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조로 변호사의 작품 속 법률산책-‘말모이’의 특수절도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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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생각을 말로 표현하고, 표현된 말은 우리의 생각을 지배합니다. 이처럼 언어는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정신을 반영하고 지배합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에도 한민족의 정신과 역사가 담겨 있습니다.

영화 ‘말모이’(감독 엄유나)는 조선어학회 사건을 배경으로 일제의 억압과 감시를 피해서 어렵게 최초의 우리말 사전을 편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말모이’는 한힌샘 주시경 선생이 1911년에 시작했으나 선생의 죽음으로 미완성으로 남은 최초의 국어사전 원고를 말합니다.

작품 속에서 극장에서 해고된 김판수(유해진 분)는 장춘삼(이성욱 분), 박봉두(조현철 분)와 함께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윤계상 분)의 가방을 훔칩니다. 김판수 일당은 가방에 돈이 있을 것이라고 훔쳤는데, 자신들에게는 필요 없는 사투리 원고만 있더라도 절도죄가 성립할까요?

절도죄는 타인이 점유하는 타인의 재물을 절취하면 성립하는 범죄입니다. 타인이 점유한다는 의미는 타인이 단독으로 점유하는 것뿐만 아니라 범죄자가 공동으로 점유하는 것도 포함합니다. 류정환이 체한 척 쓰러지는 박봉두를 구하려고 가방을 잠시 옆에 뒀다고 하더라도 류정환이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어서 김판수 일당의 입장에서는 타인 점유가 됩니다.

관리 가능한 것이면 유체물 뿐만 아니라 무체물도 재물이 될 수 있습니다. 즉, 권리, 전파, 정보, 기회 등은 무체물로서 물리적으로 관리가 불가능해 재물이 아니지만 정보가 담긴 USB 등의 물건은 재물입니다. 태양, 달, 별 등은 유체물이라고 하더라도 관리할 수 없어 재물이 아닙니다.

재물은 소유자가 소유권의 대상으로 할 수 있는 주관적 가치 내지 소극적 가치만 있으면 되지, 경제적 교환가치까지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즉, 다른 사람 입장에서 가치가 없는 애인의 사진, 무효인 약속어음, 발행자가 회수해 세 조각으로 찢어버린 약속어음 등도 재물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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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에 들어있던 지방 사투리 원고는 김판수 일당에게는 전혀 쓸모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에게는 소중한 것이었기 때문에 재물에 해당합니다. 사투리 원고를 돈으로 착각하고 훔쳤다고 하더라도 절도에 해당하고, 여러 명이 합동해 훔쳤기 때문에 절도죄보다 중한 특수절도죄가 성립합니다.

특수절도죄는 야간에 문호 또는 장벽 기타 건조물의 일부를 손괴하고 주거 등에 침입해 타인의 재물을 절취하는 경우, 흉기를 휴대하고 타인의 재물을 절취하는 경우, 2인 이상이 합동해 타인의 재물을 절취하는 경우에 성립합니다.

박봉두는 체한 것처럼 류정환에게 쓰러져서 안기고, 장춘삼은 망을 보고, 김판수가 경황이 없는 류정환의 가방을 훔친 것은 2인 이상이 시간적, 장소적으로 협동해 재물을 절취한 것이므로 특수절도죄가 성립합니다. 상습성이 인정되면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적용돼 보다 중하게 처벌될 수 있습니다.

일제의 온갖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끝내 우리말 사전을 편찬한 분들의 삶과 정신이 아름답습니다. ‘한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걸음이 더 큰 걸음이다’라는 대사는 별 다른 생각 없이 사용했던 ‘우리’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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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태일 변호사 이조로 zorrokhan@naver.com

/chojw00_star@fnnews.com fn스타 조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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