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 드문 한국형 활극, 하지만 아쉽다 [김성호의 영화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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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2014년은 사극의 해였다. 상반기에 <조선 미녀 삼총사>, <역린> 등이 개봉했고 하반기엔 <명량>, <해적: 바다로 간 산적>, <협녀: 칼의 기억> 등이 개봉했다. 고증에 충실한 정통사극과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더한 퓨전사극, 배경만 과거일 뿐 영화적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한 작품까지, 저마다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영화들이 선을 보였다.

2012년 흥행에 성공한 <광해>의 여파, 또는 고갈된 설정을 사극을 통해 해소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는 해석이 있었지만 진실은 모를 일이다.

<군도: 민란의 시대>는 이런 흐름 속에서 나온 대작 사극이다. 배경은 조선 철종 13년, 세도정치와 탐관오리들의 착취가 극에 달한 시절이다. 군도는 도적무리라는 뜻으로, 영화는 백성을 착취하는 지방양반의 폭압에 항거해 지리산 추설의 도적떼가 민란을 일으키는 내용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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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극 배경+무협 서사+웨스턴 스타일=한국형 활극?

주인공은 나주의 백정 돌무치(하정우 분)다. 나주 부호의 서자이자 조선 최고의 무관 조윤에게 가족을 잃은 돌무치는 지리산 추설의 일원이 되어 도치라는 이름을 얻고 복수를 위해 무술을 연마한다. 무협소설의 절대 고수를 떠올리게 하는 조윤(강동원 분)과 그에게 복수하기 위해 무공을 연마하는 도치의 대결은 전형적인 무협소설의 서사구조를 따른다. 즉 멸문의 화를 당한 주인공이 기연을 만나 무공을 연마한 끝에 복수를 하기까지의 드라마인 것이다.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이후 오랜만에 나온 한국형 활극이지만 그 스타일에 있어선 이색적인 분위기가 많이 풍긴다. 처음 이목을 집중시키는 건 서부극의 분위기다. 서부극에 어울릴 법한 음악을 배경으로 쌍권총 대신 쌍도끼를 휘두르는 도치와 장총 대신 장검을 휘두르는 조윤, 여러차례 반복해서 등장하는 서부극에 대한 오마주는 노골적으로 이 영화의 정체성을 말해준다.

고전 서부극부터 스타게티 웨스턴을 지나 쿠엔틴 타란티노의 스타일에 이르는 폭넓은 장르의 변용은 영화의 볼거리다. 영화의 클라이막스라 할 만한 도치의 기관총 사격신과 이어진 민란은 이제는 고전이 된 웨스턴 영화의 명장면들을 떠올리게끔 한다. 서부극뿐 아니다. 서사는 무협이며 영화 전반에 산재한 코미디적 요소, 한판 놀아보자는 활극의 스타일이 뒤엉켜 영화는 이전과 이후에도 보기 어려운 독특한 작품이 되었다.

인상적인 세 작품 <용서받지 못한 자>, <비스티 보이즈>,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를 통해 재능을 인정받은 윤종빈 감독은 크고 작은 역할에 내로라하는 유명배우들을 내세워 거칠지만 유쾌한 한 편 활극을 찍어냈다. 영화는 그 스타일만으로도 활극이란 장르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한국 영화계에 의미있는 작품이 되었다.

무엇보다 고작 30대 중반에 불과한 젊은 연출자의 네 번째 영화였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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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 캐릭터, 통쾌하지 못한 클라이막스

다만 단점도 없지 않다. 똑똑한 놈, 멍청한 놈, 힘센 놈, 빠른 놈, 활쏘는 놈 등등 기존의 영화들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던 전형적인 캐릭터들이 즐비하고 새로운 캐릭터는 발견하기 어렵다. 서사와 소소한 에피소드의 배치 역시 전형적이며 강동원이 연기한 조윤은 틀에 박힌 흔한 캐릭터임에도 드라마가 취약해 감정선이 살지 않는다.

활극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 할 만한 쾌감도 충분하지 않다. 클라이막스가 주는 충격이 약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서사와 전형적인 캐릭터가 몰입을 충분히 이끌어내지 못하면서 클라이막스에서 관객들이 느끼는 대리배설의 쾌감이 크지 못하고, 이는 활극의 맛이 덜해지는 원인이 되었다. 다양한 스타일을 선보인 것만으로는 클라이막스의 세기가 약하고 서사와 캐릭터가 전형적인 문제를 해소할 수 없었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활극 특성상 캐릭터와 드라마에 깊이를 더하기가 쉽지 않았겠지만 클라이막스의 통쾌감이 충분하지 않았다면 드라마나 캐릭터를 통해 보완하는 작업이 선행되었어야 했던 게 아닐까 싶다.

추설의 산채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나주의 백성들은 어떠한지, 하다못해 조윤의 잔학함을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전반부에 단 한 장면이라도 배치돼 있었다면 극에 깊이를 더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 아쉽다. 여러모로 시나리오상의 세심한 준비가 부족하다는 인상이다.

러닝타임을 즐기기엔 충분하지만, 거기서 만족할 만한 영화가 아니었기에 아쉬웠다. 깊이와 세기, 둘 중 하나는 온전했어야 했다.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영화가난다’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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