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진의 제작노트①] ‘1987’ 제작자 “주인공 無? 장준환 표 ‘캐스팅 전술’ 통했죠”

0
201801301730160309.jpg

2018.1. 16. 삼청동 카페. 영화 ‘1987’ 제작사 우정필름 이우정 대표 인터뷰. © News1 강고은 에디터

201801301730163220.jpg

CJ엔터테인먼트 제공 © News1

201801301730179837.jpg

‘1987’ 스틸 © News1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 한 편의 영화가 관객들을 만나기까지, 거의 모든 과정에 관여하는 제작자는 감독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을 담당합니다. [정유진의 제작노트]에서는 의미있는 행보를 보여주는 제작자들을 만나 스크린 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성공이다. 영화 ‘1987’(장준환 감독)이 700만 관객을 넘기며 장기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 6월 항쟁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지난해 12월 27일 개봉해 한달이 넘도록 박스오피스 상위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중이다. 비슷한 시기 개봉한 ‘신과함께-죄와벌'(김용화 감독)이 천만 관객을 넘기며 이른바 ‘대박’을 터뜨리는 바람에 개봉 초반 상대적으로 주목은 덜 받았지만, ‘1987’은 시간이 흐를수록 ‘웰메이드’ 영화로 입소문을 타며 영화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1987’의 ‘묵직한’ 흥행은 하나의 ‘현상’이라고 할 만했다. 특히 그 시대를 살았던 7080 세대의 반향은 컸다. 박종철 열사의 모교인 혜광고등학교 후배기도 한 주인공 김윤석은 카리스마 넘치는 평소 이미지와 달리 인터뷰 중 이례적으로 눈물을 보였고, 연출자인 장준환 감독 역시 시사회 때 많은 눈물을 흘려 화제를 모았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정계 인사들은 앞다퉈 영화를 상영했고 강동원이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를 만난 사연이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극 중 치안본부장 역을 맡은 우현은 동료 안내상과 함께 과거 실제 ‘6월 항쟁’ 당시 최전방에서 학생운동을 한 아이러니한 과거가 알려지며 특별한 미담의 주인공이 됐다.

이처럼 ‘1987’은 감독, 배우들부터 시작해 정치인과 기자, 일반 관객들까지 기억 한 켠에 접어뒀던 30년 전, 혹 그 이후에도 역사 속에서 반복됐던 각자의 ‘6월 항쟁’을 꺼내는 마중물이 됐다. 그 때를 살았던 이들은 그들대로, 이후에 태어난 이들은 그들대로 자신들만의 ‘1987’을 아파하고 추억했다.

영화의 제작사 우정필름 이우정 대표는 영화 ‘1987’을 2012년부터 마음에 품어왔다고 한다. 여러모로 쉽지 않은 소재라 시간이 걸렸지만, 만약 투자가 안될 경우 예산을 줄이고 상업 영화의 형식을 포기하면서까지 만들고 싶었던 작품이다. ‘YMCA 야구단’ ‘광식이 동생 광태’ ‘고지전’ ‘쎄시봉’ 등 유명 작품의 제작을 맡았던 유능한 제작자이기 때문일까? 다행히 ‘1987’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작가와 감독, 배우들이 만나 2017년 말미를 장식한 최고의 작품으로 떠올랐다.

-한동안 ‘신과함께-죄와벌’에 밀렸는데, 박스오피스 1위도 찍었고 흥행 스코어도 좋다. 소감이 어떤가?

▶일단 영화의 일반시사회를 하고 관객들이 너무 좋게 봐주셨었다. 그래서 내부적으로는 영화의 힘을 믿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 힘으로 ‘신과함께-죄와벌’ 열풍을 지나서 어느 정도 영화만의 페이스를 찾게 된 게 아닌가 생각했다. 아무리 잘 돼도 잘 된다고 말을 하기는 쑥쓰럽다.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시나리오를 쓴 김경찬 작가와 내가 각각 스토리가 있다. 김경찬 작가와 다른 작품을 시나리오 작업 중이었는데, 나는 나대로 오래 전에 6월 항쟁을 소재로 한 영화를 해보게겠다고 하는 생각을 2012년쯤에 ‘고지전’을 마치고 생각했었다. 마음으로만 담고 있다가 그후에 하겠다고 공언했는데 말리는 사람도 있고, 내 색깔에 맞는 좋은 소재를 골랐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찾다 보니까 굉장히 어렵더라. 이 소재로 극영화를 만드는 게 어려움이 있더라.

어떤 난관에 봉착했고, 이걸 어떻게 풀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김경찬 작가가 먼저 YTN 송태엽 기자와 술자리에서 ‘왜 박종철 열사 이야기를 그리지 않느냐. 기자들의 활약이 얼마나 있었는지 아느냐?’라는 말을 듣고 기자들의 활약으로 이야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모티브를 얻었다. 거기에 저는 저는 황적준 박사와 최환 검사를 중심으로 마이클 만 감독의 ‘인사이더’ 같은 시나리오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김경찬 작가가 우정필름과 다른 사극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6월 항쟁 소재 얘기를 던지더라. 내가 이분한테 그 얘기를 했나 안 했나 싶었다. 바로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다. 그렇게 이야기가 시작된다.

-어쨌든 2012년부터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한 거였는데, 그때까지 작업이 이뤄지기 어려웠던 이유는 무엇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나르는 주인공을 만드는 게 어려웠다. 주인공을 누구로 하지? 훗날 김경찬 작가와 작업하면서도 그게 숙제였다. 결론적으로 주인공을 만들지 못했다. 김윤석이 연기한 박처원(김윤석 분)을 주인공이라 할 수도 있지만 안타고니스트다. 혹자는 주인공이 중간에 사라지느냐고 말하기도 한다. 하정우가 중간에 사라지는 느낌이 드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다, 잘 만들었다고 표현하시는 분들이 많은 이유는 굉장히 독특한 이야기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상업영화라는 틀에서 한 명의 주인공이 끌고 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야기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장준환 감독이 ‘캐스팅 전술’로 이를 잘 극복했다고 생각한다.

-‘6월 항쟁’ 영화를 만들기로 했지만 그 전에 김경찬 작가와 함께 만들던 사극 영화도 있었다고 했다. 영화를 만들 ‘타이밍’은 어떻게 결정된 것인가?

▶일단 내가 당장에 그 제안을 받을 만큼의 준비가 됐었다. 작가는 송태엽 기자에게 이야기를 듣고 누구(제작자)에게 먼저 말을 해야할까, 고민을 하다가 어쨌든 순서대로 하면 이우정에게 양해를 구해야 하니까, 원래는 나와 하던 영화를 먼저 써야하니까 말을 한 거였다. 영화를 쓰고 싶은 생각 때문에 ‘네가 안 하면 다른 데 가서 할거야’라는 식의 반협박조였다.(웃음)

-협박이 먹힌 거였나?

▶반가운 거였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누군가, 능력있는 작가가 제안을 해서 하자고 하니까 얼마나 반갑고 기뻤겠나 그 순간이. 그런데 그 기쁨과 함께 걱정이 몰려오더라.(웃음) 뭐랄까 이 소재를 가지고 영화를 하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다. 영화가 나와서 그 결과로 말할 수 있지만 백지 상태로 놓고 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한열 열사나 박종철 열사의 이야기를 담아 ‘6월 항쟁’의 영화화를 시도를 했지만 대부분이 중간에 멈추던가 그랬다.

‘1987’을 결정할 때만 해도 주변에서 박종철 열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푸는 쪽도 있었고, 이한열기념사업회 쪽에서도 여러 분들이 이한열 열사 중심으로 영화를 기획하는 중이었다. 박종철 열사로 시작해 이한열 열사로 끝나는 이야기를 만들 생각은 쉽지 않은 거였다. 일반적이지 않으니까.

[정유진의 제작노트②] ‘1987’ 제작자 "개봉 년도=’6월 항쟁’ 30주년, 맞추고 싶었다"로 이어집니다.

Facebook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