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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이닝 ERA 4.91 투수인데 2라운드?" 한화는 왜 강건우에게 2R 도박을 걸었나

입력 2025.12.29 10:00수정 2025.12.29 10:22
한화, 강건우 2R 전격 지명... 2025년 좌완 최대어 등극
명문고야구열전 결승전에서부터 강건우 집중 관찰
2025 명문고야구열전 최고의 수혜자
신체조건, 투구폼, 위닝샷 등 고려한 결정
최근 3년 2R에서 조동욱, 권민규, 강건우까지 좌완 수집
이제는 하위순번 지명... 좋은 좌완은 뽑기 힘들어
"21이닝 ERA 4.91 투수인데 2라운드?" 한화는 왜 강건우에게 2R 도박을 걸었나 [아마야구 오리진]
명문고야구열전 첫 날 광주일고전에서 역투하고 있는 북일고 강건우. 사진=서동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지난 3월 1일 부산 사직야구장. ‘명문고야구열전’ 결승전이 열리던 그날은 봄을 시샘하는 비가 오락가락하며 그라운드를 적셨다. 북일고와 경남고의 맞대결. 관중석 한편에는 낯익은 얼굴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바로 정민혁 팀장을 위시한 한화 이글스 스카우트 관계자들이었다.

사실 결승전에 올라올 정도의 팀들이라면 이미 전력 파악은 끝난 상태다. 게다가 당시 서울에서는 서울시춘계대회가 한창이었다. 그런데도 한화 관계자들은 굳이 사직을 찾았다. 물론 연고팀 북일고를 응원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매서웠고, 시선은 마운드 위 한 선수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북일고 선발 투수 강건우(3학년)였다.

"21이닝 ERA 4.91 투수인데 2라운드?" 한화는 왜 강건우에게 2R 도박을 걸었나 [아마야구 오리진]
사진=서동일 기자

이날 강건우는 그야말로 ‘인생투’를 펼쳤다. 경남고 타선을 상대로 5.2이닝 동안 탈삼진 8개를 솎아내며 2실점(비자책) 역투를 펼쳤다. 팀의 우승을 이끈 완벽한 승리투수. 1승의 가치보다 더 빛난 것은 그의 투구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날의 우승은 북일고의 ‘마지막 영광’이 되었다. 시즌 중반 박준현의 학폭 관련 이슈가 터지며 학교는 발칵 뒤집혔고, 핵심 전력들이 하나둘씩 전학을 가는 등 내홍을 겪었다. 팀이 어수선하다 보니 성적이 좋을 리 만무했다.

강건우의 성적도 덩달아 곤두박질쳤다. 올 시즌 기록은 21.2이닝 28피안타 16탈삼진 평균자책점 4.91. 성적표만 놓고 보면 미지명을 걱정해야 할 수준이었다. 일반 팬들이 "성적이 좋지 않은데 왜 2라운드(전체 13번)라는 높은 순번에 지명했나"라는 의구심을 가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프로 스카우트의 세계에서 고교 시절 당장의 성적은 참고 자료일 뿐이다. 개중에는 아예 성적표를 보지 않는 스카우트도 있다. 그들이 보는 것은 오직 ‘가능성’이다. 구속, 운동 능력, 피지컬, 투구 폼(좋은 습관), 그리고 프로에서 통할 수 있는 '위닝 샷(확실한 변화구)'이다.

그런 의미에서 강건우는 '긁지 않은 복권' 그 자체다. 우선 피지컬이 압도적이다. 191cm의 큰 신장과 탄탄한 몸은 투수로서 롱런할 수 있는 최적의 하드웨어다. 여기에 투구 폼이 부드럽다. 부상 위험이 적고 구속을 끌어올리기 좋은 메커니즘을 갖췄다.

"21이닝 ERA 4.91 투수인데 2라운드?" 한화는 왜 강건우에게 2R 도박을 걸었나 [아마야구 오리진]
2025년 명문고야구열전 MVP 북일고 강건우가 사직 야구장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박범준 기자

결정타는 '슬라이더'였다. 강건우의 슬라이더는 과거 안산공고 시절 김광현을 연상시킨다. 타자 앞에서 예리하게 꺾여 들어가는 그 각도 하나만으로도 한화는 확신을 가질 만했다. 확실한 위닝샷이 있다는 것은 프로에서의 적응 기간을 대폭 줄여준다.

물론 그는 완성형 투수는 아니다. 아직 몸에 힘이 부족해 평균 구속이 압도적이지는 않다. 140km 초반에서 왔다갔다 한다.

하지만 한화이글스배 고교·대학 올스타전에서는 한화 전광판에 최고 구속 145km/h를 찍었다. "몸만 만들어주면 150km/h는 던진다"는 현장의 평가가 허언이 아님을 일정 부분 증명한 것이다.

사실, 강건우를 노린 것은 한화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몇몇 구단도 '좌완 최대어' 중 한 명으로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한화가 2라운드에서 과감하게 그를 낚아챈 것은, 지금 망설이면 뺏긴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21이닝 ERA 4.91 투수인데 2라운드?" 한화는 왜 강건우에게 2R 도박을 걸었나 [아마야구 오리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린 2025 KBO 한국시리즈 5차전 LG 트윈스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 6회초 한화 구원 투수 조동욱이 공을 던지고 있다.뉴시스

"21이닝 ERA 4.91 투수인데 2라운드?" 한화는 왜 강건우에게 2R 도박을 걸었나 [아마야구 오리진]
한화 신인 투수 권민규.한화이글스 제공

"21이닝 ERA 4.91 투수인데 2라운드?" 한화는 왜 강건우에게 2R 도박을 걸었나 [아마야구 오리진]
야구-북일고 강건우. 사진=서동일 기자

최근 몇 년간 한화의 행보를 보면 일관성이 있다. 특히 2라운드 전략이 그렇다. 재작년 조동욱, 작년 권민규를 지명해 착실히 육성하고 있다. 두 명 모두 장신 좌완 투수다. 올해 선발한 강건우 역시 이들과 결이 비슷하다. 신체조건이 좋고, 제구력이 좋지만 아직 구속은 더 올라와야하는... 가능성이 큰 유형의 투수들이다. 당연히 이들이 당장 1군에서 활약하길 바라는 것이 아니다.

확실한 하드웨어와 결정구를 가진 좌완 유망주를 모아 향후 '이글스의 좌완 왕국'을 건설하겠다는 포석이다.
무엇보다 이제 한화는 순번이 9번째로 떨어지기 때문에 좋은 좌완 투수를 뽑기는 매우 힘들어졌다. 이를 감안한 행보다.

성적표에 가려진 진가, 빗속에서도 빛났던 그 가능성을 믿은 한화 이글스의 과감한 베팅.

과연 강건우는 한화의 육성 시스템 속에서 비상할 수 있을까. 조동욱-권민규-강건우로 이어지는 장신 좌완 투수 트로이카의 하모니가 벌써 부터 흥미로워지는 이유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