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영국 밀턴킨스에서 마주한 0-4라는 스코어보드는 차갑고 가혹했다. 하지만 태극전사들은 고개를 숙이는 대신, 다가올 진짜 무대를 위한 냉정한 복기를 택했다. 야속한 골대 불운에 아쉬움을 삼켰던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역시 핑계와 변명보다는 뼈아픈 '오답 노트'를 빼들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28일 영국 밀턴킨스의 스타디움 MK에서 열린 코트디부아르와의 평가전에서 0-4로 완패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전을 가상한 모의고사에서 공수 밸런스 붕괴라는 무거운 숙제만 가득 떠안은 한 판이었다.
소속팀에서 발목을 다쳐 벤치에서 출발한 이강인은 팀이 0-2로 끌려가던 후반 13분, 황희찬(울버햄프턴)을 대신해 그라운드를 밟았다. 특유의 날카로운 패스와 저돌적인 움직임으로 침체된 공격에 활력을 불어넣던 그는 후반 31분 결정적인 찬스를 맞았다. 홍현석(헨트)과 절묘한 이대일 패스를 주고받으며 페널티아크까지 진입해 날카로운 왼발 슈팅을 날렸으나, 공은 야속하게도 오른쪽 골대를 강타했다. 전반전 오현규와 설영우에 이은 이날 한국의 세 번째 골대 불운이었다.
경기 후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 선 이강인의 표정에는 진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그는 "동료들과 최선을 다해 준비했는데 이런 결과가 나와 매우 아쉽다"며 무거운 입술을 뗐다. 결정적인 슈팅이 골대에 막힌 순간에 대해서도 "골이 들어갔다면 흐름이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그의 시선은 좌절을 넘어 내일의 그라운드를 향했다. 이강인은 "월드컵 본선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다. 어떻게 해야 승리를 가져올 수 있을지 월드컵 전까지 코치진, 선수들과 함께 최선을 다해 준비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불운이라는 핑계 뒤에 숨지 않고, 큰 무대에서 마주할 수 있는 최악의 변수로 상정해 극복해 내겠다는 성숙한 자세다.
특히 이강인은 쓰라린 패배를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았던 뼈아픈 기억을 스스로 꺼냈다. 그는 지난해 10월 브라질과의 평가전에서 0-5로 대패했던 경험을 회상하며 "그때의 대패가 저희에게는 정말 많은 도움이 된 경기였다"고 되짚었다. 코트디부아르전의 0-4 완패 역시 강팀을 상대로 한 강력한 예방주사로 삼겠다는 확고한 의지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경기가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더 경쟁력 있는 팀이 될 수 있도록 분발하겠습니다."
월드컵이라는 일생일대의 무대를 앞두고 치른 스파링에서 마주한 참사에 가까운 패배. 이강인은 이 아픈 상처를 그저 흉터로 남겨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국가대표의 무게를 견디며 뼈를 깎는 심정으로 써 내려갈 그의 독한 오답 노트가 다가오는 오스트리아전, 나아가 월드컵 본선 무대에서 어떤 통쾌한 정답으로 치환될지 지켜볼 일이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