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가 부재한 시대, 리더십을 말하다 [김성호의 영화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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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임진란에 李舜臣은 모함을 받아 서울에 붙들려와 국문(고문)을 당한 끝에 白衣從軍(백의종군)으로 남해안에 내려간다. 그 사이 李舜臣의 직책을 대신 한 元均(원균)이 일본 수군에게 대패하여 겨우 패잔선 12척만 남았다. 다시 三道(삼도) 수군통제사로 복귀한 이순신에게 『조선의 수군은 이제 없는 것과 같다. 패잔병들을 추스려서 육군으로 편입하여 전투를 계속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이에 대해 이순신은 장계에서 『지금 신에겐 아직도 12척의 戰船(전선)이 있습니다. 죽음을 다하여 나가 싸우면 사세를 돌이킬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 수군을 없애, 왜군이 전라도로 침입하고 수도 서울을 공격하는 것을 신은 두려워 합니다. 비록 아군의 전선은 몇 안되지만 변변치 못한 신이 죽지 않는 한 왜군은 우리나라를 감히 없신 여기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서기원, ‘이순신의 名文은 漢字에서 나왔다’ 중에서

역사 속 전투가 스크린 위로 전해지다

활자화 된 역사책 속 전투를 꺼내 생생한 영상으로 되살렸다. 광화문 복판에 장검을 짚고 서 있는 위엄있는 모습으로, 100원짜리 동전에 새겨진 점잖은 모습으로 기억되는 성웅 이순신, <명량>은 그런 이순신 대신 처절했던 전투 ‘명량해전’ 속 외롭고 두려웠을 사내를 그린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영화는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이야기다. 단 12척의 배로 330척 왜군의 대선단을 격파한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이 소재다. CJ엔터테인먼트에서 힘주어 내놓은 작품답게 한 주 앞서 개봉한 쇼박스의 <군도: 민란의 시대>, 뒤이어 개봉한 롯데엔터테인먼트의 <해적: 바다로 간 산적>과 함께 2014년 3대 사극으로 주목받았다.

표절논란이 일었던 전작 <최종병기-활>을 통해 나름의 재능을 인정받은 김한민 감독과 뜨거운 배우 최민식의 만남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관심도 적지 않았다.

이 영화로부터 군사들을 앞에 두고 솜털을 곤두세우는 일장연설을 하거나, 대장선에 앉아 신출귀몰한 전략으로 적군을 격파하는 영웅의 모습을 찾고자 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영화가 그려내는 이순신은 극복하기 어려운 현실에 짓눌린 인간이며, 배 위로 건너온 적들과 직접 백병전을 펼치는 군인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이순신에게 단 한 번의 휴식도 허락하지 않으며 회오리치는 전장의 한복판으로 몰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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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이 아닌 인간 이순신의 처절한 리더십

단 12척의 배로 330척을 격파한 기적 같은 전투, 그 놀라운 전장엔 신기에 가까운 전략전술도 신화적 용맹도 없다. 갑옷에 피칠갑을 한 채 칼을 휘두르는 무장과 살기 위해 적을 찌르고 베는 병사들, 절벽 위에서 그 병사들의 귀환을 소망하는 가족들이 있을 뿐이다. 적의 위용에 눌려 장군을 따라 전진하지 않고 있던 11척의 배와 잔뜩 겁을 집어먹은 병사들의 표정은 역사서를 통해 우리가 기억하는 ‘명량’의 모습이 아니다.

영화의 주제는 바로 여기서 드러난다. 시작부터 승패가 정해져 있는 것 같았던 명량의 싸움을 승리로 이끈 것이 무엇인지가 영화의 관심사다.

답은 민중들, 그리고 그들을 일깨운 장군의 리더십이다. 두려움을 한 줌의 용기로 변화시키고 그 작은 용기를 키워 전장과 국면을 전환시킬 커다란 불길을 일으킨 이순신의 리더십을 영화는 스크린 가득 펼쳐낸다. 그로부터 확고한 비전을 가진 이순신 장군과 그를 믿고 따른 병사들, 절벽 위 한 마음이 되어 응원한 백성들의 귀한 마음들을 기적적인 승리의 요인으로 지목한다.

영화의 마지막, 명량의 회오리와 대장선의 위험을 알린 백성들의 몸짓 가운데서 무엇이 더 천운이었겠느냐 묻던 이순신 장군의 물음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이는 곧 영화의 주제를 되새기는 결정적 장면이다.

대장선을 향해 다가서던 화약이 실린 배, 그 위험을 경고하기 위해 치마며 웃옷을 벗어 흔들던 백성들의 외침이 장군과 조선수군, 나아가 조선을 패배에서 구해냈다. 무방비의 대장선을 향해 다가서던 일본군의 배들이 때마침 일어난 회오리에 휩쓸린 것 역시 조선의 승리에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는데, 이 역시 예상치 못한 것이었으며 조선을 구한 기적같은 일이었다. 그런데 장군은 아들에게 이 둘 중 무엇이 더욱 천운이었겠느냐고 묻는다.

무엇이 더욱 기적적인 일이냐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둘 모두 장군이 예상하지 못한 것이며, 그럼에도 간절히 바란 일이기 때문이다. 장군은 두려움을 용기로 변화시키기 위해 뒤를 따르지 않는 11척의 배를 부르지 않고서 홀로 적 가운데서 싸운다. 거친 바다를 이용하기 위해선 미리 밤바다에 나가 지형과 물살을 연구한다.

하지만 그는 그 모두가 완전히 계산할 수는 없는 일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를 던져 필사즉생의 각오로 싸운 것이다. 그리고 천운이 닿아서 그는 비로소 이길 수 있었다. 그러니 무엇이 천운인가를 따지는 게 중요할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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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가 부재한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십을 보이다

중요한 건 이순신의 리더십이다. 그는 나보다 백성을 먼저 생각하고, 공과 사를 가려 군법과 기강을 세우며, 몸소 위험으로 뛰어들어 철저히 준비된 전술로 적에 대항한다. 리더가 부재한 현실 가운데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이순신 장군의 모습은 관객들의 가슴에 시의적절한 울림을 전해준다.

동시에 당연한 의문도 맴돈다. 과연 이 시대엔 보상에 대한 기대없이 의무를 다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나의 작은 이득보다 우리를 먼저 생각하고, 현실의 절망 속에서 선의 씨앗을 뿌리려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되느냐 하는 물음이다. 절망을 딛고 일어나 주변을 일깨우고 스스로를 던져 희망을 얻으려는 그런 리더는 정말 존재하는가.

인간으로서의 이순신을 조명하는 영화의 전반부는 여느 위인전을 빠르게 훑어가며 사이사이 인간적 고뇌와 번민을 곁들인 상투적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전투로 가득 채운 후반부 1시간 여는 근래에 본 적 없는 수준급 해상액션과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이 전면에 드러나는 멋스러운 시간이다.

<명량>에서 이루어진 이순신과 최민식의 만남은, 물론 아쉬운 부분도 있겠으나, 오로지 그만이 할 수 있는 방식대로 역사 속 인물에 생명력을 부여한 혼신의 연기였다.

우려가 먼저였던 CG도 기대 이상이었다. 화포의 위력과 회오리치는 물살은 마치 현장에서 직접 느끼는 것처럼 스크린 너머까지 생생하게 전해진다. 배 위에서 칼과 창, 도끼와 낫을 들고 그야말로 처절한 백병전을 벌이는 장면들도 원거리 전투장면과 어우러져 근래 본 적 없었던 완성도 높은 해상액션으로 화했다.

이 영화를 한 주 먼저 개봉한 <군도>와 비교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다. ‘민란의 시대’란 부제를 달고 있으면서도 백성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데 인색했던 <군도>보다는 <명량>이 주제의식의 측면에서 더욱 시의적절하지 않았나 싶다. <명량>이 던진 ‘리더십’에 대한 메시지는 2014년 이후 펼쳐진 한국의 현실에 커다란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리더십뿐 아니다. 액션은 현실적이면서도 처절하고 캐릭터는 전형적인 수준을 넘어서 있다. 구루지마를 비롯한 몇몇 인물이 단조롭게 묘사되긴 했으나 해상액션과 이순신의 리더십에 집중하기 위한 선택으로 이해된다.

역사 속 인물의 이야기를 굳이 스크린으로 옮겨 표현함으로써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가치를 획득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는 것도 영화를 소화하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후한 말기부터 위진남북조 초기에 이르는 역사로부터 <삼국지연의>와 같은 소설이 등장해 시대를 초월하는 문화적 자산으로 자리잡은 중국의 사례가 좋은 예일 수 있다.

돌아보면 우리 역사에도 자랑스러운 사건들이 없지 않은데 한국영화가 중흥하던 시기 이를 영상화하는 작업이 이뤄졌다는 건 몹시 긍정적이다. 이건 우리가 <명량>을 재평가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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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영화가난다’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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