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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 처음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다 흔들렸다

입력 2015.09.21 07:03수정 2015.09.21 07:03
[fn★인터뷰-‘사도’②] 송강호, 처음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다 흔들렸다

생각할 사(思), 슬퍼할 도(悼). ‘너를 생각하며 슬퍼하노라.’

‘사도’는 조선의 21대왕 영조가 세자 사도에게 내린 시호(왕이나 사대부들이 죽은 뒤에 그들의 공덕을 칭송해 붙인 이름)다. 사도의 이야기는 이미 대중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만, 그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평가는 아직도 분분하다. 어떤 이는 시대가 낳은 광인(狂人)으로, 또 어떤 이는 붕당정치의 희생자라 평한다.

사도의 아버지 영조 또한 순탄치 않은 삶을 산 인물이다. 그는 조선왕조 500년 역사상 52년이라는 가장 긴 재위기간을 가진 성군으로 불리지만, 평생을 형 경종을 독살했다는 의혹과 천민 신분의 후궁 소생이라는 출신 때문에 정통성 논란에 시달렸다. 결국 그는 자신의 아들 사도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안타까운 선택을 하게 된다.

‘콤플렉스’. ‘사도’ 속 영조를 설명하기 가장 적합한 단어가 아닐까. 그는 자신의 아들인 사도만은 자신이 평생에 걸쳐 짊어져야 했던 콤플렉스를 느끼지 않도록 더욱 혹독하고 냉정하게 아들을 대한다.

[fn★인터뷰-‘사도’②] 송강호, 처음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다 흔들렸다

송강호는 이렇듯 한 나라의 왕이자,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영조의 모습을 담아내려 부던히 노력했다. 캐릭터가 가지는 태생적 콤플렉스는 이해했으나, 평소 자연인 송강호와 동일시하기에는 무척 어려웠다고 밝혔다.

“저도 아버지고 영조대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첫 장면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다 흔들렸죠. 군주로서 느낌이 워낙 강한 인물인데다 그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배경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인 송강호가 보기에는 너무하는 건 아닌가,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생각도 들었죠. 저라면 하루 정도 뒤주에 가둬두고 ‘정신 차려’ 하면서 밥을 줬을 것 같아요.”

가상의 인물보다 실존했던 인물을 연기하는 게 더욱 힘들 수 있다.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보편적인 인물인데다, 기록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기에 표현하기에 더욱 까다롭다. 송강호는 영조를 이해하려 노력했다.

“학창시절에 사도의 이야기를 표면적으로 듣고 어떤 인물인지 정도만 알고 있었죠. 이번에 ‘사도’를 준비하면서 공부를 하다 보니 영조대왕이 이해됐죠. 평생 연민이 생기는 외로운 군주라 생각돼요. 왕으로서 출신에 대한 콤플렉스와 자신을 인정하지 않은 백성들의 잦은 민란 등으로 울화가 있는 거죠. 내 아들만큼은 모든 이들에게 추앙받는 군주이길 원했던 게 아닐까요. 기뻐한 만큼 혹독한 교육을 시키고 옥죄지 않았을까 생각돼요. 3~4년 전만 해도 부모가 자식에게 거는 기대가 지금과 굉장히 다르잖아요. 공부해서 좋은 대학 나오길 바라죠. ‘사도’는 무려 250년 전의 일이에요. 영조대왕 역할을 해서가 아니라, 영조대왕에 대한 연민이 생겼었죠. 군주의 자리에 있지만, 얼마나 외로웠을까 싶었죠. 그런 지점에서 느낌이 남달랐죠.”

[fn★인터뷰-‘사도’②] 송강호, 처음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다 흔들렸다

때문에 송강호는 영조라는 캐릭터에 자신의 색깔을 입히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날것’을 전하려 했다. 작품 속 대사들은 그의 평소 모습이 비춰지는 듯 했으나, 송강호는 ‘애드리브’를 철저하게 거부했다.

“‘넌 존재 자체가 역모야’, ‘니가 국방에 대해 뭘 알아’ 등의 대사는 실제 사료에 기반을 뒀어요. 일부러 관객을 웃기기 위한 거는 절대 아니죠. 다만 송강호라는 친숙한 배우가 했기 때문에 친숙하게 느끼는 거죠. 실제 영조대왕이 집정하고 있을 때나 아들과 대화가 사료에 나와 있기 때문에 그대로 전달했었죠. 이 작품에서 제가 임의로 애드리브를 한 건 단 한 마디도 없어요.”

송강호가 영조 캐릭터에 가지는 애정은 남달랐다.
그 또한 흔히 다뤄졌던 사도 이야기로 작품을 접했지만, 영조대왕의 모습은 그간 봐왔던 왕들의 전형이 아니라 가장 인간적인 필치로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변호인’ 이후 이렇게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는 처음이었죠. 이준익 감독의 ‘사도’는 꾸밈없이 신선하게 다가왔어요. ‘사도’는 너무나 정직할 정도로 가는 게 있는데, 이렇게 영화를 만들어가고자 했던 진심이 전해진다면, 어떤 화려한 수식보다 강렬하겠다는 믿음이 있었죠. 저는 ‘사도’가 사랑이야기로 전해졌으면 좋겠어요. 군주와 세자, 아버지와 아들을 뛰어넘는 상위의 개념이죠. 결국 영조는 사도를 사랑했기 때문에 사랑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여러 종류의 사랑 중 부모자식간의 사랑이 처절하게 비극적으로 끝났던 실제 사건이잖아요. 250년 전이지만 관객들에게도 울림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fn★인터뷰-‘사도’②] 송강호, 처음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다 흔들렸다

끝으로 송강호는 ‘사도’를 접한, 혹은 접하게 될 관객들에게 당부 어린 인사를 남겼다.

“‘사도’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그 이야기 너무 많이 했잖아’ 였어요. 그런 소재주의적인 측면이 아니라 이 영화가 핵심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포인트를 맞추고 이준익 감독의 ‘사도’가 그 시대의 비극을 통해 사랑과 소통 등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이준익 감독이 그려낸 ‘사도’의 진심이 관객들에게 잘 전달 됐으면 해요.”

송강호에게 사극의 새로운 표현과, 알고는 있지만 늘 잊기 쉬웠던 진심과 진실을 새삼 깨우치게 했던 영화 ‘사도’는 현재 극장가에서 절찬리에 상영 중이다.

/fnstar@fnnews.com fn스타 조정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