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 전상일 기자】 박찬호가 떠난 자리를 둘러싼 경쟁이 뜨겁다. KIA 타이거즈가 아시안쿼터로 유격수도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이 나오면서 유격수 경쟁은 점입가경이다. 그러나 김규성(KIA 타이거즈)은 그 경쟁을 “압박”이 아닌 “기회”로 받아들였다. 그는 2016년 KIA에 입단해 어느덧 10년 차를 맞이했다. 수비력 하나만큼은 팀 내 최고라는 평가를 받지만, 늘 한 발 모자란 공격이 발목을 잡았다.
이범호 감독은 "수비 능력은 이미 찬호와 전혀 차이가 없는 수준"이라며 김규성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렸다. 이번 마무리캠프에서도 수준이 달랐다는 것이다. 정현창도 마찬가지다. 수비에 있어서는 큰 걱정 하지 않는다는 투로 무덤덤하게 말했다. 다만, 문제는 방망이다. 박찬호는 0.270에 20도루는 확실하게 보장된 선수다. 3할에 40도루도 충분히 가능하다. 즉 "주전이 되기 위해서는 방망이 능력이 어느정도는 올라와야 한다"는 말에서 고민이 묻어난다. 그러면서 아시아쿼터를 비롯한 유격수 구상은 박찬호의 보상선수와 FA가 마무리 된 직후 추가로 고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치열한 고민과 경쟁이 예고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번 마무리캠프에서 김규성의 표정에는 그 어느 때보다 확신이 서 있었다.
무엇보다 총액 80억원에 두산 베어스로 이적한 박찬호의 "이제 내가 나게면 네가 주전 유격수 아니냐"라는 이 한마디는 김규성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그는 “그 말이 정말 큰 자극이 됐다”며 “물론 나 말고도 경쟁자들이 많지만, 그 자리에서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캠프는 그 어느 때보다 책임감 있게 임했다”고 말했다.
김규성은 프로 10년 차를 맞이한 베테랑이지만, 여전히 자신을 ‘성장의 과정’에 놓인 선수로 본다. 그러나 올해만큼은 달랐다. 그는 133경기를 소화하며 사실상 풀타임을 치렀고, KIA 내야의 중심을 지켜냈다. 타율 0.233, 3홈런, 5도루라는 평범한 숫자 속에서도 그는 분명한 변화의 실마리를 찾았다.
“많은 타석에 서면서 느꼈다. 조금만 더 준비하면 분명히 에버리지가 올라갈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래서 이번 비시즌은 내게 정말 중요하다. 수비는 된다고들 하니까, 방망이에 더 집중하려고한다”라고 김규성은 말했다. 오키나와 마무리캠프에서도 가장 늦게까지 방망이를 잡았다. “방망이도 같이 올라와야 진짜 주전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수비보다 타격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라고 말한 그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올 시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묻자 그는 주저 없이 수원 kt전 “인사이드더파크 홈런”을 꼽았다. 국가대표 마무리 박영현이 던진 공을 때려 홈까지 전력질주하던 그 장면이다. “그때 정말 자신감이 많이 올라왔다. 제가 타격에서 약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지만, 그런 장면이 하나씩 나오면 나도 모르게 확신이 생기더라”라고 그 순간을 회상했다. 그 순간은 단순한 한 경기의 하이라이트가 아니라, 그가 스스로를 ‘주전으로 만들기 시작한 출발점’이었다.
박찬호의 이탈은 팀으로서는 큰 공백이지만, 그것은 김규성에게는 10년 만에 찾아온 가장 현실적인 기회다. 이 기회를 잃으면 다시는 주전으로 도약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절박한 상황이다. “찬호형의 빈자리를 완전히 채우진 못하겠지만, 그 공백이 느껴지지 않게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김규성은 말했다.
그러면서 “팬분들이 ‘KIA 내야가 약해졌다’는 말을 하시는데, 그런 말이 틀렸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2026년 현실적인 목표도 제시했다. "타율 2할 5푼과 전경기 출장"이 그것. 정말 이정도를 해줄 수 있다면 완벽히는 아니더라도 충분히 박찬호의 공백을 메울 수 있다
수비로 팀을 지탱하고, 방망이로 기회를 붙잡으려는 10년 차 내야수의 절박함. 박찬호가 떠난 자리에 ‘김규성 시대’가 열릴 수 있을까. “이제는 보여줄 때라고 생각한다. 충분히 준비했고, 믿고 있다”라고 다부지게 말하는 김규성.
그 답은 이제, 그의 방망이 끝에 달려 있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