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디 폰세, 마지막까지 더그아웃에 남아
"네일과 폰세, MLB 선발 오퍼 가능하지 않을까"
한화 이글스의 코디 폰세.한화 이글스 제공
[파이낸셜뉴스] LG 트윈스가 우승 세리머니를 준비하던 그때, 한화 이글스 더그아웃은 조용히 비워졌다. 그러나 한 사람은 끝내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코디 폰세였다.
8개월간 한화의 마운드를 지탱했던 오른팔은, 그라운드를 바라보며 한동안 꼼짝하지 않았다. 우승의 환호가 터져 나오는 순간, 그는 모자를 벗어 관중석을 향해 인사했고, 이내 라커룸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뒷모습에는 패장의 허무가 아닌, 완벽주의자의 마지막 예의가 묻어 있었다.
폰세는 2025년 KBO리그를 통째로 지배했다. 17승 1패, 평균자책점 1.89, 탈삼진 252개.
KBO 역대 단일 시즌 최다 탈삼진 기록을 갈아 치웠고, 승률 0.944는 거의 ‘무패’에 가까웠다. 외국인 선수 최초의 투수 4관왕(MVP·다승·평균자책점·탈삼진). 이 수치들만 봐도 폰세의 존재는 한화의 ‘리그 2위’라는 결과 이상이었다.
3차전 경기에서 6이닝을 마치고 더그아웃으로 향하는 폰세.연합뉴스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5차전, LG와의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다시 한 번 에이스의 품격을 보여줬다. 한화의 유일한 KS 승리, 그 뒤에는 언제나 폰세의 이름이 있었다. 하지만 5차전 패배와 함께 시즌이 끝났고, 그에게 돌아올 마운드는 더 이상 없었다.
경기가 끝난 뒤 폰세는 대전 한화생명볼파크 마운드의 흙을 주머니에 담았다. 그 장면은 2013년, ‘마지막 리베라’가 양키스타디움의 흙을 챙기던 순간을 떠올리게 했다.선수들이 그라운드의 흙을 가져간다는 건 곧 작별의 의미다. 그의 마음속엔 이미 ‘이별의 낌새’가 있었을지 모른다.
한 MLB 구단 에이전트는 “폰세의 성적이라면 MLB 선발 오퍼는 충분하다고 본다. 다른 선수도 구원 투수로서는 충분히 오퍼를 받을 수 있는 선수가 있지만, 제임스 네일과 폰세가 현재 KBO 투수 중 가장 메이저리그 선발 오퍼에 근접해 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MLB에서 선발 투수로 오퍼가 온다면 한화가 돈싸움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시즌 내내 MLB 스카우트들이 대전을 찾았고, 그의 피칭 데이터는 이미 메이저 구단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돼 있다. 그리고 최근 MLB로 리턴한 선수 중 대박은 아니라도 쏠쏠한 성공사례는 계속 나오고 있다.
뜨거운 포옹을 하고 있는 폰세와 와이스.연합뉴스
그가 떠난다면, 한화의 7년 만의 가을야구 복귀를 이끈 ‘에이스 시스템’도 원점에서 다시 세워야 한다. 그가 남긴 건 승수나 ERA 같은 숫자뿐만이 아니다. 그는 무너졌던 한화 마운드의 신뢰를 되살렸고, 팬들에게 “이제 우리도 해낼 수 있다”는 감정을 되돌려줬다. 시즌 초중반 ‘폰세-와이스’ 원투펀치는 리그 최고 수준이었고, 한화가 LG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근거였다.
그가 퍼간 흙 한 줌은,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라 한화 팬들의 2025년을 상징하는 유산이다. 설령, 리그 최고의 투수가 더 큰 무대로 간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야구의 본능이자, 한화의 성공이 그만큼 진짜였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10월 31일 대전의 야구장은 우승의 함성만큼이나 한 남자의 뒷모습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