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6의 전설이 '사직의 두뇌'로… 다카쓰, 선수가 아닌 시스템을 가르친다
지바롯데 의존증 탈피… '우승 야쿠르트·철벽 한신·체계 요미우리' 엑기스만 뽑았다
ERA 1위의 비결과 부상 방지 매뉴얼… '던지는 기술'보다 '버티는 몸' 먼저 만든다
100억 FA 대신 '10년의 미래' 샀다… 사과나무 심는 롯데의 '육성 올인' 선언
제목 롯데 코디네이터로 일하게 된 다카쓰 신고(왼쪽) 전 야쿠르트 감독.롯데 자이언츠 제공
[파이낸셜뉴스] "한국 타자들의 힘은 일본에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마운드에만 올라서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격차, 도대체 어디서 오는가?"
국제 대회가 끝날 때마다 우리가 뼈저리게 던지는 질문이다. 끊임없이 150km/h를 던지는 투수들이 솟아나는 '투수 왕국' 일본, 그 거대한 시스템의 비밀을 캐내기 위해 거인 군단이 칼을 빼 들었다. 그것도 아주 작정하고 말이다.
롯데 자이언츠가 이번 스토브리그에서 보여주는 행보는 단순히 코치 몇 명을 데려오는 수준이 아니다. '일본 야구의 심장 이식 수술'에 가깝다.
3일 롯데가 발표한 다카쓰 신고 전 야쿠르트 감독의 스페셜 어드바이저 영입은 그야말로 화룡점정이다.
많은 올드팬들은 2008년, 불혹의 나이에 우리 히어로즈 유니폼을 입고 KBO리그에 등장했던 그 '싱커의 마법사'를 기억한다. 전성기가 한참 지난 나이였음에도 18경기에 등판해 평균자책점 0.86이라는 경이적인 숫자를 찍었던 그가, 이제는 지도자로서 '만렙'을 찍고 부산으로 온다. 다카쓰는 일본 통산 286세이브를 기록한 명예의 전당 헌액자이자, 2021년 야쿠르트를 일본시리즈 정상에 올려놓은 명장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그의 역할이다. 그는 단순히 선수들에게 공 던지는 법을 가르치는 코치가 아니라 구단의 '스페셜 어드바이저'로 선임되었다. 박준혁 단장의 말처럼 그는 '선수의 코치'가 아닌 '구단 직원의 코치'가 될 전망이다. 이는 곧 현장의 기술 전수를 넘어, 프런트의 시각과 육성 매뉴얼 자체를 뜯어고치겠다는 롯데의 강력한 의지를 방증한다.
롯데, 가네무라 사토루 롯데 투수 총괄 코디네이터 영입.롯데자이언츠 제공
더 흥미로운 것은 롯데가 수집한 '재능의 다양성'이다. 그동안 롯데는 형제 구단인 '지바 롯데'의 색채를 많이 받아들였으나 이번엔 다르다. 롯데는 야쿠르트의 우승 DNA를 가진 다카쓰 신고, 한신의 철벽 마운드를 조련한 가네무라 사토루, 그리고 요미우리의 체계적 시스템을 설계한 히사무라 히로시까지 일본 센트럴리그를 호령하는 명문 구단들의 핵심 노하우를 부산에 모았다.
투수 총괄 코디네이터로 영입된 가네무라 사토루 코치는 지난해 한신 타이거스의 팀 평균자책점을 12개 구단 전체 1위로 만든 장본인이다. 소위 '투수 놀음'의 정점에 있는 인물에게 롯데의 유망주들을 맡긴 셈이다.
여기에 요미우리에서 육성 시스템을 설계했던 히사무라 히로시 스트렝스 코치의 영입은 롯데가 얼마나 기본기와 부상 방지에 집착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기술을 입히기 전, 기술을 담을 수 있는 몸부터 제대로 만들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히사무라 히사시 롯데 스트렝스 코치.롯데자이언츠 제공
롯데의 이번 겨울은 유독 조용했다. 100억 원을 호가하는 FA 광풍 속에서 한발 물러나 있어 팬들은 불안해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면 아래서 롯데는 그 어떤 팀보다 바쁘게 움직였다. 당장의 1승을 위한 외부 수혈 대신, 매년 10승 투수를 배출해낼 수 있는 시스템 구축에 올인한 것이다.
다카쓰 어드바이저는 롯데의 육성 매뉴얼을 감수하고, 외국인 선수 스카우트 네트워크까지 공유하게 된다. 1군과 2군, 재활군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돌아가는 일본 특유의 팜 시스템이 사직구장에 이식되는 과정이다.
"프런트가 전문성을 가지고, 현장이 배워야 팀이 강해진다"는 롯데 구단의 선언은 비장하기까지 하다.
한국, 미국, 일본, 대만 4개국 야구를 모두 경험한 다카쓰의 눈과 일본 최강의 방패를 조련한 가네무라의 손, 그리고 요미우리의 시스템을 입힌 히사무라의 머리가 합쳐진 이 '삼위일체'가 만들어낼 시너지는 당장 내년 봄에는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롯데는 지금 사직구장 앞마당에 거대한 사과나무를 심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거인은 지금 겉멋이 아닌 '진짜 근육'을 키우는 중이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