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에서 만난 ‘공작’, 펜은 칼보다 강하고 말은 총보다 세다…주역들이 들려주는 현장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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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총보다 세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 영국의 작가 에드워드 불워 리턴이 1839년 발표한 역사극 ‘리슐리외: 또는 모략’에서 처음 사용된 말이다. 흔히 언론 자유의 중요성을 표현할 때 쓰이는데 직접적 폭력보다 정보와 의견의 전달이 사람들에게 큰 영향력을 미친다는 의미다.

한국영화 ‘공작’이 지난 11일 밤(이하 현지시간) 제 71회 칸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섹션에 공식초청 상영됐다. 영국의 영화 전문 매체 스크린 인터내셔널은 12일자 칸 현지 데일리를 통해 “영화 ‘공작’에서 말은 총보다 강력하게 타격을 가한다”고 호평했다.

오는 8월 국내 관객을 만날 영화이기에 상세한 리뷰는 삼가되 연출을 맡은 윤종빈 감독과 정중동의 호연을 펼친 황정민, 이성민, 주지훈 그리고 제작을 책임진 한재덕 사나이픽처스 대표의 입을 빌어 “말은 총보다 강력하다”는 평가가 나오게 된 ‘이유’를 가늠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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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훈 “촬영 마치면 다 쓰러져…극도의 긴장”

12일 오후 칸 팔레 드 페스티발 내 테라스 오디오비주얼에서 ‘공작’ 팀과 국내 기자들의 그룹별 인터뷰가 열렸다. 가장 먼저 자리한 건 주지훈이었다. 주지훈은 공식 상영에 앞서 흰 양복에 피케셔츠를 매치해 소화한 포토콜, 모델의 위용을 확인시키며 여유로움과 멋짐을 폭발시킨 레드카펫의 당당함은 온데간데없는, 촬영 중 경험했던 ‘극도의 긴장감’을 토해냈다. 주지훈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제2국 과장 정무택을 연기했다. 조국의 안보를 위해 매사를 의심하고 캐는 ‘사냥개’로 길러진 인물이다.

“칸에 오기 전 감독님이 마지막 10분 편집된 것을 보여 주셨어요. 목에서 뭐가 꿀럭꿀럭 올라오는 거예요, 펑펑이 아니라 또르르 눈물이 흐르는데….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촬영 당시가 생각나서 더 그랬을 거예요. 하루 일과를 마치면 (배우들이) 다 쓰러졌어요. 대사를 아무리 외워도 다 까먹고, (연기할 때도) 우리가 속마음을 숨기고 말도 돌려하며 서로 갖고 놀잖아요. 그 긴장감이 어느 정도냐 하면 눈 한 번 내 마음대로 깜박일 수가 없었어요, 모두 느끼니까요. 깜빡이면 뭔가 깨져요, 다 깨져요. 모른 척 억지로 끌고 가도 소용없어요, 이미 긴장감이 다 사라진 뒤니까요. 한 번에 찍어야 하는 원 테이크 촬영이 아닌데도 그냥 넘어가지지가 않았어요. 극도의 긴장감 속에 촬영하다 보니 감독님이 컷 하면 실제로 헉헉 소리가 나왔어요. 마치 달리기를 한 것처럼요. (이)성민이 형도 오랜만에 정극연극 하는 느낌이라고 하시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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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민 “한국형 스파이영화, 쉼표까지도 연기하자”

이에 대해 황정민은 ‘구강액션’이라고 표현했다. 총 한 번 쏘지 않는 스파이 흑금성. 유럽 각 나라의 지붕 위를 날아다니는 할리우드액션 형 스파이가 아니라 말로 전쟁을 치르고 말로 관객의 마음을 붙잡아 영화 끝까지 가야 하는 책임이 배우 황정민, 이성민, 주지훈, 조진웅에게 주어졌다. 그 선두에 황정민이 있다.

“말인데, 대화하는 걸로 관객께 긴장감을 주려면 얼마나 잘해야 하는 건가요, 저에게도 어려운 과제였어요. 대사 사이 쉼표까지도 연기하자는 마음으로 임했습니다. 또 대사를 하는데 그 속마음을 관객은 알되 (극중) 앞의 사람은 몰라야 하잖아요, 하아.”

“‘공작’은 007이나 제임스 본 시리즈 등 기존 첩보물과 시작부터 다른 한국형 스파이영화예요. 이 작업을 어떻게 통과해야 스스로한테 물으며 연기했는데, 난관에 봉착할 때 저에게 하는 얘기가 있어요. 진실하자, 거짓말하지 말자! 무슨 일이든 정직하게만 하면 나중에 빛을 발할 거다. 처음 대본 봤을 때 느낀 감동, 감정에 솔직하자는 마음으로 연기했어요. 그럼에도 잘하고 있는 건지, 맞는 건지, 이 직업을 안 하면 뭐하고 살아야 할지 ‘배우 황정민의 딜레마’에 빠지기도 했는데…. 우리 영화가 북으로 간 스파이 흑금성의 딜레마, 남북 분단 상황에 놓인 우리 국민의 딜레마를 다루고 있으니까 배우 황정민의 직업적 고뇌, 인간적 고뇌를 잘 표현하면 되겠다는 마음으로 통과해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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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민 “발가벗겨진 느낌…감독이 숨구멍”

쉼표까지 연기한 황정민에 이어 대사에 숨 쉴 곳조차 없어 숨이 막혔다는 이성민은 영화 공작의 장르를 ‘구강심리액션’이라고 표현했다. 이성민이 찾은 리명운의 숨구멍은 무엇일까. 리명운은 중국 베이징에서 외화벌이 사업을 주도하는 실세로 북한 대외경제위 처장이다.

“바닥을 쳐 봤습니다. 촬영하면서도 언제가 인터뷰하게 되면 고해하겠다, 감추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어릴 때 연기 배울 때 느꼈던 쪼그라드는 심정, ‘공작’ 하며 그런 순간이 많았습니다. 내가 이 연기(력으)로 먹고 사는 게 말이 안 되지 않나, 발가벗겨진 느낌이었죠. 뭘 하며 배우로 살아왔는지 반성 많이 했고요. 감독이 (틀렸다고) 연기 지시를 해서가 아니라 순전히 이 정도밖에 못하나 하는 생각에 자존감이 바닥까지 내려갔습니다.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동작이 없어요. 베이징 고려관에서 처음 만나는 장면이 있는데 ‘멘붕’이 왔어요. 이 정도로 프레스(심리적 압박감)가 셀 줄 몰랐어요, 이 정도로 에너지 소비가 많을 줄 몰랐어요. 이 장면의 프레스에 내가 ‘후달리는’ 것에 놀랐어요. 연기의 방식이라는 게 진심을, 진심이 발현되는 건데 진심을 감춰두고 연기하다니…. 리액션도 불가했어요.”

“사람이 재미있는 게요. 황정민도 그렇대, 주지훈도 힘들다더라, (전해 들으니) 그러면 그렇지, 영화가 문제야!(웃음). 그렇게 혼란이 왔을 때 감독을 찾아갔는데 우리의 고민을 알고 있더라고요, 복안을 가지고 있었고요. 그때부터 내가 부족한 걸 감독이 커버해 주고 있다는 걸 믿고 했습니다, 역시 영화는 감독의 것이구나 다시금 느꼈지요. 흑금성과 뱀술 나누는 건 제일 편하게 연기했어요. 왜? 뒤에 감춘 카드 없이 숨김없이 연기하면 되니까요(웃음).”

“고려관 신 좀 더 얘기하면, 눈 하나를 밑으로 못 깔겠는 거예요. 숨 쉬면 안 되는데 숨 쉬면 (흑금성과의 심리전에서) 지는데 숨 쉴 데가 없어서, 감독에게 ‘진짜 미안한데 여기서 숨 쉬어야겠다, 미칠 것 같다’ 얘기했어요. 감독이 숨 쉬게 해 주고 편집에서 이어 붙여 줬죠(웃음). 자기 배우에 대한 애정, 배려 많은 감독이에요. 어떻게든 배우가 잘, 멋있게 나오도록 해 줍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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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빈 “긴박한 말의 전쟁, 관객들이 함께 느껴 주셨으면”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배우들을 숨 한 번 제대로 못 쉴 만큼 휘달리게 한 윤종빈 감독, 왜 그랬을까. 윤종빈 감독은 영화 ‘용서 받지 못한 자’로 제 59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돼 레드카펫을 밟은 이후 12년 만에 다시 왔다. 그리고 ‘공작’으로 해외언론들의 호평을 받았고 칸영화제 집행위원장 띠에리 프리모로부터 “영화 너무 잘 봤다. 좋았고”라는 평가에 이어 “다음번엔 경쟁으로 초청하겠다”는 핵심 발언까지 이끌어냈다.

“그냥 으레 하는 의례적 멘트겠지 했는데 그를 잘 아는 주변 분들이 빈말 하는 분이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경쟁, 물론 좋지요. 그러나 그건 다음 영화를 제가 잘 만들어야 가능한 일이고요. 일단 ‘공작’에 대한 호의를 보인 걸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발언보다 정말 좋았던 게 스크린 데일리에 나온 ‘말은 총보다 세다’라는 리뷰였어요. 이 영화를 만들면서 제가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이에요. 총성 한 번 들리지 않아도 (좋은), 사람이 죽어나가고 차로 쫓고 쫓기는 액션 이제 새로울 것도 없지 않나요. 우리 끼리 그랬어요, 구강액션 찍는다고. 촬영 시작하면서 자, 이제 액션 들어갑니다, 이러면서 테이블에 앉아요. 그리고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거죠. 끝나고 나면 배우들이 헉헉 대요, 액션 찍은 것보다 더 힘들어서. 저는 관객 분들이 그 말의 전쟁을 같이 느끼며 같이 따라와 주시면 좋겠어요.”

영화 ‘공작’은 적으로 보던 사람이 동지로 느껴지는 순간, 동지가 적이 되는 순간을 포착한다. 윤종빈 감독이 말하듯 ‘시선이 바뀌는 이야기’이고 냉전의 산물인 스파이, 그 스파이의 정체성 고민에 관한 영화다. 같은 이야기를 할리우드형 액션 블록버스터로 찍을 수도 있지만 윤 감독은 ‘스파이 스릴러’라는 다소 낯선 형식을 선택했다. 배우들은 감독의 디렉팅에 따라 스크린 안에서 ‘마음의 장기’를 둔다. 팽팽한 심리전이 펼쳐지는 장기판 위에서 영화 ‘킬 빌’의 화려한 칼놀림 대신 속을 알 수 없는 말들이 상대를 베고 서로를 찌른다. 영화 ‘원티드’의 총알보다 더 빠르고 섬세한 말의 향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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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덕 “영화의 기본에 충실한 대작, 진심 통했으면”

이 조용해 보이지만 속으로는 치열한 전쟁을 치르는 정중동의 첩보영화에 200억원이라는 블록버스터급 제작비 투입을 가능케 한 인물이 있으니 사나이픽처스의 한재덕 대표다.

최근작들의 면면을 보면 ‘부당거래’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 ‘베를린’의 기획․프로듀서를 지나 ‘신세계’ ‘군도: 민란의 시대’ ‘검사외전’ ‘아수라’ ‘보안관’ 제작까지 온통 사나이들의 매력이 빛나는 영화를 만들어 왔으니 황정민 이성민 조진웅 주지훈, 4인4색의 남배우를 앞세운 ‘공작’의 제작은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묻지 않을 수 없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이 말로 산성을 쌓고 또 말로 나라를 부수듯 말로 긴장의 씨앗을 뿌리고 말로 스릴을 완성하는 스파이영화를 블록버스터 규모로 제작한 이유를.

“맞아요, ‘공작’은 드라마예요. 해 보고 싶었어요. 좀 멋스러운, 시쳇말로 폼 나는, 나중에 꺼내 봐도 괜찮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어요. 뻔한 장르 문법, 흥행 공식을 따르기보다는 영화의 기본에 충실한 영화, 영화적인 영화를 제작하고 싶었습니다.”

“맞아요, 큰돈 벌어 놓은 것도 아니고 나이 들수록 돈 필요하지요. 그런데 지금 안 하면 언제 할 수 있을까 싶어 용기 냈어요. 제가 요새 주변에 갱년기라고 말해요, 감수성도 풍부해지고(웃음) 그런데 그걸 어떻게 표출해 낼지 잘 모르겠어요. 나이 들어 사춘기가 온 느낌이랄까, 이럴 때 사고 한번 치는 거죠. 그렇다고 망하자고 만든 건 절대 아니죠, 흥행은 정말 누구도 몰라요, 관객 여러분의 마음에 달렸죠. 다만 모두가 쏟아 부은 진심, 돈보다 더 중한 거잖아요, 그 진심이 관객의 진심에 가 닿았으면 좋겠다, 좋은 영화 보여 드리고 싶은 저희들의 진심이 통했으면 좋겠다, 이런 기대는 갖고 있죠.”

“8월, 우리 관객이 더 근사하게 생각해 주시길”

연기를 직업으로 삼은, 대한민국에서 연기라면 최고 소리를 듣는 사람들이 눈꺼풀 한 번 제대로 못 움직이고 배우를 계속해야 하나 딜레마를 겪으며 찍은 영화 ‘공작’. 그 뒤에는 배우들을 몰아치기보다는 바닥을 치고 다시 올라올 때까지 인내로 기다린 감독, 그런 배우와 감독들이 지적인 영화의 짧지 않은 촬영을 마칠 수 있도록 든든한 뒷배가 되어 준 제작자가 있다.

그리고 ‘공작’의 진정한 힘은 8월, 관객이 확인시킬 것이다.

“칸 초청, 감사하죠. 저는 근데 빨리 국내 개봉됐으면 좋겠어요. 디테일한 감정들, 우리 관객들은 잘 아실 텐데 하는 마음이 크거든요. 삼엄함 속에 촬영 시작했을 때와는 달리 평화 분위기가 조성된 가운데 우리 관객 분들이 더 좋아해 주시고 더 근사하게 생각해 주시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황정민)

/news@fnnews.com 칸(프랑스)=fn스타 홍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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