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일반

"내 시대는 끝났어, 너의 시대야"… 은메달 클로이 김, 이런 위대한 선수를 봤나

금메달보다 눈부신 '은빛 미소'... 3연패 좌절에도 빛난 품격
"가온이는 마이 베이비"... 경쟁자 아닌 '멘토'로 뜨겁게 안았다
넘어짐마저 드라마였다... 후회 없이 던진 '마지막 승부수'
"너의 시대가 왔어"... 전설이 '新여제'에게 건넨 왕관

2026.02.13 10:17

[파이낸셜뉴스] 올림픽 역사상 패배하고도 이토록 환하게 웃은 2인자가 있었던가. 자신의 왕좌를 빼앗은 10대 소녀를 향해 진심 어린 축하를 보내는 '여제'의 모습은 금메달보다 더 찬란하게 빛났다.

13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리비뇨 스노파크에서 열린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여자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결선. 한국의 최가온(세화여고)이 기적 같은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이날 설원을 가장 따뜻하게 녹인 주인공은 은메달리스트 클로이 김(미국)이었다.

클로이 김에게 이번 올림픽은 '전설'을 완성하는 무대였다.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사상 최초의 올림픽 3연패. 2차 시기까지 1위를 달릴 때만 해도 그 대업은 현실이 되는 듯했다. 하지만 최가온이 마지막 3차 시기에서 90.25점의 '인생 연기'를 펼치며 순위표가 뒤집혔다.


마지막 주자로 나선 클로이 김은 안전한 은메달 대신, 최가온을 넘기 위한 최고 난도 기술을 시도했다. 승부사다운 선택이었다. 그러나 공중에서 중심을 잃고 눈 위에 넘어지며 3연패의 꿈은 산산조각 났다.

보통의 선수라면 고개를 떨구거나 눈물을 쏟았을 패배의 순간. 클로이 김은 훌훌 털고 일어나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후회 없는 승부였다"고 말하는 듯했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클로이 김은 최가온에게 달려가 와락 껴안으며 "축하해! 네가 해냈어"라고 속삭였다. 경쟁자의 예우 수준이 아니었다. 친동생이 성공한 것을 보는 언니의 표정이었다.

최가온이 1차 시기에 실패하고 부상이 우려됐을때도 클로이 김은 최가온에게 "너는 할 수 있다"라고 힘을 불어넣어줬다.


시상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높은 곳에 선 최가온을 바라보는 클로이 김의 눈빛에는 질투나 아쉬움 대신 '대견함'이 가득했다.

은메달을 목에 건 그는 과거 금메달을 땄을 때보다 더 행복해 보였다.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만난 클로이 김은 "가온이는 '마이 베이비'다. 어릴 때부터 봐왔는데 이렇게 성장해서 나를 이기다니 정말 자랑스럽다"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어 "내가 멘토들을 넘어섰을 때 그들이 어떤 기분이었는지 이제 알 것 같다. 왕관이 훌륭한 선수에게 넘어가 기쁘다"고 덧붙였다.

최가온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으려다 넘어진 클로이 김. 하지만 그는 그 넘어짐으로써 최가온의 우승을 '완벽한 드라마'로 만들어주었다.


승부의 세계는 냉정하다. 1등만 기억하는 것이 올림픽의 생리다. 하지만 이날 클로이 김은 1등보다 더 빛나는 2등이 있음을, 승패를 떠나 서로를 존중하고 축하하는 것이 진짜 스포츠 정신임을 전 세계에 보여주었다. 그리고 클로이 김은 이미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 여제다.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역사에 그 앞에 이름을 올릴 선수는 아직 없다.

최가온 또한 이번 올림픽에서 예선 포함 총 5번의 점프를 뛰어서 딱 1번 그것도 딱 '2.5점' 이겼을 뿐이다. 그만큼 위대하디 위대한 선수다.

자신의 시대를 스스로 마감하며, 새로운 여제에게 웃으며 자리를 내어준 클로이 김.

우리는 오늘, 올림픽 하프파이프 역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승자와, 그보다 더 위대한 패자를 동시에 목격했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