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무비] ‘공작’, 첩보영화로 위장한 웰메이드 회고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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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스틸 컷 © News1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제71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영화 ‘공작'(윤종빈 감독)이 미드나잇 스크리닝 섹션을 통해 공개될 당시, 많은 이들은 ‘범죄와의 전쟁’ 윤종빈 감독 스타일의 ‘첩보 액션 영화’를 기대했다.

하지만 베일을 벗은 영화는 기대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때리고 부수는 영화가 많은 미드나잇 스크리닝 상영작들과는 분위기가 달라 현장에서는 적응하지 못하는 관객들도 있었으나, 이후 나온 언론의 평만큼은 좋았다.

사실 ‘공작’은 보편적인 첩보물이라기 보다는 보다 리얼리티에 기반한 ‘한국형 드라마’다. ‘007’이나 ‘미션임파서블’ 같은 할리우드 첩보 영화들과는 결이 다르고 오히려 ‘1987’이나 ‘택시운전사’ 같은 근현대사 배경의 드라마 장르에 가깝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단순한 오락 영화라기 보다는 남북관계를 돌아볼 수 있는 일종의 회고담이다. 시기적절하다.

영화는 90년대 초 북한 핵무기 개발에 대한 의구심이 피어오르기 시작한 당시를 묘사하며 시작한다. 안기부 해외실장 최학성(조진웅 분)은 정보사 소령 출신 박석영(황정민 분)을 불러 흑금성이라는 암호명을 주고, 북핵의 실체를 캐기 위해 북의 고위층 내부로 잠입하라는 지령을 내린다.

이때부터 군인 출신인 박석영은 도박장을 전전하고 알콜중독자처럼 마시는가 하면 여러 사람에게 돈을 꿔서 사업가로 위장을 하는 등 신분 세탁을 시작한다. 그렇게 수년간 준비한 끝에 대북 사업가로 위장한 그는 베이징 주재 북 고귀간부 리명운(이성민 분)에게 접근하게 되고 그의 신임을 얻는 데 성공한다.

90년대 중반 북한은 고립과 자연재해 등으로 인해 ‘고난의 행군’ 시기를 보내던 때로 ‘외화벌이’가 매우 중요했다. 리명운은 북한의 이 외화벌이를 책임지고 있으면서 북한의 최고권력자 김정일과 직접 대면이 가능한 인물이다.

흑금성의 임무는 그를 통해 북한의 핵무기 개발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1997년, 남한의 대선 직전 남과 북 수뇌부 사이 은밀한 거래가 감지되면서 그의 대북작전은 애초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일단 ‘공작’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상징적 사건들, 그 물밑에서 벌어진 일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한국 관객에게 최적화된 작품이다. 역사적 배경과 맥락에 대한 이해가 클수록 영화를 보는 재미를 더욱 크게 느낄 수 있다.

일례로 영화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장식하는 삼성 휴대폰 ‘애니콜’의 CF 촬영 장면을 볼 때 당시 대한민국 대중이 느낀 충격과 감격, 설렘 등을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주인공 박석영과 리명운의 교차하는 감정에 더욱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에 가까운 대북 공작의 과정을 보는 재미도 크지만, 묘하게 변화하는 두 주인공 박석영과 리명운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재미도 상당하다.

특히 북한 고위직 간부이면서도 선량하고 정직한 인상을 주는 이성민의 리명운은 관객들이 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인물로 그려졌다. 그 덕에 관객들은 후반부로 갈수록 주인공 흑금성(황정민 분)이 느끼는 혼란스러운 감정에 더욱 공감하고 몰입하게 된다.

영화에는 볼거리가 풍부하다. 한국 영화 최초로 김정일의 별장을 대규모 세트로 제작했고, 대만 로케이션부터 시작해 전라도,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경기도 등을 돌면서 90년대 시공간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영화적 허용’을 최대한 줄이고 고증에 따라 한땀 한땀 촘촘하게 박아놓은 디테일한 묘사들, 절제됐지만 그래서 더욱 뭉클하게 다가오는 마지막 장면으로 인해 영화를 보는 2시간 17분이 아깝지 않다. 지난 8일 개봉해 상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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