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아시안게임(AG) 10연패를 한들, 세계가 한국 축구를 인정해 줄까?"
냉정하게 자문해 볼 때다. 베트남전 참사로 드러난 한국 연령별 대표팀의 민낯을 보며, 이제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야기해야 한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라는 병역 혜택의 굴레에 갇혀 있었다. 지도자의 목숨도, 협회의 지원도 온통 9월 AG에만 쏠려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집착을 내려놓을 때가 됐다.
AG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다. AG는 '선수들'에게 맡겨두고, 연령별 대표팀은 '올림픽'과 '철학'이라는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솔직해지자. 아시안게임은 금메달을 따는 것보다 못 따는 게 더 어려운 대회다. 전력 차가 워낙 크다.
게다가 지금 우리에겐 양현준(셀틱), 배준호(스토크), 김지수(브렌트포드), 양민혁(코벤트리), 이현주(하노버) 등 A대표팀급 재원들이 즐비하다.
이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구단을 설득해 비행기를 탈 것이다. 그들에게 AG 금메달은 곧 유럽 커리어의 연장, 즉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축구판에 "동기부여보다 무서운 전술은 없다"는 격언이 있다. 군 면제가 걸린 해외파들의 눈빛은 전술 그 이상의 파괴력을 낸다. 우리가 굳이 안달복달하지 않아도, 그들이 알아서 '실리'를 챙길 것이다.
문제는 2028 LA 올림픽이다. 아시아 쿼터가 3.5장에서 2장으로 대폭 줄어든다. 게다가 올림픽 예선은 의무 차출 대회가 아니다. 우리가 믿는 그 화려한 해외파들이 예선에는 단 한 명도 못 올 수 있다는 얘기다. 2년전 대회도 마찬가지였다. 아예 못온다고 생각하고 준비를 해야한다.
해외파 없이 지금의 국내파 전력으로 아시아 2등 안에 들 수 있을까? 이번 아시안컵에서 베트남, 인도네시아, 중국에 고전한 것을 보라.
'택도 없는' 소리다. 지금 연령별 대표팀이 해야 할 진짜 역할은 해외파가 없을 때를 대비한 '국내파 인재풀의 육성'이다.
K리그와 대학 무대의 옥석을 가려내고, 그들을 국제 경쟁력을 갖춘 자원으로 키워내는 '인큐베이터'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 '해외파 해바라기'만 하다가는 LA행 티켓은 구경도 못 할 것이다.
가장 시급한 건 '팀의 정체성(Identity)' 확립이다. 이민성호가 비판받는 진짜 이유는 성적보다 '색깔'이 없어서다. 수비 축구인지, 빌드업 축구인지, 아니면 화끈한 공격 축구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베트남전의 32개 슈팅과 무의미한 점유율, 그리고 높은 패스성공율과 패스 숫자에 가려진 골 가뭄 등은 '철학의 부재'가 낳은 참사였다.
확실한 전술적 철학이 있어야 선수를 육성할 수 있다. 어떤 선수를 뽑아서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기준이 서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승리에 급급해 색깔 없이 뭉개는 축구로는 선수의 성장도, 팀의 미래도 담보할 수 없다.
협회와 이민성 감독에게 제언한다. 아시안게임이라는 단기 성과에 매몰되지 마라. 그건 선수들이 알아서 한다. 대신 '확실한 전술 철학'을 심고, '국내 선수들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 남은 임기를 걸어야한다. 그것이 베트남전 참사가 한국 축구에 남긴 마지막 경고이자, 유일한 살길이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