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1군에서 두각 나타냈던 우완 유망주
아시아선수권 일본전 6.2이닝 무실점 '승' 강한 인상
투구폼 부드럽고, 체인지업 구종가치 높아
최고 148km까지... 구원 등판 시 상당한 성적
미래와 현재 동시에 잡은 최고의 선택
두산에서 KIA로 이적하게 된 홍민규.두산베어스 제공
[파이낸셜뉴스] KIA 타이거즈가 FA로 이적한 박찬호의 보상선수로 두산 베어스의 우완 루키 홍민규(19)를 지명했다.
일각에서는 1군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이나 즉시 전력감 야수가 아닌, 갓 데뷔한 신인을 지명한 것에 대해 '파격'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하지만 KIA의 팀 사정과 홍민규가 보여준 퍼포먼스를 면밀히 들여다보면, 이는 파격이 아닌 지극히 '당연하고 실리적인 선택'임을 알 수 있다.
두산의 두터운 뎁스를 고려할 때, KIA의 선택지는 복잡했다. 김대한, 김민석 같은 특급 외야 유망주들이 풀렸다면 고민이 되었을 테고, 박찬호의 공백을 메울 내야 자원을 고려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호선수 20인 명단에서 주전급 선발 투수나 확실한 주전 유격수 자원이 제외될 리 만무했다. 외야수는 일단 스프링캠프에서 신인 김민규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고, 위즈덤을 대체할 외국인 선수도 외야쪽으로 일단 가닥을 잡고 있다. 중견수는 김호령, 우익수는 나성범이 일단 있다.
결국 KIA의 시선은 '팀에 가장 필요한 구원 투수' 중에서도 '미래 가치가 확실한 자원'으로 향했다. 1군 전력에 보탬이 되면서도 향후 수년간 마운드를 지킬 수 있는 젊은 투수, 그 교집합에 홍민규가 있었다. 일단 KIA는 무조건 중간 투수자원을 만들어내야한다. 시즌 중 최원준과 이우성을 내주고 김시훈과 한재승을 영입할 정도로 구원 투수로 목말라 있는 팀이 KIA 이기 때문이다.
올 시즌 두산의 신인 투수 중 최민석과 더불어 1군 무대에서 가장 확실한 성과를 낸 홍민규를 지나칠 수 없었던 이유다. 긁어보지 않은 복권이 아니라, 이미 당첨 가능성이 확인된 복권인 셈이다.
두산베어스 제공
홍민규는 입단 첫해부터 프로 무대와 국제 무대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지난 4월 키움전에서 데뷔 첫 세이브를 기록할 당시 3이닝을 책임지며 보여준 위기관리 능력, 그리고 5월 롯데전에서의 데뷔 첫 승은 우연이 아니었다.프로 1군 무대에서 20경기 33.1이닝 2승 1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4.59면 결코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특히 4월 한 달 동안은 12.2이닝 2.13의 평균자책점으로 팀에 큰 도움이 됐다. 선발등판 기록을 빼면 구원 투수로서는 상당한 수준의 투구를 선보였다. 비록 KIA와의 선발 데뷔전에서 3.2이닝 6피안타 4실점을 하며 패전 투수가 됐지만, 그 기록들을 제외하면 더욱 그렇다.
특히 최근 열린 제31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슈퍼라운드 한일전 투구는 KIA 스카우트 팀의 확신을 굳히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홍민규는 일본을 상대로 6.2이닝 무실점이라는 완벽한 투구를 선보였다. '숙적' 일본을 상대로, 그것도 1점 차 살얼음판 승부에서 흔들리지 않는 제구력과 배짱을 보여줬다는 점은 그가 '빅 게임 피처'로서의 자질을 갖췄음을 방증한다.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일본을 이긴 것은 무려 10년만이다. 그만큼 당시 홍민규의 피칭은 주목도가 컸다.
두산베어스 제공
이번 지명은 KIA 구단의 장기적인 운영 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KIA는 지난해 조상우 트레이드를 단행하며 1라운드와 4라운드 지명권을 내줬다. 우승을 위한 승부수였지만, 팜 시스템 측면에서는 상위 라운드 유망주 수급에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홍민규의 영입은 그 공백을 메우는 카드이기도 하다. 홍민규는 프로 입단 후 구속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아직 평균 구속은 더 올라와야 하지만 최고 구속은 148km 수준까지 올라왔다. 제구력 또한 신인 치고 꽤 안정적이다. 투구폼이 예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투구폼이 거친 선수는 고치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투구폼이 예쁘면 힘만 붙으면 증속은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이미 많은 사례가 KIA에는 있다. 성영탁도 그렇고, 신인 김태형도 1년도 안되서 5km 이상의 증속에 성공했다.
KIA 구단은 "올 시즌 데뷔한 신인선수이지만 지금까지 등판한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고, 우수한 제구력을 보유하고 있어 장기적으로는 선발 자원으로도 기대하고 있다. 특히 속구의 수직 무브먼트 수치가 리그 평균 이상이며, 체인지업의 완성도도 높아 향후 투수진에 큰 보탬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지명 이유를 밝혔다.
박찬호라는 주전 유격수의 이탈은 뼈아프다.
하지만 KIA는 감상에 젖는 대신 냉철한 계산을 택했다. KIA가 필요로 했던 것은 구원진 안정화를 지금 당장 도와줄 수 있으면서도 3~4년 뒤에는 팀의 필승조 한 축으로 성장할 수 있는 투수였다.
그런 의미에서 KIA는 보상선수 시장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상의 조각 중 하나를 선택한 셈이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