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야마모토는 전설(G.O.A.T)입니다.”
2025년 11월 2일, 캐나다 토론토의 로저스센터. LA 다저스가 2년 연속 월드시리즈 우승을 확정한 직후, 데이브 로버츠 감독의 이 한마디가 모든 것을 설명했다.
이날 9회 마운드에 오른 야마모토 요시노부는 2⅔이닝을 던지며 다시 한 번 야구의 신화를 썼다. 전날 6이닝 선발승을 거둔 투수가 하루 만에 구원으로 나와 또다시 승리를 따냈다. 피로 따위는 잊은 투혼의 완성, 그것이 곧 ‘야마모토’였다.
야마모토는 이번 월드시리즈에서 3경기 3승, 평균자책점 1.02, 17⅔이닝 15탈삼진이라는 괴력을 남겼다. 2001년 랜디 존슨 이후 24년 만에 월드시리즈에서 3승을 거둔 투수. 그 역시 원정 경기에서만 3승을 따냈다.
이 숫자들의 나열은 단순한 기록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한 경기를 던지고 나면 최소 나흘의 휴식이 주어지는 것이 현대 야구의 상식이다. 하지만 야마모토는 그 상식을 부쉈다. 6차전에서 96구를 던지고, 7차전에서는 다시 2⅔이닝을 던졌다. 그리고 승리투수가 됐다.
그는 ‘혹사’라는 단어를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몸보다 정신이, 계약보다 명예가 앞섰다.야마모토는 우승을 향한 순수한 열정 하나로, 투수라는 존재의 본질을 다시 보여줬다.
야마모토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오늘 공을 던질 수 있을지 나도 몰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던졌다. 자신이 아니어도 되는 순간이었지만, ‘던지겠다’고 했다.
그 한 걸음이 전설을 만들었다.9회 1사 만루 위기, 알레한드로 커크를 몸에 맞게 내보낸 뒤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이어 돌턴 바쇼를 2루 땅볼로, 어니 클레멘트를 중견수 플라이로 잡아내며 위기를 넘겼다. 좌중간을 가를 듯한 타구를 안디 파헤스가 잡아내자, 그는 미소를 지었다.
야구는 이제 데이터의 시대다. 피로도, 투구 수, 회전수, 평균 구속. 모든 것이 숫자로 관리되고, ‘무리하지 않는 야구’가 미덕이 되었다. 혹사는 용인될 수 없다. 몸은 선수의 자산이고, 팬들은 오랫동안 선수를 보고 싶어한다. 하지만 야마모토는 그 질서를 스스로 나서서 무너뜨렸다.
한국에도 그런 투수가 있었다. 말도 안되는 투혼으로 무장했던 선수였다.
그의 투혼은 1984년 한국시리즈의 고(故) 최동원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최동원은 롯데 자이언츠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는 “내가 던지지 않으면 팀이 진다”는 신념 하나로 4승을 올렸고, 지금도 그 이름은 ‘전설’로 남았다. 야마모토의 2025년 가을은 그 정신의 현대적 부활이었다.
과학이 지배하는 시대에도,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위대할 수 있는지를 증명한 순간이었다.
야마모토는 아직 27세다. 그는 일본에서 7년간 70승, 평균자책점 1.82라는 비현실적인 기록을 남기고 다저스로 왔다. 계약금 5천만 달러, 총액 3억2천500만 달러. 역대 MLB 투수 최고액 계약이었다. 누구도 그 금액이 값어치를 할 것이라 믿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그 의심은 사라졌다. 그는 현대 야구의 모든 금기를 깨며, ‘야구는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24년 만의 3승, 17⅔이닝의 투혼, 그리고 단 하나의 메시지.
"드라마는 기록이 아니라, 희생으로 완성된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