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한국 야구대표팀이 또 무너졌다. 그것도 똑같은 패턴과 똑같은 약점으로 일본전 10연패라는 참담한 결과를 다시 확인했다. 15일 도쿄돔에서 열린 K-베이스볼 시리즈 1차전에서 한국은 4-11로 패했다.
3회 안현민이 시속 177.8㎞로 뽑아낸 좌중월 투런포, 송성문이 145㎞ 직구를 잡아당겨 우측 스탠드 상단에 꽂아 넣은 솔로홈런이 터지며 잠시나마 도쿄돔의 공기를 뒤흔들었지만, 그 짧은 반짝임은 오래 가지 못했다.
결국 그 두 방이 이날 경기 한국 타선이 보여준 모든 것이었다. 문제는 국제대회에서 늘 그렇듯 투수였다.
선발 곽빈은 1회와 2회를 모두 삼자범퇴로 지우며 기대감을 키웠지만 한국이 점수를 뽑은 직후인 4회 흔들리면서 경기의 흐름은 완전히 일본으로 넘어갔다. 볼넷 하나가 시작이었고, 2루타와 적시타가 이어져 동점을 허용했다. 구원투수 이로운이 투입됐지만 일본 타선은 이미 분위기를 잡았고, 결국 3-3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한국 마운드를 몰아붙였다.
특히 5회말은 참혹했다. 김택연이 볼넷과 안타로 주자를 내보낸 뒤 내려왔고, 이어 등판한 이호성은 초구 슬라이더가 그대로 좌중간 담장을 넘어가는 3점 홈런으로 연결되면서 마운드에서 완전히 무너졌다.
볼넷, 안타, 몸에 맞는 볼이 연달아 나오며 단 한 명의 타자도 제압하지 못한 채 만루를 만들었고, 결국 한국은 5회에만 투수 세 명을 썼지만 안타 5개와 사사구 3개를 내주며 무려 6실점했다. 단기전에선 절대 나와선 안 되는 장면이 그대로 반복된 것이다.
사실 국제대회 승부의 본질은 단순하고 분명하다. 단기전은 결국 투수놀음이다. 타선이 잠깐 폭발할 수는 있지만 흐름을 끊고 경기의 주도권을 되찾는 건 언제나 에이스의 몫이다.
지난해 다저스를 월드시리즈 2연패로 이끈 것도 수조원짜리 타선이 아니라 야마모토였고, 한국의 영광의 순간마다 김광현과 류현진이 있었다. 가장 최근의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도 문동주가 결승에서 대만 타선을 꽁꽁 묶으며 승리를 품었다. 최근 대만이 프리미어12를 제패할 수 있었던 것도 린위민이라는 선발투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는 그런 투수가 단 한 명도 없다. 이는 대표팀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프로야구 전체의 문제다. KBO리그는 더 이상 국내 에이스를 키우는데 관심이 없다. 모든 구단의 1~2선발은 외국인 투수에게 맡겨졌고, 국내 투수는 3~5선발 수준에 머물다 보니 큰 경기에서 압박을 견디는 경험을 쌓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아마추어 투수들도 이제는 짧고 강하게 던지는 것에 익숙하고 긴 이닝을 버티는 훈련은 거의 하지 않는다.
그 결과 국제대회에 나가면 가장 중요한 순간에 앞에서 경기를 틀어막을 첫 번째 카드 자체가 없다.
일본은 매년 다르빗슈, 오타니, 야마모토, 사사키 로키 같은 투수들을 만들어내며 국제대회 경험을 지속적으로 축적하고 있지만 한국은 그 격차를 좁히기는커녕 더 벌리고 있다.
홈런 두 방으로 잠시 흔들었던 도쿄돔의 공기는, 결국 한국 야구가 잃어버린 본질을 간명하게 들춰냈다. 단기전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언제나 특급 선발이다. 4회에 흔들리고 5회에 무너지는 마운드로는 국제무대에서 더 이상 경쟁할 수 없다.
한국이 다시 영광을 꿈꾼다면 지금 당장 리그부터 국내 선발 에이스를 어떻게 키워야하는지에 대한 구조적 고민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 10연패는 끝이 아니라 더 긴 그림자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도쿄돔이 남긴 건 패배의 아픔이 아니라 한국 야구가 진짜로 고쳐야 할 곳을 향한 묵직한 경고였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