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단 12명 방출하며 강도 높은 구조조정
디아즈, 후라도 잡으며 팀 전력의 30% 완성
박세혁, 장승현 보강하며 안방도 확보강
2차드래프트에서 2년전 KIA 필승조 임기영 영입
통합 4연패 우승 DNA 최형우에게까지 오퍼
조용하지만 알찬 삼성의 스토브리그
원태인, 구자욱 FA전 원기옥 발사할까
이종열(왼쪽) 삼성 라이온즈 단장이 7일 오후 인천 연수구 오라카이 송도파크 호텔에서 열린 '끝판대장' 투수 오승환 은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뉴시스
[파이낸셜뉴스] 달구벌 대구에도 겨울이 왔다. 하지만 그 차가운 공기 속에 감도는 삼성 라이온즈의 기세는 어느 때보다 뜨겁다. 겉보기엔 머니게임에서 한발짝 떨어져서 조용히 관망하는 것 같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알차다.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삼성의 행보는 치밀하고, 논리적이며, 무엇보다 명확한 목적 의식이 느껴진다. 조용하지만 무서운 겨울, 삼성의 시계는 이미 '우승'을 가리키고 있다.
스토브리그의 첫 단추는 '집토끼' 단속이었다. 삼성은 외국인 선수 후라도와 디아즈를 모두 붙잡는 데 성공했다. 이는 단순한 재계약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투타 전력의 30% 정도는 차지하는 검증된 자원을 안고 간다는 것은 계산이 서는 야구를 하겠다는 뜻이다. 데이터는 이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후라도는 2025시즌 197⅓이닝을 소화하며 이닝 이팅 능력과 퀄리티 스타트(23회) 부문 1위를 기록했다. 마운드의 상수다. 디아즈는 더 놀랍다. 타율 0.314에 50홈런, 158타점이라는 엄청난 성적을 냈다. KBO 역대 최다 타점 신기록 보유자를 내보낼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삼성은 이들에게 합리적인 인상폭을 제시하며 전력 누수를 '0'으로 만들었다.
디아즈는 연봉이 무려 2배로 뛰었지만, 최근 FA 폭등세를 감안하면 그리 비싼 것도 아니다. 오히려 가성비가 좋다. 국내 어디에서도 이만한 타자는 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삼성 디아즈가 24일 서울 송파구 롯데호텔 월드에서 열린 '2025 KBO 리그 시상식'에서 1루수부문 수비상을 수상하고 있다.뉴시스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포수진 보강이다. 주전 포수 강민호의 뒤를 받칠 백업 자원, 혹은 미래를 대비한 뎁스 강화는 삼성의 오랜 숙제였다. 삼성은 이 문제를 이번 겨울에 완벽히 해결하려는 듯하다.
2차 드래프트에서 장승현을 영입한 데 이어, 트레이드를 통해 NC로부터 박세혁을 데려왔다. 박세혁은 두산 시절 '우승 포수' 타이틀을 거머쥐었던 베테랑이다. 비록 올 시즌이 많이 부진했지만, 그랬기때문에 얻을 수 있었다. 요즘은 주전으로 뛰는 포수는 금값이라 최소 50억부터 시작이다. 그마저도 쉽게 얻을 수 없다. 우투좌타라는 희소성도 있고, 무엇보다 풍부한 경험까지 갖췄다. 강민호라는 주전 포수가 있지만, 그가 휴식할 때나 만약의 부상 변수에도 팀이 흔들리지 않도록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를 마련한 셈이다. 이는 장기 레이스를 버티는 힘이자, 단기전 승부처에서 벤치가 꺼낼 수 있는 강력한 카드가 된다.
구원 투수진에서도 임기영을 2차드래프트에서 보강했다. 임기영은 ABS가 생긴 이후 아쉽지만, 2년전만해도 KIA 부동의 필승조로 활약했던 선수다. 선발, 롱릴리프, 필승조 등 다양한 역할이 가능하다. 거기에 임기영은 경북고 출신으로 고향 출신이기도 하다. 삼성의 중간에 힘이 되줄 수 있는 선수임은 분명하다.
포수 박세혁이 NC 다이노스를 떠나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다. 뉴스1
여기서 끝이 아니다. 삼성의 시선은 더 높은 곳을 향해 있다. 삼성은 '왕조의 심장'이었던 최형우에게 구체적인 오퍼를 넣었다. 그것도 삼성이 최형우를 주목한 것은 FA 시장과 동시였다는 이야기가 많다. 최형우를 영입하기 위해서는 KIA에서 제시하는 금액에 최소 15억원 이상을 더 얹어야 한다. 150%의 보상금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은 이를 감수하려고 하고 있다. 그만큼 최형우가 보여주는 에너지가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통합 4연패의 주역이자 리그 최고의 클러치 히터인 최형우의 영입 시도는 상징적이다. 아직도 삼성 팬들 중에서는 2014년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마무리 손승락을 상대로한 끝내기 2루타를 기억하는 팬들이 많다. 최형우가 있을때 삼성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6년 연속 KS를 갔고, 전인미답의 통합 4연패를 달성했다.
단순히 타선에 무게감을 더하는 것을 넘어, 우승을 해본 선수의 '위닝 멘탈리티'를 선수단 전체에 이식하겠다는 의도다.
젊은 선수들이 주축이 된 현재의 삼성 라인업에 가장 찬란했던 역사를 대변하는 베테랑의 가세는 우승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될 수 있다. 최형우의 영입 시도는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삼성의 목표가 어떤 부분에 맞닿아있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5 신한 SOL뱅크 KBO 리그' KIA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경기, 5대 0으로 앞선 9회초 마운드에 오른 삼성 마무리 투수 오승환이 KIA 대타 최형우를 삼진으로 처리한 뒤 포옹하고 있다.뉴스1
삼성은 김대우, 이상민 등 무려 12명의 대규모 방출을 단행했다. 1차지명 출신 최충연도 2차드래프트를 통해 내보냈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으로 샐러리캡과 로스터의 유동성을 확보했고, 그 빈자리를 우승에 직결될 수 있는 자원들로 채우고 있다.
왜 지금인가? 답은 명확하다. 팀의 핵심인 원태인과 구자욱의 FA 시계가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시즌이 끝나면 이들을 잡기 위해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되어야 한다. 샐러리캡의 압박이 거세지기 전. 그리고 이재현, 김영웅, 김지찬 등 젊은 선수들의 기량 상승이 절정에 오르며 전력이 안정화되고 박진만 감독의 재계약으로 힘이 실린 내년 시즌이야말로 한번 쯤 모든 것을 쏟아부어 도전해볼만한 적기임은 분명하다.
삼성의 이번 겨울은 돈을 물 쓰듯 쓰는 '광폭 행보'가 아니다.
꼭 필요한 곳에, 가장 효율적인 카드를 꽂아 넣는 '핀셋 보강'에 가깝다. 하지만 그 결과 만들어진 전력의 밀도는 어느 해보다 높다.
사자는 사냥을 앞두고 숨을 죽인다. 삼성 라이온즈는 지금, 가장 높은 곳을 향해 도약할 준비를 확실히 하고 있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