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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실수보다 더 잔인했던 '3등의 죄'... 쇼트트랙, 공정성을 잃다

입력 2026.02.11 11:00수정 2026.02.11 11:09
"그때 3등이었잖아?"... 피해자를 두 번 죽인 '결과론적 폭력'
"감히 결과를 예단하나"... 세계 2위의 '역전 본능' 삭제한 심판의 오만
미국의 실수보다 더 잔인했던 '3등의 죄'... 쇼트트랙, 공정성을 잃다 [2026 밀라노]
쇼트트랙 대표팀 김길리가 10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아이스 스케이팅 아레나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혼성 2000m 계주 준결승에서 미국 선수와 충돌하고 있다.뉴스1

[파이낸셜뉴스] 쇼트트랙은 흔히 '변수의 스포츠'라 불린다. 0.01초 차이로 승부가 갈리고, 마지막 한 바퀴에서 꼴찌가 1등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그 의외성에 열광한다. 하지만 10일 밀라노에서 목격한 장면은 변수가 아니라 '모순'이었다.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이 혼성 계주 준결승에서 탈락했다. 결과는 탈락이지만, 그 과정은 납득하기 어렵다. 명백히 말해두건대, 이 칼럼은 넘어진 미국 선수 코린 스토다드를 비난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는 캐나다를 제치고 선두로 치고 나가기 위해 코너에서 승부를 걸었고, 그 과정에서 중심을 잃고 미끄러졌을 뿐이다. 아쉬운 실수지만, 고의성은 없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스토다드의 실수는 엉뚱하게도 뒤따르던 한국의 김길리를 덮쳤다. 피하려고 노력했지만, 피할 공간조차 없었던 불가항력적인 사고였다. 그런데 심판진은 피해자인 한국에게 구제(어드밴스)를 부여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 "사고 당시 한국이 3위로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명백히 낡고 게으른 규정이다. 심판진의 논리대로라면, 쇼트트랙은 사고가 난 그 시점의 순위가 최종 순위와 직결된다는 전제가 깔려야 한다. 하지만 쇼트트랙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가정인지 알 것이다.

당시 레이스는 중반을 갓 넘긴 시점이었다. 한국과 선두 그룹의 격차는 크지 않았다. 게다가 한국은 세계랭킹 2위의 강호다. 김길리와 최민정이라는, 세계 최고의 '피니셔'를 보유한 팀이다. 남은 바퀴 수와 한국의 저력을 고려했을 때, 3위에서 1위로 치고 올라갈 가능성은 차고 넘쳤다.

그런데 심판진은 무슨 권한으로 한국의 '역전 가능성'을 0%로 단정 지었는가. 그들은 미래를 보는 예언가인가? "당시 3위였으니, 너희는 방해가 없었어도 3위로 끝났을 것이다."
이 판정은 한국 팀의 잠재력과 노력, 그리고 쇼트트랙이라는 종목의 역동성을 깡그리 무시한 '결과론적 폭력'이다.

미국의 실수보다 더 잔인했던 '3등의 죄'... 쇼트트랙, 공정성을 잃다 [2026 밀라노]
쇼트트랙 대표팀 김길리가 10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아이스 스케이팅 아레나에서 열린 혼성 2,000m 계주 준결승 경기를 마치고 아쉬워 하고 있다. 뉴스1

규정은 공정함을 담보하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현재의 어드밴스 규정은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고 있다.

1, 2위가 아니면 억울하게 넘어져도 구제받을 자격이 없다는 이 '3등의 죄'는 도대체 누가 만든 잣대인가.

만약 한국이 선두와 한 바퀴 이상 뒤처진 상황이었다면 판정을 수긍했을 것이다. 혹은 한국이 넘어진 행위에 개입한 당사자라면 그 또한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외부 요인에 의한 사고였다. 이때는 당시 순위가 아니라 '레이스의 맥락'과 '잔여 거리'를 고려해 피해 팀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옳다. 그것이 올림픽 정신이고 페어플레이 아니겠는가.

미국 선수의 실수는 경기의 일부다.
하지만 피해를 본 팀을 탈락시키는 규정은 시스템의 오류다. 이번 밀라노에서의 비극을 계기로 ISU는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억울한 피해자에게 "너는 그때 3등이었잖아"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당신들이 말하는 공정함인지. 이 낡은 규정이 바뀌지 않는 한, 쇼트트랙은 언제든 실력이 아닌 '운'과 '심판의 자의적 판단'이 지배하는 종목으로 남을 것이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