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경성 남북체육교류협 이사장 “북한선수 K리그 진출? 정부만 승인하면 가능”

0
201810060601122889.jpg

김경성 남북체육교류협회 이사장이 4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남북체육교류협회 사무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10.4/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201810060601131094.jpg

김경성 남북체육교류협회 이사장이 4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남북체육교류협회 사무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8.10.4/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201810060601145911.jpg

김경성 남북체육교류협회 이사장이 4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남북체육교류협회 사무실에서 뉴스1과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10.4/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2006년부터 남북 오가며 유소년축구대회 개최

(서울=뉴스1) 정명의 기자 = 남북 관계가 얼어붙었을 때부터 꾸준히 휴전선 너머에서 민간 교류에 힘써온 인물이 있다. 김경성(59) 남북체육교류협회 이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김 이사장은 경기도 포천 출신으로 현재 경기대 한반도전략문제연구소 부소장,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위원장 등으로도 활동 중이다. 민간 분야의 남북 교류에 있어서 최고의 전문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는 25일 춘천에서 열리는 제5회 아리스포츠컵 국제유소년축구대회 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김 이사장을 뉴스1이 만났다. 인터뷰는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남북체육교류협회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김 이사장의 집무실에는 남북체육교류의 흔적이 고스란히 쌓여 있었다. 남북 선수들의 사인이 들어간 축구공과 축구화, 북측으로부터 받은 공로패, 기념 사진이 채워져 있는 액자 등은 모두 그동안 김 이사장이 기울인 노력을 대신 보여주고 있었다.

사업가였던 김 이사장은 우연한 기회에 북한 축구 선수들과 인연을 맺게 됐고, 그 길로 남북체육교류에 앞장서는 민간 전문가로 거듭났다. 처음엔 비즈니스로 접근했던 일이 이제는 사명감이 돼 김 이사장의 하루를 빼곡히 채운다.

그는 "통일은 정치인이 만들어낸 것이다. 통일보다는 통합이 먼저다"라며 "통합이 되면 자유로운 왕래, 자유로운 경제 활동이 가능해진다. 그러기 위해서 체육교류가 중요하다"고 자신의 신념을 피력했다.

-아리스포츠컵 국제유소년축구대회가 어떤 대회인지 궁금하다.

▶2006년부터 시작해 지난 8월 평양에서 열린 것이 벌써 21번째다. 10월25일 춘천에서 22번째 대회가 열린다. 내년 4~5월에는 북한 원산에서 23번째 대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원산에는 현재 1만5000~2만석 규모의 축구전용구장이 지어지고 있다.

남북 유소년들이 벌이던 대회를 2014년부터 여러 국가가 참가하는 아리스포츠컵으로 발전시켰다. ‘아리’는 아리랑에서 따온 말로 예쁘다, 멋있다는 뜻도 들어있다.

-어떻게 남북체육교류에 힘을 쓰게 됐나.

▶2003년에 중국 윈난성 쿤밍시에 있는 스포츠센터를 인수했다. 베트남 접경 지역인데 해발 2000m 이상으로 항상 시원한 곳이다. 고지대라 훈련 효과가 좋아 2003년에는 레알마드리드가 전지훈련을 왔다. 그 때 데이비드 베컴이 자기가 본 가장 좋은 훈련장이라는 호평을 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앞두고는 한국 축구 대표팀이 훈련을 왔고, 2005년에는 2006년 독일월드컵을 준비 중이던 북한 축구 대표팀이 왔다. 그 때 북한 선수들에게 훈련 시설을 무료로 지원했다.

-무슨 이유로 북한 선수단에게 지원을 했던 것인가.

▶처음에는 비즈니스적인 접근이었다. 북한이 머물면 북한과 경기를 하고 싶어하는 다른 팀들을 유치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한 선수단을 가만히 보니 당시 100m를 11초대에 뛰는 선수가 2명이나 있을 정도로 개인 기량은 출중했다. 단, 해외에서 훈련이나 경기를 한 경험이 없다보니 경기력이 떨어졌다.

그래서 북한 간부들에게 그런 설명을 하면서 ‘어릴 때부터 경험을 쌓아야 하니 어린 선수들을 이곳으로 보내라. 성인 선수들도 보내라’면서 무상으로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는 특별한 목적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지원을 했다.

그 때는 남북 관계가 좋을 때였는데 2006년 10월에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하면서 국제적으로 고립 되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2006년 북한 여자 축구가 20세 이하 월드컵에서 첫 우승을 차지했다. 2008년에는 제1회 17세 이하 여자 월드컵에서 우승을 했다.

지원을 통해 좋은 성과가 나기 시작하면서 북한에서 내 공로를 인정해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2008년에는 북한이 평양에 35만㎡ 부지를 무상으로 제공해줬고, 평양 능라도에 김경성 초대소를 지어줬다. 초대소는 영빈관처럼 특별하게 초청을 한 사람들만 묵을 수 있는 곳이다.

-문재인 정부 이전에는 남북 관계가 얼어붙어 어려움이 컸을 것 같은데.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남북관계가 꽉 막혔다. 스포츠 교류도 중단됐다. 그 전까지는 남북을 오가며 이뤄지던 스포츠교류도 그 때부터 제3국인 중국으로 장소를 옮겼다. 남북 지역에서 할 수 없게 됐지만 스포츠교류는 계속 이어나갔다.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을 겪었나.

▶이명박 정부에서 나에 대한 불법 사찰도 했고, ‘김경성이가 북에 포섭됐을 것이다’라는 등 정보 조작도 했다. 집과 사무실을 압수수색 당하기도 했다. 북한에 ‘김경성 초대소’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종북좌파로 몰린 것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는 남북 교류를 하던 사람들이 상당한 압박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다. 한 번도 남북 교류를 중단하지 않았다. 심지어 압수수색을 당한 그 해에도 교류를 이어갔다.

-오기가 생긴 것인가.

▶아니다. 오기라고 하면 안된다. 스포츠교류는 유엔(UN) 정신이고 올림픽 정신이다. 해야만 하는 일이었고,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사명감이 생겼다. 전쟁 기간 중에도 스포츠 교류를 하는 것이 올림픽 정신이다.

2014년 연천에서 전단지 살포에 의한 포격전이 벌어진다. 그런데 포격전이 벌어진 그 장소에 북한 축구 선수들이 왔다. 박근혜 정부에서 승인을 해줬기 때문에 북한 선수들이 올 수 있었다. 그렇게 축구 대회를 해서 긴장이 완화됐다.

2015년에는 목함 지뢰 사건이 있었다. 대북 확성기 문제로 포격전이 있었고, 북한은 준전시상황을 선포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 때는 평양에서 축구를 했다. 우리 정부가 승인을 해줬기 때문에 가능했다.

-정부의 승인을 받은 것이 의아한데.

▶일촉즉발 상황에서도 우리 정부가 승인을 해줬고, 행사를 잘 치렀다. 그것이 결국 남북 고위급 회담이 타결되고 이산가족 상봉이 성사되는 촉매제가 됐다.

이렇게 남북 관계가 최악인 상황에서도 정부가 승인을 해줄 때도 있고, 어떨 때는 아무 일도 없는데 승인을 안해줄 때도 있다. 그만큼 남북정책은 들쑥날쑥했다. 같은 정부, 같은 조건에서도 일관성이 없었다. 그러면서 남북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놓쳤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스포츠 교류를 정치적 환경에 맞추면 안된다. 나는 어려움 속에서도 22차례 교류를 이어왔다. 8번 우리가 올라갔고 6번 북한이 내려왔다. 정부가 허용을 안해서 8번은 제3국에서 했다.

-남북체육교류협회는 언제 설립됐나.

▶공식적으로는 2006년 7월에 출범했다. 그 전에는 내가 운영하던 기업 이름으로 교류를 진행했다. 그 회사는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때 부도났다.

-사업비도 많이 들 것 같은데 어떻게 충당하나.

▶개인 재산이 많이 투입됐다. 행사 시에는 후원도 받는다. 좋은 사업을 한다면서 개인 후원도 있고 법인 후원도 들어온다. 지방자치단체도 참여를 한다. 노무현 정부 때는 중앙정부에서 지원도 있었는데 이명박 정부 때부터 지금까지는 끊겨 있다.

-북한 선수의 K리그 입단도 추진 중이라고 들었다.

▶우리 정부가 승인만 하면 가능하다. 연봉 측면에서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는 것보다 나을 것이고 흥행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류현진 선수가 LA 다저스에 입단하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저스를 응원하는 것처럼, 북한 선수가 K리그에 입단하면 북한 사람들도 K리그 팀을 응원하게 되지 않겠나. 북한에도 김정은 위원장이 TV 스포츠채널을 만들었는데, K리그가 북한에 중계되는 것도 가능하다. 다저스가 한국 시장을 선점한 것처럼, 북한 선수를 보유한 K리그 구단도 북한 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축구 외에도 북한과 체육교류가 가능한 종목이 있나.

▶모든 종목이 가능하다. 일단 북한 선수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 진출시키고 프로복싱 세계 챔피언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다.

하키 선수 중 골프로 전향시킬 유망주들이 있다. 필드하키나 아이스하키는 스윙이 골프랑 비슷하다. 해외 주재원 자녀 중에는 골프 경험이 있는 어린 친구들도 있다.

그런 선수들을 국내 대회에 출전시키면서 경험을 쌓게 하면 4년 후에는 LGPA에도 진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복싱은 아마추어 유망주들이 많기 때문에 프로만 전향한다면 2년 안에 챔피언이 나올 수 있다.

-궁극적으로 통일을 바라는 것인가.

▶통일은 정치인이 만들어낸 것이다. 통일보다는 통합을 해야 한다. 통합이 되면 자유로운 왕래, 자유로운 남북 경제 활동이 가능해진다. 그러기 위해서 체육교류가 중요하다.

대만과 중국은 자유롭게 교통편이 오가고 수많은 유학생, 기자들이 각국에 머문다. 그렇게 지내면서 양국 국민들이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남북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이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다면 통일은 하면 좋지만 안해도 괜찮다. 통일보다는 스포츠, 문화, 관광까지만 잘 통합이 된다면 하나의 민족, 두 개의 국가 체제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 통일은 정치적이다. 가장 나중의 문제다.

-최근 종목별 단일팀 논의가 많은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건 통일이 아닌 통합이다. 단일팀은 찬성한다. 하지만 그냥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영국이 축구에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단일팀 내보냈지만 8강에서 한국에게 졌다. 다시는 단일팀을 만들 수 없을 정도로 상처를 입었다. 그러면서 더 분열했다.

단일팀 구성은 정치적인 의도로만 하면 안된다. 서로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을 때 구성해야 한다. 잘못하면 여론으로 인해 환경이 더 나빠질 수 있다. 따라서 철저하게 스포츠로 접근해야 한다.

또 하나. 우리는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따면 군면제, 연금 등의 혜택이 있다. 그걸 위해 평생을 바친 선수들이 있는데, 그들의 희망을 빼앗으면 안된다. 그런 제도적인 보완을 해나가면서 단일팀을 추진해야 한다.

Facebook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