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연쇄살인범은 왜 영웅 대접을 받았나…‘성스러운 거미’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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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지난해 9월,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돼 의문사한 20대 여성 ‘마흐사 아미니 사건’ 이후 이란에서는 지금까지 반정부 시위가 지속되고 있다. 국제면을 통해 이란에서 여성으로 사는 게 얼마나 ‘극한직업’인지 어렴풋이 짐작했다면 이란영화 ‘성스러운 거미’는 그 살 떨리는 공포를 간접 체험할 수 있다.

연쇄살인마의 정체, 일부는 영웅 취급

제75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성스러운 거미’는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이란 최대 종교도시 마슈하드에서 일어난 실제 연쇄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영화는 2001년 체포돼 이란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일명 ‘거미 살인’의 범인 ‘사이드’(메흐디 바제스타니 분)와 그를 인터뷰하고 재판과정을 기록한 여성 저널리스트를 모델로 한 허구의 캐릭터 ‘라히미’(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 분)를 주인공으로 한다.

‘순교자의 땅’이라는 뜻을 가진 이란 제2의 도시, 마슈하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모스크가 있는 종교적 성지이자 산업화된 대도시로 마약과 성매매가 만연해있다. 그곳에서 1년 사이 16명의 여성을 살해한 살인자는 자신의 범행과 시체 유기 장소를 직접 언론에 제보하는 대담한 행동을 이어간다. 고향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테헤란에서 온 여기자 라히미는 경찰의 비협조적인 태도에 급기야 잠입 취재에 나선다.

도시를 떨게 한 살인마는 놀랍게도 세 명의 자녀를 둔 평범한 가장이자 이란-이라크전 참전용사였다. 그는 재판에서 "더러운 여성들을 죽여서 도시를 청소하는 종교적 의무를 행했을 뿐"이라며 결백을 주장했고 이란의 보수 언론과 일부 대중은 그를 ‘영웅’이라 칭송했다.

‘성스러운 거미’는 라히미가 연쇄살인범을 찾기 위해 집요하게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이란사회의 뿌리 깊은 여성혐오를 드러낸다. 범인이 체포된 후 벌어지는 이란 사회의 풍경은 범인이 여성의 목을 졸라 그 숨이 넘어가는 장면 못지않게 공포와 분노, 슬픔을 자아낸다. 특히 아버지가 체포된 후 그의 아들은 처음에는 풀이 죽어 있지만 이웃 어른들이 아버지를 칭찬하자 자랑스럽게 여긴다.

봉준호 감독이 언급한 ‘차세대 거장 20인 중 한 명’인 알리 아바시 감독은 “사이드는 너무나 많은 여성들을 살해한 범죄자인데도 이란 사람들은 그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아닌지에 대해 논쟁하기 시작했다”며 “일부 사람들이 사이드를 영웅으로 칭송하기 시작하면서 이 사건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연령, 직업 무관 여성 보는 이란 남성의 시선 ‘주목’

영화는 희생당한 성매매 여성이나 엘리트로 통하는 라히미나 그저 여성이라는 이유로 얼마나 부당한 대접을 받는지 여러 에피소드를 통해 보여준다. 이는 연쇄살인마 사이드가 자신의 아들과 딸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가정이 살인의 장소로 활용되는 것도 경악스럽다. 특히 사이드의 아들은 아버지가 자신의 집에서 벌인 영웅(?)적 행동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어린 여동생에게 희생자 역할을 맡기는데, 이는 이란사회에 만연한 명예살인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기에 사이드에게 희생당한 성매매 여성의 혼자 남은 어린 딸의 뒷모습이 내내 눈에 밝히고, 오빠의 역할극에 동원된 중산층 가정의 어린 소녀의 미래도 어둡게 느껴진다.

‘성스러운 거미’는 때때로 굳이 이 장면을 이렇게까지 표현한 이유가 무엇인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희생자의 얼굴부터 사이드 아내의 욕망 등 여성들의 다양한 얼굴과 모습을 담는다. 그 이유는 감독의 인터뷰로 대신한다.

“이란사회 전체가 병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여성의 신체를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잘못된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매체에서 이란의 여성들은 천에 얼굴을 파묻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로 비인간화되었습니다. 또 희생자는 단지 숫자로만 기록됐고 그들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피해자들의 운명을 구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저는 관객들이 그들을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영화 제작 자체가 용기의 산물

아바시 감독에 따르면 지난 50년간 이란 영화는 자국 내 엄격한 검열을 통과해야 했다. 정부에 대한 비판을 포함하여 나체, 섹스, 마약, 매춘 등은 금기사항이었다. 이 영화는 이 모든 것을 다 담고 있다.

아바시 감독은 수입사를 통해 “제작 초기 정부에 대본을 제출했다"며 "영화 촬영을 허락한다면 정부가 제시하는 틀 안에서 협조하겠다고 밝혔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는 1년 이상 묵묵부답했다. 이에 터키에서 촬영을 시작했는데 이를 알아챈 정부가 힘을 행사해 결국 추방당했다. 이에 요르단 암만에서 찍어 완성했다.

남자배우는 이란의 손꼽히는 연극배우 출신 영화배우다. 그는 엄청난 직업적 위험을 감수했다. 여배우 역시 마찬가지다. 감독은 여주인공이 “영화의 가장 훌륭한 조력자였다”라고 말했다.

‘라히미’를 연기한 자흐라 아미르 에브라히미는 2000년대 초 이란 현지에서 큰 인기를 누렸으나 연인과 함께한 개인적 영상이 불법 유출되면서 큰 고초를 당했다. 결국 2006년 프랑스 파리로 망명했다. 이후 소규모 예술영화에 출연하거나 캐스팅 디렉터로 활동했다.

원래 이 영화의 캐스팅 디렉터로 참여했다가 히잡 없이 촬영해야 한다는 조건에 겁을 먹는 여배우가 촬영을 중단하면서 감독이 에브라히미에게 주인공 역할을 제안했다.

그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라히미는 영화를 위해 탄생한 허구의 캐릭터지만 지금 이란에는 자유를 위해 거리에서 싸우고 있는 수천 명의 진짜 라히미들이 있다”고 말했다. 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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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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