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할 사(思), 슬퍼할 도(悼). ‘너를 생각하며 슬퍼하노라.’
‘사도’는 조선의 21대왕 영조가 세자 사도에게 내린 시호(왕이나 사대부들이 죽은 뒤에 그들의 공덕을 칭송해 붙인 이름)다. 사도의 이야기는 이미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만, 그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평가는 아직도 분분하다. 어떤 이는 시대가 낳은 광인(狂人)으로, 또 어떤 이는 붕당정치의 희생자라 평한다.
이준익 감독은 영화 ‘사도’를 통해 사도라는 인물을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작품은 영조와 사도, 그리고 정조에 이르기까지 56년, 3대에 걸친 인과관계를 다뤘다. 그는 영화 곳곳에 깔려 있는 각기 다른 입장과 세월들을 통해 사도라는 입체적인 존재를 알아볼 수 있게 과거와 현재를 두 시간 남짓의 러닝 타임 안에 담아냈다.
# 세이빙 타임
이준익 감독은 영화를 관람하는 동안의 시간을 크게 ‘킬링’과 ‘세이빙’ 타임 두 가지로 나눴다. 그는 그 기준을 영화를 보고 나와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과 잔상으로 봤다.
“‘킬링 타임’은 현실의 각박함을 극장에 가서 확 죽이고 나오는, 다시 말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를 느끼며 스트레스를 풀고 오는 시간이죠. 이 시간은 사라진다고 볼 수 있어요. 반면에 ‘사도’를 관람한 분들은 ‘짓눌린다’ 할 정도로 많은 잔상들이 남았다 그래요. 그건 ‘세이빙 타임’이죠. 영화의 몰입 기준은 내가 캐릭터에 동질감 혹은 이질감을 느끼는가에 따라 달라지죠. 캐릭터에 동질감을 느꼈다면 그건 ‘세이빙 타임’이 되는 거죠. ‘사도’는 그 밑에 깔린 정보의 총량이 다른 작품들에 비해 세 배 정도 많기에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른 여운이 남는 작품이죠.”
그는 ‘사도’의 장점으로 작품 곳곳에 숨어있는 ‘유사감정’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사도는 영조의 아들이지만, 정조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따라서 관객들은 각각 다른 관점에서 작품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왕과 세자, 평범한 일반인, 거지 등 모두에게 천륜은 영원히 바뀌지 않죠. 어차피 아비 없는 자식이 없듯이 250년이 아닌 2500년 전이나, 250년 후에도 그 설정은 바뀌지 않죠. 때문에 관객들은 ‘사도’를 보며 각각 다른 인물에게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는 거죠. 누군가는 그 누구의 아버지이자 아들이기에 영조나 사도, 정조라는 인물에 감정을 이입하는 거죠. 그 감정과 유사감정이 일치했을 때 코끝이 찡해짐을 느낄 수 있어요. 아마 ‘사도’를 보면서 관객들의 코끝을 찡하게 하는 장면은 각각 다를 거예요.”
# 비극과 승화
이준익 감독은 비극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셰익스피어의 비극들을 언급했다.
“지금도 지구상 어디에서는 셰익스피어가 만들었던 비극이 상영되고 있을 거예요. 그 극을 통해 인간의 원초적 본능에 대한 딜레마를 보는 것이죠. 저희가 ‘햄릿’과 ‘리어왕’의 줄거리를 몰라서, 영국의 역사를 얼마나 잘 알아서 그 작품을 보나요? 그건 370~80년을 봐도 식지 않는 인간관계의 원형이기에 아직도 다뤄지는 것이죠.”
아버지가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사실은 누가 뭐라 해도 ‘비극’임에 분명하다. 이준익 감독은 이러한 비극은 반드시 아름다움으로 승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극은 반드시 정화된 다음에 아름답게 승화시켜야 하는 게 비극의 가치죠. 그걸 ‘사도’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어요. 배설물을 정화 시켜 다시 수돗물이 되게 하는 것처럼, 선조들의 비극은 후대에게 어떠한 교훈들을 주고 있죠. 선조들의 비극은 후대가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라는 처절한 외침이자 절규라 할 수 있어요. 영조도 정조에게 ‘내가 네 아비의 기록을 지워주는 것은 너와 이 나라의 종사를 위해서다. 나는 자식을 죽인 아비로 남을 것이다.’라고 말하죠. 영조, 사도, 정조가 비극을 두고 절규했던 것을 250년이 지나 극장에서 들으며 ‘무엇을 정화시켜 무엇으로 승화시킬까’라고 생각해 보는 것이 ‘사도’의 의미라 할 수 있어요.”
결국 ‘사도’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자신과 똑같은 전철을 밟지 않게 하려는 영조의 마음과,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며 억압 속에 살았지만, 자식만큼은 창공을 자유롭게 가로지르는 화살처럼 살게 하고픈 부정(父情)이 담겨 있다.
또한 그런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향한 정조의 의리와 애통이 녹아 있다.
한편 ‘사도’는 어떤 순간에도 왕이어야 했던 아버지 영조(송강호 분)와 단 한 순간이라도 아들이고 싶었던 세자 사도(유아인 분)의 역사에 기록된 가장 비극적인 가족사를 담아낸 작품이다. 현재 극장가에서 절찬리 상영 중이다.
/fnstar@fnnews.com fn스타 조정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