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로 둥지를 옮긴 유격수 박찬호가 11월 18일 자신의 SNS를 통해 KIA 팬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남겼다. 4년 총액 80억, 보장 78억이라는 큰 계약 뒤에도 그의 문장에는 숫자보다 사람이 먼저였고, 이적보다 떠남이 먼저였다.
“더이상 제 이름 앞에 ‘기아 타이거즈’를 붙일 수 없다는 생각이 슬프다”는 고백으로 시작된 편지는 12년 동안 한 도시와 한 팀이 한 선수를 어떻게 키워냈는지를 조용히 서술했다. 데뷔전의 떨림, 첫 안타·첫 홈런, 도루왕과 골든글러브, 그리고 기아 팬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우승까지 박찬호는 그 모든 순간을 “제 인생의 페이지”라 표현했다.
팬들에게 남긴 인사에는 동료들에 대한 믿음도 있었다. “동생들이 무너지지만 않는다면 제 빈자리쯤은 잊게 만들 선수들이 될 것”이라는 말은 작별의 위로이자 남아 있는 선수들에게 보낸 책임의 짐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깊이 울린 건, 새로운 KIA의 얼굴로 떠오른 김도영과 박찬호 사이에 오간 짧은 메시지였다.
편지가 공개된 직후 김도영은 SNS로 “제게 야구를 가르쳐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서도 행복하게 야구하세요. 형이랑 같이한 시간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 후회되네요. 타구 빠를 거니까 긴장하세요”라며 웃음을 섞은 이별 인사를 남겼다. 다정한 후회와 아쉬움, 그리고 마지막으로 야구 이야기로 돌아가는 천진한 농담.두 사람이 함께 보냈던 시간이 얼마나 자연스러운 일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문장이었다.
이에 박찬호는 “기대한다 유도영”이라는 짧은 문장으로 답했다. 거창한 미사여구도 없었다. 후배에게 보내는 작별 인사이자, 남겨진 선수에게 건네는 신뢰의 한 줄이었다. 그 말 한 줄이 김도영의 어깨를 조금 더 단단히 하고, KIA 팬들의 가슴을 조금 더 먹먹하게 했다.
떠나는 박찬호는 “평생 간직하겠다”고 했고, 남는 김도영은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다”고 후회했다.
그리고 둘의 마지막 대화는 KIA 팬들에게 오래도록 남을 한 문장으로 귀결된다. “기대한다, 유도영”
그 말 속에는 이별의 아쉬움과 미래의 설렘, 그리고 이 팀의 화려한 역사를 만들어냈던 두 사람의 조용한 약속이 담겨 있었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