 쉽지 않다. 예선을 통과하지 못한 탓이다.

그래서 북한축구협회가 최근 제법 큰 투자를 했다. 지난 2016년 5월 노르웨이 출신의 욘 안데르센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기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는데 어느 정도 효과를 본 모양새다.

안데르센이 지휘봉을 잡은 뒤 그해 12월까지 북한은 8번의 A매치에서 6승1무1패라는 호성적을 거뒀다. 그중에는 ‘2017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 예선에서의 3승도 포함됐다. 그 예선을 통과하면서 북한대표팀은 현재 동아시아챔피언십이 열리는 일본 도쿄에 와 있다. 이제 한국의 축구팬들도 ‘안데르센의 북한 축구’를 실제로 접할 수 있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과 일본, 북한이 참가하는 ‘2017 동아시아챔피언십’ 개막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남자부는 오는 9일 오후 4시30분 한국과 중국전, 그리고 이어 7시15분 킥오프하는 일본과 북한전을 통해 막을 올린다.

7일 낮 12시 4개국 감독이 모두 참석한 대회 공식기자회견을 시작으로 각 팀들은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국 대표팀 역시 이날 4시부터 아지노모토경기장 메인 스타디움 옆 웨스트필드에서 첫 훈련을 시작했다. 그리고 안데르센 감독이 이끄는 북한도 오후 7시15분부터 공식 훈련을 소화했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으나 아주 흥미로운 특징이 발견됐다. 적어도 취재진들이 훈련을 지켜볼 때까지는 스타디움 내 정막이 감돌았다. 통상적으로는 선수들 스스로 파이팅을 외치거나 패스를 주고받을 때 대화까지 섞는 게 일반적이다. 경기 당일이 아니라면 분위기를 끌어올리려고 의도적으로 소리를 지르는 게 다반사인데 북한 선수들은 입을 꼭 다물었다.

심지어 코치도 작은 목소리로 지시했다. 1대1 패스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코치가 간격을 더 벌리라고 지시하자 선수들은 소리로 전파하는 대신 두 팔을 벌리는 액션으로 조용히 전달했다. 흥미로웠다.

폐쇄적인 북한 체제와 맞물려 외부의 시선이 많은 상황이기에 부러 표현을 자제하는 것인지, 아니면 오랜만에 메이저급 대회에 출전하는 것에 대한 긴장이나 부담 때문에 다소 경직된 것인지는 파악이 어려우나 분명 흥미로운 장면이었다. 더 재밌는 것은, 그중에서 한 명은 해맑았다는 사실이다.

북한 대표팀에는 유일하게 유럽에서 뛰는 멤버가 포함돼 있다. 스위스리그 FC루체른 소속의 공격수 정일관이 주인공. 동아시아챔피언십은 FIFA 주관 대회가 아니라 유럽파 차출이 쉽지 않은데 북한대표팀은 루체른과의 조율을 통해 정일관을 합류시키는데 성공했다. 지난 6월 스위스 1부 루체른으로 이적해 이번 시즌 4경기에 나서고 있는 정일관은 북한대표팀의 핵심 자원으로 꼽을만한 인물이다.

자연스럽게 수많은 카메라 렌즈의 방향이 정일관을 향했는데, 정일관은 이를 즐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조용한 경기장 내에서 간혹 들리는 웃음소리는 십중팔구 정일관이 있는 쪽이었다. 정일관은 환한 웃음으로 몸을 풀고 동료들에게 계속 말을 거는 등 분위기를 이끌었다. 다만 동료들이 잘 받아주지 않았을 뿐이다.

훈련 분위기를 주도한 유일한 유럽파 정일관은 실제 경기력에서도 리더가 될 수 있을까. 북한은 오는 9일 오후 7시15분 개최국 일본과의 대결을 통해 대회를 시작한다. 남북대결은 12일 오후 4시30분 펼쳐진다. 지금껏 한국은 북한과 15번을 격돌해 6승8무1패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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