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의 안목’이 증명한 원석… 6위 팀 깨운 몽골 소녀의 스파이크 17경기 104점의 기록보다 빛난 ‘도전’… 코트 위 성장 드라마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자랑스럽다” 부모님 앞에서 흘린 눈물 아쉬운 작별, 그러나 끝이 아닌 시작… 다시 뛸 목포과학대 복귀
득점 후 하이파이브 하는 정관장의 인쿠시.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누구에게나 처음은 서툴고 두렵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설렘으로 바꾸고, 낯선 타국 땅에서 '기적'을 써 내려간 한 소녀가 있다. 몽골에서 온 스물한 살의 아웃사이드 히터, 인쿠시(자미안푸렙 엥흐서열)의 이야기다.
정관장의 '깜짝 카드'로 V리그에 등장해 코트를 뜨겁게 달궜던 인쿠시가 아쉬움과 감사함이 교차하는 시즌 마침표를 찍었다. 비록 팀의 숙소에서 짐을 빼 모교인 목포과학대로 돌아가는 뒷모습엔 쓸쓸함이 묻어났지만, 그가 남긴 17경기 104득점의 기록은 숫자 그 이상의 울림을 남겼다.
인쿠시의 V리그 입성기는 그 자체로 한 편의 영화였다. MBC 예능 '신인 감독 김연경'에서 '필승 원더독스'의 주전으로 활약하며 김연경의 눈도장을 찍은 것이 시작이었다. 위파위의 부상 공백을 메우기 위해 정관장이 내민 손을 잡았을 때, 일각에선 '대학 선수가 프로의 벽을 넘을 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을 보냈다.
하지만 인쿠시는 실력으로 답했다. 데뷔전이었던 지난해 12월 GS칼텍스전에서 11점을 몰아치며 화려하게 등장하더니, 1월에는 흥국생명(16점), IBK기업은행(18점) 등 강팀들을 상대로 '성장 드라마'를 써 내려갔다. 탄력 넘치는 공격과 주눅 들지 않는 플레이에 팬들은 열광했고, 배구장에는 그를 연호하는 목소리가 가득 찼다.
리시브를 하며 몸 푸는 인쿠시.뉴스1
물론 모든 순간이 달콤했던 것은 아니다. 시즌 중반 리시브 등 수비에서 약점을 드러내며 출전 시간이 줄었고, 설상가상으로 발 부상까지 겹치며 고개를 숙여야 했다. 32.6%의 공격 성공률. 냉정하게 말해 다음 시즌 '자유계약'으로 전환되는 아시아 쿼터 시장에서 살아남기엔 부족한 성적표일지 모른다.
그러나 인쿠시를 단순히 기록으로만 평가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소속팀이 최하위에 머무는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도 그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몽골리안 데이'에 경기장을 찾은 부모님 앞에서 흘린 눈물은 인쿠시가 이 리그를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럽다"는 부모님의 한마디에 가슴이 뭉클했다는 인쿠시. 그에게 V리그는 단순한 직장이 아닌, 인생 최고의 '도전' 그 자체였다.
정관장 인쿠시가 19일 오후 대전충무체육관에서 열린 2025-2026 프로배구 V리그 여자부 정관장과 GS칼텍스의 경기에서 득점 후 환호하고 있다.뉴스1
인쿠시는 이제 다시 학생 신분으로 돌아간다. 목포과학대에서 수업과 운동을 병행하며 다음 기약을 준비할 예정이다. 22일 서면 인터뷰를 통해 "많은 응원을 받게 될 줄 몰랐다. 경험 하나하나가 소중했다"며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한 인쿠시.
비록 지금은 잠시 코트를 떠나지만, 팬들은 기억한다.
몽골에서 온 수줍은 소녀가 강력한 스파이크를 때린 뒤 동료들과 하이파이브하며 환하게 웃던 그 모습을. 실패가 아닌 '성장의 과정'을 겪은 인쿠시가 더 단단해진 모습으로 다시 V리그의 문을 두드릴 날을 기대해 본다.
"인쿠시, 당신의 도전은 충분히 아름다웠습니다. 당신은 이미 누군가에게는 최고의 '흥행 요정'이자 '희망'이었습니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