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도쿄 승마공원의 모래바람 위로 12년 만에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지난 대회 '노메달'이라는 아픔을 겪으며 벼랑 끝에 몰렸던 대한민국 승마가 37세 베테랑 기수의 땀방울을 앞세워 화려하게 부활했다. 직전 대회에서 눈앞에서 출전권을 내려놓아야 했던 불운의 에이스 남동헌이 뼈를 깎는 3년의 기다림 끝에 아시아 무대 가장 높은 곳을 정복했다.
남동헌은 27일 일본 도쿄 승마공원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승마 마장마술 개인전 결승에서 마필 '레오니다스'와 완벽한 호흡을 뽐내며 최종 75.190점을 기록,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4년 인천 대회 이후 무려 12년 만에 한국 승마가 되찾은 마장마술 개인전 패권이다.
'말 위의 발레'로 불리는 마장마술은 기수와 말의 교감, 동작의 정확성과 예술성을 백분율로 채점하는 고도의 멘털 스포츠다. 찰나의 흔들림이 치명적인 감점으로 이어지는 무대에서, 남동헌은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레오니다스를 조율했다. 결과는 불과 0.140점 차이의 짜릿한 승리였다. 맹추격하던 중국의 위자이(75.050점)를 간발의 차로 밀어내고, 라오자이(74.935점·동메달)까지 제압하며 만리장성의 파상공세를 홀로 막아냈다.
이 금메달은 단순한 우승 그 이상의 서사를 지닌다. 한국 승마는 1998년 방콕 대회부터 2014년 인천 대회까지 5회 연속 금메달을 휩쓸던 마장마술의 절대 강자였다. 하지만 2018년 자카르타 대회에서 금맥이 끊긴 데 이어, 직전 2022 항저우 대회에서는 종목 도입(1986년) 이후 사상 첫 '노메달'이라는 수모를 당하며 자존심이 상했다.
누구보다 가슴을 쳤던 이는 남동헌 본인이었다. 항저우 대회 당시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추던 마필 '퍼스트에디션'의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출전이 무산되는 뼈아픈 불운을 겪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주저앉지 않았다. 새 파트너인 10세 마필 레오니다스와 3년간 교감하며 칼을 갈았다. 지난 25일 단체전에서 전체 출전 선수 중 최고점(70.559점)을 기록하며 은메달을 이끌었던 그는, 개인전에서 기어코 금빛 방점을 찍으며 스스로의 손으로 한국 승마의 잃어버린 12년을 되찾았다.
승마공원의 열기는 도쿄 아쿠아틱스 센터의 '은빛 물보라'로 이어졌다. 한국 다이빙의 간판 김수지(울산광역시체육회)와 김나현(강원특별자치도청)은 다이빙 여자 싱크로 3m 스프링보드 결승에서 1∼5차 시기 합계 254.70점을 획득해 값진 은메달을 합작했다. 금메달은 압도적인 기량을 뽐낸 중국의 천이원-천자 조(328.56점)가 가져갔다.
두 선수의 위기관리 능력이 빛난 한 판이었다. 김수지와 김나현은 난도 2.0의 1차(앞으로 뛰어들기)와 2차 시기(안으로 뛰어들기)에서 나란히 46.80점을 받으며 2위로 산뜻하게 출발했다. 난도 3.0의 3차 시기(뒤로 2바퀴 반 돌기)에서도 59.40점을 얻어내며 순항했지만, 4차 시기(반대로 2바퀴 반 돌기)에서 44.10점에 그치는 뼈아픈 실수를 범하며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태극마크의 뒷심은 매서웠다. 메달의 색깔이 걸린 운명의 마지막 5차 시기(앞으로 2바퀴 반 돌고 1바퀴 비틀기), 두 선수는 흔들리는 멘털을 다잡고 보드 위로 날아올랐다. 이들은 깔끔한 연기와 완벽한 입수로 57.60점을 뽑아내며 말레이시아 조(243.72점·동메달)의 추격을 뿌리치고 2위 자리를 굳건히 지켜냈다.
이로써 전날 싱크로 10m 플랫폼에서 동메달을 땄던 김나현은 이번 대회 두 번째 메달을 수확하는 겹경사를 누렸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