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봉준호 ‘옥자’는 왜 평점이 낮을까

2017.05.21 13:37



제70회 칸국제영화제가 열리는 프랑스 칸 현지에는 매일 두 가지 잡지가 발간된다. 칸영화제 공식 데일리 매거진인 미국의 스크린인터내셔널, 그리고 프랑스의 르 필름 프랑세즈이다. 20일(이하 현지시간) 나온 두 잡지를 살펴보면, 총 19편의 경쟁진출작 가운데 지난 17일 개막 후 19일까지 공식상영된 4편의 영화에 대한 평점이 게재됐다.

◇ ‘옥자’, 별 4개 만점에 2.0 혹은 2.3




그 가운데 봉준호 감독의 ‘옥자’는 별 4개 만점을 기준으로 전 세계 11개 매체의 평점을 집계한 스크린인터내셔널에서 2.3점, 15개 매체의 기자와 평론가 평점을 평균해 공개하는 르 필름 프랑세즈로부터 2.0점을 받았다. 기 공개된 4개뿐인 작품 가운데 몇 위인가는 크게 의미 있다고 할 수 없겠지만 4점 만점에 2점 혹은 2.3점을 받았다는 것, 최고의 4개 만점을 준 매체도 한 군데 있지만 최하의 1점을 준 매체도 두 군데라는 것은 ‘옥자’에 대해 다함께 엄지를 세우고 있는 상황은 아니라는 사실과 반응이 엇갈리고 있는 현지 분위기를 읽어내기에는 충분하다.

봉준호 감독의 ‘옥자’는 왜 평점이 낮을까.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밝혀두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글은 위에 언급한 평점들처럼 객관적 데이터가 아니라 ‘옥자’를 본 기자 개인의 머릿속 혼란과 심정적 지지를 바탕으로 써지는, 어쩌면 너무나 사랑스러운 슈퍼돼지 옥자를 위한 주관적 해명이다.

개인적 글쓰기를 기사라는 형식을 빌어 전하는 것은 ‘옥자’에 대한 결코 높지 않은 평점의 배경에 관한 일고(一考), 한국 감독 봉준호가 500억원이라는 세계 자본의 힘 속에서 의지를 가지고 완성한 ‘옥자’라는 영화를 기자가 그러했듯 그 생경함에 얼른 집어삼키지 못 하고 ‘뜨거운 감자’마냥 삼키지도 뱉지도 못 할지 모르는 어떤 관객에게 일말의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한 번의 대소(大笑), 한 번의 눈물

한국 감독이 연출하고 한국 배우가 출연하지만 넷플릭스라는 세계 최대의 콘텐츠 온라인스트리밍 업체가 자본을 대고 배급을 하는 영화이기에 레드카펫이 수반되는 공식상영회의 티켓이 칸을 찾은 한국 기자들 전원에게 특별히 주어지지는 않았다. 일부 한국 기자가 타국의 기자들과 함께 공식상영을 취재했고, 여느 경쟁진출작처럼 기자시사회를 통해 세계 각지에서 온 기자들에게 공개됐으며, 넷플릭스 코리아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의 극장 개봉을 책임지고 있는 국내 배급사 NEW의 노력으로 한글 자막 버전의 ‘옥자’가 마켓부스 내의 소극장에서 상영됐다.

한글 자막의 상영이 끝나고 봉 감독과 배우 변희봉, 안서현, 스티븐 연이 참석하는 한국 기자들과의 회견이 시작되기 전, 배급사 관계자가 영화가 어땠느냐고 물었다.

“한 번 크게 웃고 크게 한 번 울컥했어요.”

잔잔하게 미소 진 장면들과 몇 번인가 눈물을 참았던 장면이 눈앞을 지나가는 속에서 건넨 답변이다. 언제 웃고, 언제 울컥했어요?

“배우 윤제문에게 그게(이하 관객의 즐거운 관람을 위한 궁여지책) 날아들 때, 부모로 보이는 돼지 부부가 아기돼지를 위해 그걸 할 때요. 저도 부모여선지 그때는 눈물이 왈칵하더라고요.”

감독 봉준호가 ‘옥자’를 찍을 당시 이후 펼쳐질 윤제문의 음주운전 등의 논란을 예상한 것은 아니겠으나, 윤제문이 그걸 뒤집어쓰고 그의 발음으로 ‘보디 샴푸’를 찾는 장면은 영화 스토리 안에서 작은 카타르시스와 큰 웃음을 준다. 이병헌이 영화 ‘내부자들’의 악역으로 먼저 관객을 만나며 논란으로 빚어진 거부감을 한결 줄일 수 있었듯, 윤제문이 ‘옥자’ 속에서 먼저 매를 맞고 비난을 받는 상황은 기대하지 않은 사회적 쾌감을 준다.

봉준호 감독은 20일 오후 5시 칸 크로와제트 가에 위치한 칼튼호텔에서 열린 회견에서 “옥자를 키운 미자가 거대기업 미란도의 CEO를 상대해 황금돼지로 거래를 하는 장면이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아니다”라고 분명히 하며 “미자가 옥자와 함께 도살공장에서 나설 때 벌어지는 그 일, 아기돼지 장면에 다다르기 위해 ‘옥자’라는 영화가 달려온 것이다. 정서적으로 그 장면이 클라이맥스다”라고 말했다.

적어도 감독의 의도가 정확히 배달됐고 공감의 눈물까지 흘렸음에도 개운해지지 않는 머릿속 안개의 정체를 알기 위해 걷고 또 걸었다. 개인적으로 걷기는 잡념을 떨치고 무엇인가의 본질에 한 발이라도 다가서게 해 주는 열쇠다.

◇ 전대미문의 충격적 장면, 던져진 질문

봉준호 감독은 이런 말도 했다.

“고기를 먹지 말아야 한다고 얘기하는 영화가 아니에요. 미자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도 백숙이잖아요. 자연의 흐름 속에서 인간이 고기를 먹고 육식동물이 다른 동물을 먹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다만 자본주의 이후 대량생산 제품으로 만들어진 고기를 먹는 문화에 대해 얘기하는 겁니다, 애초에 먹히기 위해 길러지고 생산되는 고기요.”

봉준호 감독의 말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는 내내 스스로에게 던질 수밖에 없었던 질문, ‘미자는 옥자를 위해 무언가를 했는데, 세상의 옥자들을 지키고 싶어진 너는 그래서 앞으로 무엇을 할 거니?’라는 물음이 떨쳐지지 않았다. 영화 속 ALF(동물해방전선)의 멤버 실버처럼 탄산가스로 배양해 경유차로 운송한다는 이유로 방울토마토조차 먹지 않고 살 수도 없는 노릇이고, 흔히 공장은 부품들이 합해져 무엇인가가 만들어지지만 도살공장은 부분들이 해체돼 제품이 되는 비극적 생산라인데 거기서 나온 고기만큼은 선택적으로 거부하기도 어려운 현실이고….




게다가 ‘옥자’에는 결코 본 적 없는 충격적 장면이 포함돼 있다. 영화 ‘괴물’의 크리처 디자이너가 다시 한 번 봉준호 감독과 만나 디자인 한 옥자는 미국 플로리다에 사는 포유류 매너티의 순하고 느긋해 보이는 얼굴을 축으로 해서 돼지와 하마, 코끼리의 느낌이 안면과 몸집에 섞여 있는 암컷이다. 가상의 동물일 뿐인데, 옥자가 특정의 고통을 당하는 장면에서 순간적으로 암컷이 아니라 ‘여자’라는 느낌이 보태지며 충격을 배가시킨다. 영화를 보면서 옥자가 보여 준 소녀 같은 귀여움과 천진난만함, 엄마 같은 희생과 의리를 통해 ‘교감’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또 동물인데 인간 같은 옥자, 인간인데 동물보다 못한 어른들의 모습이 대조되며 빚어진 ‘착각’이다.

◇ 공감하고도 ‘옥자’를 즐기지 못 한 이유

착각이 일 정도로 옥자와 우정의 교감을 해서일까.

부모 없이 할아버지와 단 둘이, 아니 옥자랑 오붓하게 셋이 첩첩산중 산골에서 봉 감독의 표현으로 ‘미래소년 코난의 여자 버전’으로 자란 미자를 열네 살 안서현 배우가 완벽하게 구현해 내고,

‘플란다스의 개’부터 ‘살인의 추억’ ‘괴물’ ‘옥자’에 이르기까지 시나리오 집필 때부터 마음에 두었기에 희봉이라는 이름으로 내리 4번을 출연한 변희봉이라는 소중한 배우가 봉 감독뿐 아니라 모든 관객을 흡족 시킬 연기를 하고,

청춘 시절의 신하균을 연상시키며 거짓말을 해도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을 발산하는 재미교포 배우 스티븐 연이 활약하고,

흔히 할리우드영화에서 동양 배우가 가벼이 소비되는데 동양 감독의 영화에서 제대로 망가지며 영화적 재미를 높인 제이크 질렌할과 틸다 스윈튼의 호연에도,

숱한 영화 속 창조물들이 끔찍할 정도의 슈퍼파워로 인류를 위협해 왔던 것과 달리, 김용화 감독이 인간에게 친근한 크리처를 선사하려 했으나 미스터 고에게는 부족했던 캐릭터 자체의 훈훈한 매력마저 옥자가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그 간단치 않은 봉준호 감독의 성취를 마음껏 즐길 수 없었다.

왜일까. 옥자와 친구가 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스스로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막막함이 눈앞에 펼쳐지는 배우들의 놀라운 호연과 생명력 넘치는 크리처를 탄생시킨 기술력에 엄지 세우기를 잊게 한 걸 아닐까. ‘살인의 추억’이나 ‘괴물’에서는 연쇄살인범을 미치게 잡고 싶은 형사들의 열의와 한강에 출몰하는 괴물을 상대로 한 못난이 가족의 뜨거운 사투가 전면에 나서고 사회비판적 메시지는 수면 아래에 있다가 간간이 얼굴을 내밀었다. 일단은 가슴으로 신나게 영화를 즐기고 영화가 끝난 뒤에는 머리로 메시지를 칭찬했다. ‘옥자’에서는 유전자 조작을 친환경으로 둔갑시키는 이미지 정치를 하는 대형 다국적 기업의 악행과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고발과 폭로가 가슴 뜨거운 ‘미자의 옥자 구하기’ 곁에 밀착돼 있다.

초반에 뜨거운 감자라고 했다, 뜨겁기도 하지만 꿀꺽 삼키기엔 감자가 크지 싶다. 그런데 꼭 단번에 삼켜야 하나. 우리의 삶에서 영화가 지니는 미덕이 여러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여운이다, 영화를 볼 때보다 보고 나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혹은 영화가 끝났는데도 질문과 해답 찾기가 이어지는…. 여전히 영화를 복기 중이다. 관람 때보다 많은 것들이 머리와 마음에 들어온다.

◇ 부인할 수 없는 문제작, ‘옥자’





분명한 것은 ‘옥자’는 문제작이라는 사실이다.

노아 바움백 감독의 ‘더 마이어로위츠 스토리’와 함께 온라인스트리밍을 목표로 하는 넷플릭스 제공 영화로 칸 경쟁부문에 오르며 ‘극장에서 상영되지 않는 영화는 칸영화제 출품 대상이 될 수 없다’는 프랑스극장연합의 반발을 불러왔다. “넷플릭스의 영화는 황금종려상 대상이 될 수 없다”던 스페인의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심사위원장인 자신을 비롯해 모든 심사위원들은 “로고를 보지 않고 영화의 예술적 면면만을 보겠다”고 말을 바꾸게 했다. 영사기 고장으로 기자시사 상영 10분 만에 촬영이 중단된 일이 넷플릭스 영화에 대한 반감이 현실로 드러난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는 해프닝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반려동물이 가족처럼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회상의 변화 속에서 우리 인간은 동물과 어떤 관계 맺음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꽤나 직설적 질문을 던진다.

‘옥자’는 영화 상영 환경의 변화, 동물과 인간의 관계상 변화…, 분명 우리 곁에 바짝 다가섰지만 동시에 아직은 낯선 ‘가까운 미래’와 관련된 문제를 제기한다. 감독 봉준호는 피하지 않고 다소 불편할 수 있는 현실적 얘기를 꺼냈다.

정면 돌파하는 그의 손에 들린 무기가 넷플릭스가 쥐어 준 560억원의 제작비일까. 스토리는 마음에 들지만 자신들이 감당할 수 있는 250억원을 넘어서는 제작비룰 버거워한 미국의 독립제작사들, 500억원대 제작비는 문제없지만 ‘E.T’처럼 아름답게 갈 수도 있는 영화를 굳이 날세워 얘기하는 것은 불편해 한 할리우드의 전통적 대형 스튜디오. 시나리오 한 글자도 고치지 않아도 된다며 제작비를 지원지겠다고 나선 넷플릭스, 봉 감독은 그 덕에 창작인으로서의 자유를 얻었다고 확인했다.

뒤집어 말하면 ‘옥자’가 받을 칭찬도 비판도 모두 본인의 것이라는 자신감과 책임감이 배인 말이다. “알모도바르 감독이 굳이 태도를 유연하게 바꿀 필요가 없었다. ‘옥자’를 본 뒤 싫다고 욕한다 해도 흥분된다”는 봉 감독의 말에서도 똑같은 게 읽힌다. A를 만들었다는데 감독에게 B였어야 했다고 강요할 이유는 없다. 단지 A에 대해 지지와 환호를 보낼지 비판을 제기할지 태도를 정할 뿐이다. 솔직히 아직 결정하지 못 했다, 어느 자리에 서서 이 영화를 바라볼지 ‘관점’을 정하지 못 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지속되는 여운 속에서 ‘옥자’에 대한 낯설음이 둔해지면 평가가 후해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 봉준호의 큰 틀, 그 안에서 걷기




동물해방전선의 멤버로 미자와의 통역을 담당한 K를 연기하며 웃음의 잽 펀치를 날리는 스티븐 연은 봉준호 감독과의 작업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K는 햄버거를 한번 먹음직한 인물이래요. 동물을 사랑하지만 더 힘내서 활동하기 위해서는 멤버들을 속이고 대량유통 고기를 먹을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거죠. 그 디테일에서 K 캐릭터에 대한 큰 그림을 보았어요. 디테일로 배우를 옴짝달싹 못하게 가둔다는 게 아니에요, 봉 감독은 그렇게 큰 틀을 쳐 놓고 그 안에서 마음껏 뛰어놀게 해요. 배우 입장에서 감독의 틀 안에서 놀 수 있다는 것만큼 자유롭고 믿음이 가는 게 없어요.”

감독 봉준호가 영화 ‘옥자’를 어떻게 보고 즐기고 해석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큰 틀을 마련했음에 틀림없다. 그 안에서 뛰어놀 몫은 내 것이다. 아직 틀 내의 모든 풀밭을 걷지 못 했다. 즐겁게 걷고 또 걸어야지.

/fnstar@fnnews.com 칸(프랑스)=fn스타 홍종선 기자 사진=넷플릭스,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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