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초점]”인간답게 살 권리를 보장하라” 배우가 본 드라마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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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회의실에서 열린 tvN 주말드라마 ‘화유기’ 추락 사고 현장 조사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환균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이 산업 안전 대책 요구를 하고 있다. 2018.1.4./뉴스1 © News1 권현진 기자

배우 허정도가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 음식점에서 열린 MBC 수목드라마 ‘더블유(W)’ 종방연에 참석해 손으로 W를 만들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News1 고아라 기자

(서울=뉴스1) 윤효정 기자 = 드라마 ‘풍문으로 들었소’ ‘역적’ ‘더블유(W)’, 영화 ‘암살’ 등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린 배우 허정도가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드라마 촬영 현장을 개선하고 스태프들의 노동 환경의 변화를 바란다는 목소리를 냈다.

지난 5일 허정도는 자신의 블로그에 ‘만드는 이들도 행복한 드라마를 꿈꾸며’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지난해 여름 몸과 마음의 ‘소진’을 느꼈다는 그는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며 드라마 현장에서 목격한 폭언과 비인간적인 상황으로 인해 괴로웠다고 털어놨다.

허정도는 “반말, 막말, 비아냥, 육두문자. 모두가 보는 앞에서도 누가 퍼붓고 누가 당하는지는 달랐지만 방향은 항상 같았습니다. 강자가 약자에게. 오직 기준은 힘일 뿐 때로는 나이도 별 상관이 없었습니다”고 했다.

그는 드라마 현장이 다른 매체의 현장보다 폭력적인 이유는 ‘노동환경’에 있다고 말하며 최소한의 수면시간도 보장하지 못하는 비인간적인 환경이라고 덧붙였다. 또 ‘빨리’가 미덕인 현장에서 스태프들은 졸다가 크고 작은 사고를 당하고 소속팀의 일거리가 줄어들까봐 제대로 보상도 받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또 실내 세트장의 문제점도 설명했다. 먼지, 화학물질 냄새가 진동을 하는 곳인데다가 촬영 특성상 환기도 할 수 없어 배우, 스태프들은 늘 기관지 질환에 노출되어 있는 점, 세트의 주재료가 나무, 플라스틱이라 화재가 일어나기 쉬운 환경이라는 점을 덧붙였다.

성인들도 힘겨워 하는 드라마 현장에서 미성년자 출연자들은 더욱 더 제대로 된 환경을 보장받지 못한다고. 허정도는 “몇 겹을 껴입은 어른들도 덜덜 떨던 혹한의 야외촬영 날, 보조출연자로 나온 어린 소녀가 추위를 참지 못해 울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아이는 긴 시간 동안 연기가 아닌 진짜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며 지난 시간 자신을 가장 괴롭힌 기억이라고 덧붙였다.

허정도는 “한동안 저를 무기력하게 만든, 마음 속 깊은 상처의 원인이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이 모든 아픔들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도 침묵했다는 것”이라며 드라마 현장에서 일하는 자신이 현장 환경 개선에 나선 이유를 밝혔다.

지난해 12월 정부가 ‘방송프로그램 외주제작시장 불공정 관행 개선 종합대책’을 발표하며 희망을 가졌지만, 그 이후 한 드라마 세트장에서 스태프가 구조물에서 떨어져 하반신마비 부상을 입게 된 것을 알게 되고 더욱 큰 참담함을 느꼈다고.

허정도는 “그런 상황에서, 연말이면 늘 있는 방송사들의 연기대상 시상식을 보는 제 마음은 그리 편치가 않았습니다” “우리는 왜 단 한 번도 잔치를 멈추고, 아니 잔치 도중에라도 함께 동료의 죽음을 애도하지 못했을까. 만약 배우가 죽거나 하반신마비가 됐다면 과연 우리는 지금과 같았을까”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허정도는 정부에 ‘표준계약서 전면 의무화’를 제안했다. 그는 “최저임금이 선택사항이 아니듯, 표준계약서도 마찬가집니다. 만약 전면 의무화가 정말 문제가 있다면 법을 새로 만들든 고치든 다른 방법이라도 찾아야 합니다. 인간답게 살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니까요“라고 강조했다.

또 기존 표준계약서를 개정하라며 영화 표준계약서의 경우 촬영 종료 후 10시간의 휴식을 보장하지만, 기존 (드라마) 표준계약서에는 최소 보장되는 ‘시간’이 없다며 휴식시간을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또 계약서 상의 ‘상호 협의한다’는 식의 애매모호한 조항이 많아 현장에서 보장받기 어렵다는 점도 꼬집었다.

미성년자 출연자와 관련해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이 보장하는 청소년 근로와 관련된 법령이 지켜지는 현장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구체적인 보장 방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허정도는 “진정한 해결책은 우리의 선한 마음을 지켜주고 폭력적인 마음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시스템, 보다 인간답게 일할 수 있는 현장을 함께 일구어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며 “이제는 제발 그 누구도,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노력해서 얻은 열매는 함께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고 글을 끝맺었다.

한편 지난해 12월23일 tvN ‘화유기’ 현장에서 스태프가 추락사고로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은 사태를 기점으로 드라마 촬영장의 열악한 환경, 비인간적인 노동자 환경 등을 개선해야 한다는 현장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언론노조는 4일 기자회견을 갖고 ‘화유기’ 현장 실태를 전달하는 한편, 사고의 이면에는 한국 드라마 제작환경의 고질적인 안전불감증이 자리하고 있다며, ‘무법천지나 다름없는 드라마 제작 현장’을 바꾸기 위해 정부와 방송사의 긴급 실태조사와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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