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기의 책보기] 천천히 또박또박 그러나 악랄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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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에겐 보이지 않아’ 책표지

박선화의 ‘남자에겐 보이지 않아’

(서울=뉴스1)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모 소설가가 ‘그러므로 이 세상의 근로감독관들아, 제발 인간을 향해서 열심히 일하라고 조져대지 말아달라. 이미 곤죽이 되도록 열심히 했다. 나는 밥벌이를 지겨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친구가 되고 싶다. 친구들아, 밥벌이에는 아무 대책이 없다. 그러나 우리들의 목표는 끝끝내 밥벌이가 아니다. 이걸 잊지 말고 또다시 각자 휴대폰을 차고 거리로 나가서 꾸역꾸역 밥을 벌자. 무슨 도리 있겠는가. 아무 도리 없다.’고 그의 산문집에서 토로했다.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남성들은 소설가 역시 남성일 것이라 ‘그냥’ 생각할 것 같다. 반면 여성들의 일부는 ‘그냥 남성’으로는 생각하지 않을 것 같고, 여성으로 생각하는 여성도 있을 법하다. 2018년 대한민국을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여자는 살림과 육아, 남자는 밥벌이와 양육’이란 관념에 고정돼 있기 때문이다. 소설가 역시 저 글 안의 ‘인간=남성’을 먼저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소설가는 대단히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성장하고 살아왔던 김훈이고 산문집은 ‘밥벌이의 지겨움’이다. ‘원시적에 남성들의 사냥용 돌도끼가 지금은 휴대폰으로 대체됐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다.

2018년 대한민국이 페미니즘으로 뜨겁다. 6.13 지방선거에서는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을 슬로건으로 내건 여성 후보가 출마했다. 페미니즘(feminism)은 ‘여성이 불평등하게 억압받고 있다고 생각하여 성별에 의한 차별을 없애고 여성의 사회, 정치, 법률상의 지위와 역할의 신장을 주장하는 주의’를 말한다. 이게 사실 어제오늘의 일인가? 여성권익신장에 대한 노력과 투쟁은 지구에 인간이 출현한 이래 꾸준히 진행돼온 일이다. 온전히 인간 스스로의 근력과 힘으로 사냥 등 밥벌이를 해야 했던 원시시대부터 신체적 조건의 차이로 형성돼 왔던 남성 중심 사회가 그런 노력과 투쟁으로 인식이 확장되면서 조금씩 조금씩 양성 평등의 사회로 진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1870년 흑인노예들에게 참정권을 주었던 미국은 1920년 여성들에게 참정권을 부여했다. 대한민국은 1948년에, 사우디아라비아는 2015년에야 여성참정권을 인정했다.

그런 연유로 일찍이 시인 노혜경은 산문집 ‘천천히 또박또박 그러나 악랄하게’(2003. 아웃사이더 출판)란 도발적 제목의 산문집에서 ‘페니스 파시즘’을 질타했다. ‘악랄하게’는 나쁜 뜻이 아니라 ‘집요하게, 끈질기게, 악착같이’란 뜻을 내포한다. ‘시대가 내 인식의 발전속도보다 빠르게 갈 땐, 초조해하지 말고 그냥 따라가는 거야. 천천히 또박또박 악랄하게’가 시인의 엊그제 주장이다. 가까이로는 2016년 조남주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여남 불평등의 대한민국를 세게 때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박선화의 ‘남자에겐 보이지 않아’가 나왔다. 남자들이 오해하거나 잘 모르는, 서로 불편하게 여기는 여성과 남성의 심리를 짚었다. ‘여성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하는 남성들이 읽을 책이다. 여성에 대한 자의식을 갖고 싶은 여성들이 읽을 책이다.

앞으로도 이런 다큐멘터리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 그러면서 사회는 평등의 세계로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또박또박’ 진보하는 것이다. 무서워서 말 못하고, 말해봐야 소용 없어서 말하지 않은 것들을 부지런히 말해야 켜켜이 쌓였던 불평등의 관념과 관행이 무너지지 않겠는가! ‘미운 놈에게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처럼 말이다.

사족이나 필자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를 무척 애독한다. 그런데 이 소설을 페미니즘 강한 여성들에게는 추천하기를 주저한다. 읽다가 화가 나 집어던질 여성들이 있을 것 같아서다. 다만, 카잔차키스가 이슬람 문명의 오스만투르크 제국이 지배하는 그리스 크레타섬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점, 소설의 배경 시점인 1900년 즈음에는 여남평등의식이 극히 희귀했던 전근대였다는 점을 좀 감안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은 해본다.

◇남자에겐 보이지 않아 / 박선화 지음 / 메디치 펴냄 / 1만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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