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바바라’를 찾은 썸남썸녀, 코로나 시대에 딱이네 [김성호의 영화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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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코로나19로 해외여행길이 막혔다. 여행지에서의 여유를 즐기던 사람들은 길어진 코로나19 상황에 고통을 호소한다. 그런 이들에게 매력적인 여행지가 등장하는 영화는 꽤나 괜찮은 선택지일 수 있다. ‘김성호의 영화가난다’ 35편에서 소개할 <산타바바라>도 그런 영화다.

<산타바바라>는 <멋진하루>, <영화는 영화다>의 제작자이자 2010년작 <맛있는 인생>을 통해 감독으로도 데뷔한 조성규 감독의 네 번째 연출작이다. 산타바바라의 이국적 풍경과 이상윤·윤진서라는 검증된 배우가 출연해 낯설면서도 어딘가 익숙한 여행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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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찾는 여행영화

영화의 제목인 산타바바라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 남서부에 위치한 관광도시다. 이름난 와이너리들이 위치해 있고, 제62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뮤지컬 부문 최우수작품상과 각본상을 수상한 와인영화의 명작 <사이드웨이>의 배경으로도 유명하다.

<산타바바라>는 <사이드웨이> 속 낭만적 공간을 꿈꾸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다룬다. 일상적이면서 코믹한 감성으로 두 남녀 사이를 오가는 미세한 감정선을 따른다. 99분에 이르는 러닝타임 중 마지막 20여 분 정도는 실제 산타바바라를 배경으로 전개되는데, 이 부분이야말로 영화의 백미라 해도 좋겠다.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음에도 감정을 확인하지 못한 남녀가 산타바바라를 찾아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여정은 한 줄로 설명할 수 있을 만큼 간결하고 명료하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서보면 영화는 그리 평범하지만은 않다. 우선 정통 멜로물이 아니다. 차근차근 주인공의 캐릭터를 설정하고 그들의 심리상태와 관계의 진전을 그려내는 정통 멜로물과 달리 <산타바바라>는 코미디적 로드무비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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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하게 그려진 풍경화 같은

주연을 맡은 이상윤(정우 역)과 윤진서(수경 역)는 관객들이 극중 인물에 몰입하도록 하기보다는 철저히 스스로를 객체화시키는 어색한 연기를 펼친다. 그리고 이는 관객들로 하여금 마치 멀리 떨어져 마당극을 보는 듯한 효과를 빚어낸다. 보통의 멜로물은 극중 인물에 몰입하도록 하기 위해 여러 장치를 설정하게 마련이지만, <산타바바라>는 풍경화를 보듯 멀찍이 떨어져 관조하게끔 한다. 때문에 관객들은 이야기를 따라갈 뿐 몰입하기 어렵다.

의도적으로 설정된 듯한 형식이 낯설게 느껴질 무렵 무대는 갑작스레 산타바바라로 옮겨진다. 그리고 여기서 영화의 진면목이 등장한다. 이색적인 풍광과 상황이 만들어낸 낯선 감정들, 영화는 산타바바라라는 공간에서 서울에선 확인하지 못했던 두 남녀의 진심에 조금씩 다가선다. 바로 이 부분이 영화가 승부하는 대목이다.

코로나19로 이국적 풍경을 만나기 어려워진 현실 가운데 <산타바바라>가 주는 매력은 더욱 클 수도 있겠다.

다만 부족한 점도 눈에 띈다. 사랑보다 일이 중요한 여자와 일보다 사랑이 먼저인 남자의 로맨스를 다룬 영화는 이 작품 이전에도 어림잡아 수백 편은 만들어졌을 것이다. 기본적인 설정부터 등장하는 여러 에피소드와 사소한 디테일에 이르기까지 다른 영화들에서 여러차례 보았을 법한 클리셰들이 우후죽순 솟아난다.

포스터나 카피 등을 통해 예상할 수 있는 것과 전혀 다른 분위기의 영화인 것도 아쉽다. 낭만적이고 아름다울 것 같아 찾은 영화가 허술하고 가볍기 짝이 없는 영화일 때 관객은 실망을 감추기 어렵다.

이쯤되면 의문이 떠오른다. 어쩌면 산타바바라에 가고 싶었던 건 영화 속 정우와 수경이 아니라 조성규 감독 본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영화가난다’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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