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평창의 기적은 홈 이점 때문 아니었어?"
세간의 비아냥을 실력으로 잠재울 준비는 끝났다. 4년 전, 윤성빈의 금빛 질주와 원윤종 팀의 은빛 쾌거로 뜨거웠던 한국 썰매. 베이징에서의 침묵을 깨고, 이번엔 적진 한복판에서 다시 한번 '대형 사고'를 꿈꾼다.
주인공은 '포스트 원윤종'으로 거듭난 김진수(31·강원도청)다. 그가 이끄는 봅슬레이 대표팀이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에서 한국 썰매 역사상 최초의 '원정 메달'이라는 전인미답의 고지를 정조준하고 나섰다.
단순한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이 아니다. 기록이 증명한다. 김진수 파일럿 체제의 봅슬레이팀은 이미 올림픽이 열릴 바로 그 장소, 코르티나담페초 트랙에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지난해 11월, 올림픽 테스트 이벤트를 겸해 열린 월드컵 1차 대회. 김진수가 이끄는 4인승 팀(김형근, 김선욱, 이건우)은 당당히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홈 트랙도 아닌, 낯선 이탈리아 땅에서 거둔 쾌거였다. 한국 봅슬레이가 4인승 월드컵에서 메달을 따낸 것은 원윤종 시절을 포함해도 사상 최초의 사건이었다.
김진수의 변신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하다. 육상 단거리 선수 출신인 그는 고3 때 우연히 썰매를 잡았다. "롤러코스터를 즐길 만큼 스릴에 미쳐있었다"던 그에게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봅슬레이는 운명이었다.
지난 베이징 올림픽 때만 해도 그는 원윤종의 뒤를 받치는 '브레이크맨'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썰매의 운전대를 직접 잡는 '파일럿'으로 신분 상승했다. 부담감이 클 법도 하지만, 김진수는 오히려 태연했다.
그의 뒤에는 든든한 '멘토' 원윤종이 버티고 있다. 이번엔 선수가 아닌 IOC 선수위원 후보로 함께하지만, 존재감만으로도 천군만마나 다름없다. 10살 터울의 대선배에게 김진수는 지금도 수시로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하고 멘탈을 다잡는다.
올 시즌 성적도 고무적이다. 4인승뿐만 아니라 2인승(김형근)에서도 월드컵 4위를 네 차례나 기록하며 메달권에 근접했다.
김진수는 "코르티나담페초 트랙은 신설이라 전 세계 선수들의 숙련도가 비슷하다"며 "스타트만큼은 우리가 세계 정상급인 만큼, 충분히 해볼 만하다"며 눈빛을 번뜩였다.
대표팀은 평창 슬라이딩 센터에서 마지막 담금질을 마친 뒤 다음 달 1일 결전의 땅 이탈리아로 떠난다.
불모지에서 피어난 기적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할 시간. '파일럿' 김진수의 손끝에 한국 썰매의 새로운 역사가 달려있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