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진의 제작노트③] ‘1987’ 제작자 “故 박종철·이한열 가족들 반응 좋아 홀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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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스틸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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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 16. 삼청동 카페. 영화 ‘1987’ 제작사 우정필름 이우정 대표 인터뷰. © News1 강고은 에디터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 한 편의 영화가 관객들을 만나기까지, 거의 모든 과정에 관여하는 제작자는 감독 못지 않게 중요한 일을 담당합니다. [정유진의 제작노트]에서는 의미있는 행보를 보여주는 제작자들을 만나 스크린 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성공이다. 영화 ‘1987’(장준환 감독)이 700만 관객을 넘기며 장기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 6월 항쟁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지난해 12월 27일 개봉해 한달이 넘도록 박스오피스 상위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중이다. 비슷한 시기 개봉한 ‘신과함께-죄와벌'(김용화 감독)이 천만 관객을 넘기며 이른바 ‘대박’을 터뜨리는 바람에 개봉 초반 상대적으로 주목은 덜 받았지만, ‘1987’은 시간이 흐를수록 ‘웰메이드’ 영화로 입소문을 타며 영화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1987’의 ‘묵직한’ 흥행은 하나의 ‘현상’이라고 할 만했다. 특히 그 시대를 살았던 7080 세대의 반향은 컸다. 박종철 열사의 모교인 혜광고등학교 후배기도 한 주인공 김윤석은 카리스마 넘치는 평소 이미지와 달리 인터뷰 중 이례적으로 눈물을 보였고, 연출자인 장준환 감독 역시 시사회 때 많은 눈물을 흘려 화제를 모았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정계 인사들은 앞다퉈 영화를 상영했고 강동원이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를 만난 사연이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극 중 치안본부장 역을 맡은 우현은 동료 안내상과 함께 과거 실제 ‘6월 항쟁’ 당시 최전방에서 학생운동을 한 아이러니한 과거가 알려지며 특별한 미담의 주인공이 됐다.

이처럼 ‘1987’은 감독, 배우들부터 시작해 정치인과 기자, 일반 관객들까지 기억 한 켠에 접어뒀던 30년 전, 혹 그 이후에도 역사 속에서 반복됐던 각자의 ‘6월 항쟁’을 꺼내는 마중물이 됐다. 그 때를 살았던 이들은 그들대로, 이후에 태어난 이들은 그들대로 자신들만의 ‘1987’을 아파하고 추억했다.

영화의 제작사 우정필름 이우정 대표는 영화 ‘1987’을 2012년부터 마음에 품어왔다고 한다. 여러모로 쉽지 않은 소재라 시간이 걸렸지만, 만약 투자가 안될 경우 예산을 줄이고 상업 영화의 형식을 포기하면서까지 만들고 싶었던 작품이다. ‘YMCA 야구단’ ‘광식이 동생 광태’ ‘고지전’ ‘쎄시봉’ 등 유명 작품의 제작을 맡았던 유능한 제작자이기 때문일까? 다행히 ‘1987’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작가와 감독, 배우들이 만나 2017년 말미를 장식한 최고의 작품으로 떠올랐다.

-특히 강동원이 처음에 가장 먼저 캐스팅 확정이 되면서 이후 영화가 투자를 받는 과정에서 도움이 됐다는 이야기가 있더라.

▶가장 큰 힘을 준 배우 중 한 명이 강동원이다.기본적으로 우리 영화가 저예산, 독립영화까지는 아니어도 예산을 긴축해 어렵게 어렵게 만들어질 수도 있는, 그런 가능성이 있는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강동원이 먼저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현하면서 우리로서는 상업적으로 세팅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을 얻었다. 강동원을 비롯해 김윤석, 하정우가 캐스팅이 안 됐다면 예산을 낮춰 영화를 만들어야 했다. 그 길에서 고민하던 차에 강동원이 의사를 밝혀주면서 ‘1987’을 상업 영화의 틀로 고민했고 그에 맞는 캐스팅을 시도했다.

-박종철, 이한열 열사 가족들의 반응은 처음에는 어땠나?

▶두 열사 유족들을 만나고 설득하는 게 제일 조심스러웠다. 이한열 열사기념사업회는 김경찬 작가가 자료 조사 차원에서 방문했다. 이 프로젝트를 노출하지 말고 진행하자고 했는데, 기념관에서 ‘당신은 뭐요?’ 이렇게 물어서 프로젝트를 조심스럽게 준비 중이다고 말씀드렸다. 그때 관장님이’잘 해보라’면서 시큰둥해 했다고 한다. 그만큼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막상 실행하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게 실행하지 않는 사람들 중에 한 사람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나중에 관장님 말씀을 들어보니 그랬다.

-가족들에게 허락을 받았던 과정과 ‘1987’의 개봉 후 반응도 궁금하다.

▶패키징이 완료되기 전까지 배우들이 참여 의사를 밝히고 투자사가 긍정 검토 소식을 듣기 전까지 가급적 접촉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혹시 책임지지 못할 약속을 하거나 실망을 하시게 만들까봐. 어느 정도 패키징이 된 다음에 시나리오 보여드리고, 이런 영화 만드려고 한다고 보여드렸다. 박종철 열사의 형님(박종부)께 시나리오를 전달한 건 아니었고, 보여드리고 ‘이러면 좋다. 이런 영화라면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당신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다고 하셨다. 이한열 열사 쪽도 어머님을 모시고 이한열기념사업회 관장님께 시나리오를 보여드렸다. 식사 자리에서 격려의 말씀을 해주셨다. 그 과정에서 강동원은 캐스팅 소식이 나오고 난 후 어머니를 찾아뵙고 인사 드렸다. 그렇게 두 열사 쪽으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다 만들어지고 나면 불편해하시지 않을지 조심스럽더라. 박종철 열사 형님과 누님이 언론배급시사 때 같이 보셨다. 이한열 어머니와 형제들은 차마 못 보시겠다고 해서 이한열 열사의 조카와 그 친구들이 보고 좋은 이야기를 전달했다. 제작자로서 제일 걱정했던 부분이 혹시 영화가 너무 극화돼서 마음의 불편함을 드릴까 걱정을 했는데, 그 짐을 덜게 돼 저로서는 매우 홀가분했다.

-원래 영화 타이틀이 ‘보통사람들’이었다고 들었다. ‘1987’로 바꾸게 된 이유가 있엇나?

▶’보통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처음에 투자를 받았다. 그런데 ‘보통 사람’이라는 영화가 있지 않나. 비슷한 제목의 시나리오가 돌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바꿨다. ‘1987’은 장준환 감독이 작명헀다. 부재를 다느냐 마느냐에 대해서 고민했는데 달지 않았다.

-앞으로 제작자로서의 목표가 있다면?

▶2000만 영화를 만드는 것?(웃음) 농담이다. 많은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1987’ 같은 영화를 앞으로도 더 만드는 게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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