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일반

"형을 보며 꿈을 키웠는데…" 19세 임종언, '우상' 린샤오쥔과 외나무다리 혈투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준결선, 운명의 조 편성 완성
임종언 "선수촌 식당서 형이 '잘해보자' 격려… 승부는 냉정하게"
'무른 얼음' 변수 속 신구 에이스의 피할 수 없는 정면 승부

2026.02.11 23:06

[파이낸셜뉴스] 운명의 장난인가, 아니면 신구(新舊) 에이스의 필연적인 대관식인가.

한국 쇼트트랙의 '무서운 막내' 임종언(19·고양시청)이 생애 첫 올림픽 무대에서 가장 존경했던 우상을 적으로 만난다. 그 상대는 바로 한국 쇼트트랙의 전설이자 이제는 중국 오성홍기를 가슴에 단 린샤오쥔(한국명 임효준)이다.

11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밀라노 아이스 스케이팅 아레나. 결전을 앞두고 공개된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준결선 조 편성을 확인한 순간, 현장의 공기가 묘하게 바뀌었다. 12일 열리는 준준결선에서 임종언이 린샤오쥔과 한 조에 묶인 것이다.

이 만남이 유독 극적인 이유는 임종언에게 린샤오쥔이 단순한 경쟁자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임종언은 지난해 태극마크를 달았을 때부터 공공연하게 "내 롤모델은 임효준 선배"라고 밝혀왔다. 어린 시절, 빙판 위를 지배하던 임효준의 스케이팅을 보며 올림픽의 꿈을 키워온 '임효준 키즈'가 바로 임종언이다.


하지만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다. 꿈의 무대인 올림픽, 그것도 메달 색깔을 결정짓는 길목인 준준결선에서 두 선수는 서로를 넘어야만 한다. 낭만적인 재회라기엔 상황이 너무도 절박하다.

임종언은 담담했다. 아니, 오히려 즐기는 듯했다. 11일 공식 훈련 후 만난 그는 "선수촌 식당에서 (임)효준이 형을 자주 만난다"며 입을 열었다. 조 편성을 확인한 뒤였을까. 린샤오쥔은 까마득한 후배이자 적수가 된 임종언에게 "긴장하지 말고 잘해보자"며 뼈 있는 덕담을 건넸다.

하지만 훈훈한 장면은 식당까지다. 빙판 위에선 양보 없는 전쟁이다. 임종언이 속한 조는 그야말로 '죽음의 조'다. 린샤오쥔뿐만 아니라 개최국 이탈리아의 루카 슈페켄하우저, 네덜란드의 옌스 반스바우트 등 쟁쟁한 우승 후보들이 즐비하다. 자칫 방심하면 우상과의 추억을 쌓기도 전에 짐을 싸야 할 수도 있다.


임종언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는 "효준이 형도 있지만, 네덜란드나 이탈리아 선수들도 워낙 강하다. 특정 선수 한 명만 의식하기보다는 전체적인 흐름을 읽으며 경기를 풀어나가겠다"며 19세답지 않은 침착함을 보였다.

또 하나의 변수는 '얼음'이다. 이번 대회 밀라노의 빙질은 선수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다. 임종언은 "연습 때보다 얼음이 무르다는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실수도 많이 나온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전날 경기들에서 세계적인 선수들이 줄줄이 미끄러지는 이변이 속출했다.
기술이 좋은 린샤오쥔이라도 안심할 수 없고, 패기 넘치는 임종언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는 환경이다.

어제 열린 예선전, 첫 경기라는 긴장감 속에서도 과감하게 선두권 싸움을 벌이며 "감을 잡았다"고 선언한 임종언. 과연 그는 자신의 우상을 넘어설 수 있을까.

소년은 자랐고, 우상은 적이 되어 돌아왔다. 12일 밀라노의 빙판 위, 한 편의 드라마보다 더 뜨거운 승부가 펼쳐진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